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8시, 묻따풀 학당 한국말 강학회가 있습니다.
주제: 묻따풀학당 한국말 강학회 3
시간: 2021년 1월 3일 08:00 오후 서울
Zoom 회의 참가
https://kookmin.zoom.us/j/85094765088
회의 ID: 850 9476 5088
------
(아래는 지난 주 강학회 소감문입니다.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궁금한 분들이 있을듯 싶어 소개합니다.)
지난 주 묻따풀학당 한국말 강학회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한국말 많다, 적다, 크다, 작다, 국민, 국인, 나라, 사람, 매우, 왜, 아주, 하다... 등등 일상에서 쓰는 한국말을 묻고 따지며 풀어냈다. 더불어 '자아(self)'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나는 요즘 20세기 이념에서 벗어났음을 느낀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근대주의, 법치주의, 민주주의 등등 각종 '주의(ism)'이 별로 의미 없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의식에 이런 이념이나 신념이 전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굳이 있다면 자본주의 정도.
어제 최봉영 샘은 '자아'를 네가지로 구분하셨다. '저만, 저들만, 남들까지, 것까지' 그리고 이를 다시 '만'인 자아, '쪽'인 자아로 구분했다. 저만 저들만 생각하는 자아는 '만'인 자아이고, 남까지 것까지 생각하는 자아는 '쪽'인 자아다. 쪽은 이쪽 저쪽 등 나와 다른 다양한 쪽들을 서로 인정하고 공존공생하려는 태도다.
오늘 아침 어제의 강학회를 돌아보며 이 구분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잣대가 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럼프, 그는 누구인가?" 그는 '만'인 자아로 저만 저들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양한 쪽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싫다. "바이든, 그는 누구인가?" 그는 '쪽'인 자아로 남까지 것까지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저만 저들만에 소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만'인 자아 입장에선 이런 사람이 싫다.
사람은 여타 동물과 달리 저만에서 것까지 아우르는 자아를 갖고 있다. 그 이유는 신경과 뇌가 발달해 기억이 길게 유지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기록 매체 덕분에 기억은 더욱 길어졌고, 문명에 대한 인식도 수천년, 수만년까지 아우른다. 그래서 사람은 긴 기억을 갖고 긴 욕망을 추구하며 단기 기억인 감각적 욕구와 자극을 억누른다. 마시멜로 이야기처럼. 그래서 사람은 저만 만이 아니라 저들, 남까지, 것까지 크게 아우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도 기본적으로 동물이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끊임없이 적응하고 선택해야 한다. 감각과 지각은 적응과 선택의 토대이고, 이 토대가 없으면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다. 어제 김택신 선생님이 목에 칼이 들어온 사람은 '저만' 생각해야지 남이나 것까지 아우를수 없다고 하셨다. 이렇듯 맥락에 따라 사람은 저만이나 저들만 생각할 때가 있고 때론 남과 것까지 생각할 때가 있는 것이다.
동학의 '한울'을 풀면 '한=큰' + '울=우리'이다. 즉 '큰우리'이다. 낱낱의 '나'는 쪽으로서 작은 존재다. 이 쪽들을 하나의 울타리에 모여 '울이=우리'가 된다. 이 울타리 안에는 사람만 있은 것이 아니라 다른 동식물과 균류, 물과 햇빛, 공기 등 다양한 존재들이 함께한다. 이 우리 안에서 다양한 존재들은 저마다 때에 따라 저만 혹은 저들만 혹은 남까지 혹은 것까지 생각하며 살아간다.
사실 대부분의 존재들은 저만 혹은 저들만 생각하기에 남과 것에 별로 피해를 주지 않은다. 하지만 사람은 남과 것까지 알고 있기에 이들이 저만 저들만 챙기기 시작하면 남과 것에 큰 피해를 준다. 그만큼 사람은 기억이 길고 욕망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반드시 다양한 자아들을 인식하고 때와 곳에 따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어떤 자아가 적절한지 묻고 따져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20세기 이념은 이 다양한 자아를 하나로 규정하거나 아우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론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다양한 자아의 범주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말로는 남과 것까지 아우르면서도 실제로는 저만 저들만 챙겼고, 거꾸로 저만 저들만 챙기면서 의도치 않게 남과 것까지 챙기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도덕감정에 관심이 많았던 애덤스미스와 같은 사람은 저만 잘 챙기면 남까지 잘 살수 있다고 보기도 했다. 미처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21세기 이념은 20세기 이념이 놓친 것들, 그 아래에 깔린 바탕을 더욱 섬세하게 따져보야한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저만, 저들만, 남까지, 것까지'이다. 이 도식으로 세상을 읽으며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바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