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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한국말과 한글

by 윤여경

한글이 500년전에 발명되었다고 해서 한국사람들이 한글을 500년 동안 써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글 이전에 한국사람들은 이미 몽골의 파스파문자와 한문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고, 한글이 발명된 이후에도 한문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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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글은 한문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한글 발명 이후 한문 보급이 급격히 늘어났다. 늘어났다고 해서 문맹률이 확 줄어든 것은 아니고 여전히 전 국민의 5~10%만 한문을 읽고 쓸 줄 알았다. 한글은 파스타문자를 대신해 한문을 배우기 위해 보조수단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고, 한글만으로 소통하는 경우는 아주 극소수였다. 한글이 조선시대에 살아남았던 이유는 한문의 권력을 탄탄히 해주는 보조역할이었고, 무엇보다 세종대왕 즉 왕족이 발명한 문자였기 때문이다. 한문과 왕족 덕분에 한글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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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탄탄하게 명맥을 유지하던 한글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일제식민지 시절이다. 민족 중심의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일본이 한국사람의 말과 글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한국말과 한글을 연구하는 국어학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국어학자들은 한글이 아니라 한문에 익숙한 분들이었다. 이분들은 한글을 장려하고 보급하고 보존하기 위해 한글에 몇가지 테러를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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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테러는 자소의 축소이다. <훈민정음>에 나와 있지만 지금 사용하지 않는 한글자소가 몇가지 있다. '점' 모양인 '아래 아'와 '세모' 모양인 '반치음', ㅎ에서 꼭따리가 없는 '여린 히읗' 등이 있다. 이 자소들이 사라지면서 한국사람들의 발음도 축소되었다. 가령 동물 '말'과 언어 '말'은 발음소리가 다르다. 동물인 '말'의 'ㅏ'는 '아래 아'로 표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말'과 '말'의 표기로서는 두 낱말의 뜻을 구분하기 어렵다. 한문에 익숙한 국어학자들은 동물 말은 '馬'로 언어 말은 '言'으로 표기 했기에 굳이 '아래 아' 발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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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아'가 사라지고 동물 '말'과 언어 '말'이 같은 발음으로 표기되면서 본래 발음소리의 구분도 사라졌다. 발음의 축소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식으로 자소가 축소되어 발음이 바뀐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이다. 신라의 이두를 본딴 일본의 가나문자는 발음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일본사람들은 가나를 만든 이후 자신들의 발음을 확대할 자소를 더 개발하지 못했기에 결국 발음이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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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들의 두번째 테러는 '문법'이다. 사실 이 테러에는 공범이 있다. 어쩌면 이 테러의 주범은 한국의 국어학자가 아니라 일본의 국어학자일 것이다. 한국말과 일본말은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말과 영국말, 중국말은 그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일본의 국어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영국말 문법을 그대로 베껴 일본말 문법을 만들었다.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국어학자들은 한국말 문법을 만들때 일본말 문법을 그대로 베꼈다. 그래서 한국말과 일본말 문법은 서양말 문법과 구조가 같다. 말의 구조가 다른데 문법의 구조가 같다니 참으로 어쩌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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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한글이나 가나보다는 한문을 주로 사용했기에 문법을 만들때 말의 구조가 아니라 글의 구조를 따르는 '문법'을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다행이 중국말과 한문의 구조는 서양말의 구조와 비슷하다. 그래서 일본과 한국의 '그래마' 체계는 말을 따르는 '어법語法'이 아니라 글을 따르는 '문법文法'이 되었다는 생각이다. 모두 한문 패권이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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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글이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쓰였는지 궁금해 인터넷에서 신문지면을 검색해 보았다. 나는 80년대 중반부터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면 학창시절 한문보다는 한글을 훨씬 많이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일! 90년대 신문은 물론이고, 2000년대 신문에도 한자 사용빈도가 상당히 높았다. 나는 이 신문을 읽으면서 "한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글을 어떻게 읽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신문을 보는 사람은 많아도 읽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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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가 들어오면 신문에서 한자가 사라졌다. 온통 한글로만 쓰여진 지면이 대부분이고 간간히 한자가 등장한다. 낱말은 여전히 한자어이지만 표기만큼은 한글로 전면적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한글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쓰여진 것은 불과 20년 정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낮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만큼 한문의 권력과 숭배 의식이 엄청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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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말을 정제해 기록한 매체에 불과하다. 생각의 진정한 뜻은 말소리의 미묘한 뉘앙스와 맥락에 담겨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글은 이런 뉘앙스와 맥락을 잘 담아내지 못한다. 때문에 생각의 진정한 뜻은 글이 아니라 말소리에 담겨있다. 말은 글보다 위대하다. 고로 한국말은 한문보다 위대하다. 세종이 만든 한글은 한국말의 뉘앙스를 가장 잘 담아낸 문자이다. 한문은 사라진 표의문자의 마지막 황제란 점에서 가치가 있지만, 여전히 말을 담은 문자보다는 뜻을 담은 그림이라는 한계가 있다. 말이 아닌 그림으로 사람의 뜻을 담아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말을 쓰는 한국사람에게 있어 한문보다 훨씬 유용하고 위대한 문자인 한글이 있다. 즉 한글은 한국사람에게 주어진 엄청난 선물이자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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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통 수단이 제대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라는 점이 참으로 기이하게 느껴진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다. 한글이 익숙한 나는 영국말과 한문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강 그 말의 구조와 몇몇 낱말들을 알고 있다. 즉 나는 한국말과 한글, 영국말, 한문을 동시에 쓰고 있다. 우리 시대 언어학이 구분하는 교착어(한국말), 굴절어(서양말), 고립어(중국말)을 모두 알고 있는 셈이다. 이 땅에 아니 우리 시대에 이런 경우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엄청나게 운좋게 최근 최봉영 샘을 만나 한국말에 대해 제대로 가르침을 받고 있다. 이 가르침은 과거 유영모나 함석헌 선생님의 민중적인 해석이 아니라 서양말과 한문의 구조와 빗대 체계적으로 분석된 학문이다. 그래서 대강 대충 얼버무릴 수 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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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나오는 이미지들은 최근 최봉영 샘이 정리하는 한국말 문법, 아니 한국말 '말차림법'을 정리하신 것이다. 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아주 끝장을 본" 도식들이다. 이 도식들이 정말 끝장을 보게 되면 한국말과 한글에 큰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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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배우던 시절 "한글은 못생겼다"는 인식이 있었다. 필드에 나오니 "한글은 종류가 너무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 요즘은 "한글은 개발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한국말에 대한 제대로된 분석은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황이고, 한글이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불과 20년이다. 위와 같은 인식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디자이너들은 "한글은 아름답다" "한글 종류가 많아서 어떤걸 쓰면 좋을까" "한글을 인공지능으로 개발하면 어떨까"의 인식이 생겼다.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뀐 것이다. 나는 이같은 흐름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아마 수십년이 지나 지금의 학생들이 필드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을즈음에는 한국말과 한글에 대한 태도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 확신한다. 말과 글에 자부심이 생기면 문명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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