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책을 뒤적이다가 한 메모. 말의 구조에 따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 가령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동사가 있는 서양말은 주어인 주체성이 강조되기에 세상을 단계적 확장의 개념으로 접근. 좋게 말하면 성장이나 자기 동일성, 나쁘게 말하면 정복. 그래서 서양말은 다른 주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주체를 지워야 함. 그래서 인도의 명상이 자신의 포기나 모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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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구조상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동사가 없고 옆에 붙어 있어 딱히 주체가 강조되지 않음. 동사가 맨 뒤에 등장하는 것은 이쪽 저쪽의 주체 간 상호성을 염두해 결과를 유보시키는 태도. 이를 '쪽'개념으로 볼수 있음. 각각의 쪽들이 어울려 하나의 '울'에 갇혀 있는 것이 '우리' 개념. 이때 울타리가 닫혀 있으면 '닫힌 우리=저들만'이 되고 열려 있으면 '열린 우리=남까지'가 됨. 그래서 한국사람은 '저만'에서 '남까지'로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저만'과 '남까지'를 다른 쪽으로 여겨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의 다움이 있다고 생각. 즉 '저만'의 다움과 '남까지'의 다움이 다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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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한국사람의 명상은 굳이 자신을 버리거나 모름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됨. '쪽+다움+우리' 개념이 있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남까지 것까지 우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음. 한국사람은 이 확장을 '큰 사람'으로 여김. 여기서 '큰'은 '크는'이라 '큰 사람'는 '크는' 과정과 '큰' 결과를 모두 포괄함. 다만 주의할 점은 한국의 큰 사람은 저만과 남까지를 쪽으로 여기고 별개로 생각하기에 저만과 남까지가 충돌할 경우 자기자신 혹은 남의 희생을 강요하는 측면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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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은, 사람은 말로서 생각하고 소통하기에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자신이 쓰는 말을 살필 줄 알아야 함. 말의 구조에 따라 삶의 태도와 과정이 달라질 수 있음. 앞선 살핀 확장 개념만 해도 서양말은 중심에서 주변으로 가는 단계적 확장이고, 한국말은 쪽다움을 추구하는 큰 우리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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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작정 남의 것이 좋다고 가져와 그대로 사용하면 탈이 날 수 있음. 명상의 경우도 마찬가지. 인도와 중국, 한국은 말의 구조가 달라 명상의 접근 방법과 태도가 달라야 함. 그런데 한국말의 구조를 모르니 그저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게 되고, 한국사람의 생각과 태도를 억압하게 됨. 한국에서 자기를 버리라거나 자신의 모름을 인정하라는 가르침은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을 지배하는 이상한 상황으로 귀결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