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과 영어의 주체성 차이

by 윤여경

"나는 책이 보인다"를 영어로 하면 "I see a book"이다. 그럼 "나는 책을 본다"를 영어로 하면 어떻게 될까? 구글번역기를 돌려보니 똑같이 "I see a book"이 나왔다. "나는 책을 본다"는 어떤 대상을 의식한 능동적인 행위이고, "나는 책이 보인다"는 그냥 나에게 책이 보여진 수동적(?) 상황, 그냥 보이는 상황을 말한 것이라 전혀 의미가 다르다. 그런데 번역기는 그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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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최봉영 샘과 이 문제에 대해 한참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한국말에서 '우리' '함께'라는 말이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던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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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럼 영어에서 '나는 책이 보인다'를 어떻게 말해요?"

"그거... 뭐... 그냥 "This is a book"이라고 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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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 번역기보단 선생님의 번역이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나는 이 번역을 듣는 순간 '헉'하는 느낌이 왔다. 그 이유는 'I=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존재를 자연스럽게 '보인' 상황을 말할때 주어=주체를 지워버리고 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냐면 'I=나=주체'가 있으면 반드시 존재를 대상화시키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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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I=나=주체'가 있으면 존재가 대상화 된다는 말은 주체는 대상과 우리로서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나에게 종속시킨다는 의미다. 존재를 나의 대상으로 종속시키기 않기 위해서는 먼저 'I=나'를 지워야 한다. 나를 생략하고 그 자리에 this라는 존재를 가져다 놓아야만 나와 대상이 함께하는 상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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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인도철학은 끊임 없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말한다. '나'라는 존재를 지우라는 의미다. 최근 철학에서 서양사람들은 상호주체성을 강조한다. 혹은 주체의 자리를 채우지 말고 그냥 비워두라고 말한다. '나'라는 주체성에 상대를 종속시키지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자리를 남겨두라는 의미다. 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바로 '말'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I see a book"이 아니라 "This is a book"으로 말하자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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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보이는가? 영어의 일반동사와 be동사의 차이가. 영어에서 주체가 어떤 대상과 만나면 일반동사가 나온다. 이것은 대상을 나에게 종속시키는 상황이다. 반면 am, are, is가 나오면 나와 존재가 함께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는 일반동사는 '동작' be동사는 '상태'라고 배웠으니 영 헷갈리 수밖에.... 누가 처음에 이렇게 가르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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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영어와 달리 '대상을 나에게 종속시킬때'와 '나와 존재와 함께할때'를 말의 구조로서 구별하지 않는다. "나는 책을 본다"(종속), "나는 책이 보인다"(함께)처럼 곁씨말(토시)와 지님말(동사)만 살짝 바꾸면 된다.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지울 필요가 없다. 혹은 아예 '나'라는 존재를 생략하거나. "책을 본다" "책이 보인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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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람과 한국사람 모두 주체성과 함께성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말을 할때 형식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서양사람들이 함께성을 말할때 '주체'가 지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로서 'I=나'와 어떤 존재가 동시에 나열되면 그 존재는 일반동사에 의해 반드시 대상화 되어, 대상이 나에게 종속되거나, 내가 대상에 종속되는 상황에 놓인다. 즉 나와 존재가 함께하는 상황을 말로서 명확히 명시하기가 어렵다. 반면 한국말은 어떤 때든 나와 존재가 함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나와 존재가 함께하는 상황을 끊임없이 말로서 상기 시킨다. 그래서 한국사람은 오히려 집단적 성향이 강하고, 주체성이 약하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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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다고 본다. 한 사람이 어떤 세상을 살아갈때 '주체적'이고, '집단적'이라고 규정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아무리 노예나 하인 같은 삶을 살더라고 때론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때론 집단적으로 살아간다. 이 선택은 전적으로 각자의 맥락과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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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은 <인간의 내밀한 역사>에서 한 가정부 이야기를 다룬다. 그녀는 누구가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지만 그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나름대로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는 꿈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자부심과 꿈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자신만의 존엄성을 가져야만 했다. 나는 과거 노예와 농노, 하인들도 그랬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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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는 참으로 좋은 말이다. '나'와 '너'가 서로의 다름을 알면서 그럼에도 서로를 공감하면서 나아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그 다름과 공감과 존중을 모두 내 안에 품어서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가 이 말에 담겨 있다. 나는 이 말은 수출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수출 루트는 이미 개척되어 있다. 해외진출이 확실한 K-팝 스타들이 '우리' '함께'와 같은 말들을 노랫가사에 넣어 널리널리 보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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