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 공부 병아리지만 디자이너로서 한국말과 한글 연구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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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역사학의 연도가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삼듯, 한글은 한글 탄생, 즉 <훈민정음>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 듯 싶다. 한글이전의 문자연구는 한자와 더불어 이두와 향찰을 살피면 될듯 싶고, 한글이후의 문자연구는 한자와 한글의 관계를 살피면 된다. 19세기 중반 한글의 사용이 급격히 늘어났다. 근대화 이후 영어가 한국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한글도 여기에 영향을 받았다. 이때부터는 한자와 한글, 알파벳을 함께 고려해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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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양인쇄기술이 도입되는 과정은 중국의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인쇄술을 가져다 한국에 도입했으니 일본의 가나와 더불어 한자와 한글 표기 변화를 연구해야 할듯 싶다. 현장에서 문자를 다루는 디자이너들이 갖고 있는 마인드가 문자 연구에 있어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19세기 중반 이후 한글 연구에는 한문학자나 한글역사학자만이 아니라 소리를 이미지로 바꾸는 그래픽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피 연구자가 함께 참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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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부터 한글만으로 표기하는 빈도가 급격히 늘어난다. 이때부터는 한글만을 독자적으로 연구해도 될듯 싶다. 더불어 디지털환경까지. 이 연구는 한국사람만이 아니라 서양사람도 함께하면 좋을듯 싶다. 마치 리눅스와 같은 오픈 소스 컴퓨터 OS 연구처럼. 한글은 비록 한국사람이 만들고 주로 사용해 왔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한글은 한국사람만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글'에서 영토개념이 강한 '국國'이 빠진 '한글'이라는 명칭이 오히려 다행이다.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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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도입
한자 + 이두와 향찰
훈민정음 => 소리가 어떻게 이미지로 바뀌는가
한자 + 한글(언문) => 둘을 어떻게 혼합해 사용하는가
한자 + 한글 + 영문(알파벳) => 알파벳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한자 + 한글 + 영문 + 가나 => 문자와 인쇄환경 및 매체의 관계
한글 표기법 규범화
한글 + 번역 => 여러 문자와 디지털환경 및 매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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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연구는 너무 포괄적이라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분류를 해 본다면, 한글은 <훈민정음>이라는 기준이 있어 고고학적 접근이 가능하지만, 한국말은 기준이 없어 고고학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계보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가장 먼저 현재 한국말의 말차림(문법)이 중요하다. 다행이 최봉영 샘께서 큰 틀을 잡았고 용어들도 어느정도 정리가 되고 있다. 둘째로는 현대 언어학에 있어 한국말의 위치다. 그러니까 굴절어인 서양말, 고립어인 중국말, 교착어인 한국말을 비교하는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다행이 세가지 언어는 구조자체가 달라 최봉영 샘이 만드신 교착어 말차림법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착어 말차림법이 인정받으면 여기에 자극받은 중국도 금방 고립어 말차림법을 만들어 낼 것이라 본다. 이때 비로소 본격적인 비교언어학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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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한국말 그 자체의 연구이다. 이는 한국사람이 한국말을 할때 소리와 태도의 관계를 찾는 것이다. 태도는 그 소리를 배울때 형성된 신경패턴에 근거한다. '아' 소리를 내면서 느꼈던 경험이 그 소리의 의미 바탕이 된다. 가령 '어'라는 소리와 '엄마'를 찾던 그 느낌이랄까. 이런 식으로 각각의 한국말들은 어떤 느낌과 의미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또한 일종의 비교언어인데 이 비교는 한국말과 서양말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말들 사이의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다. '아'와 '어'의 차이는 무엇이지? '이'와 '그'의 차이는 무엇이지? 등등 한국말의 기본 자소들이 갖고 있는 느낌의 바탕과 그 의미를 추적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내 아이디어는 한글의 기본 자소 '자음 : ㄱ ㄴ ㅁ ㅇ ㅅ'과 '모음 : ㅣ ㅡㅏㅜ ㅗ'을 조합한 기본소리의 느낌을 찾는 것이다. 어제 나는 도식으로 그 단면을 그려보았다. 이를 확대한 도식이 아래의 도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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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는 한국말에 담겨 있는 생각들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 추적이 가능하려면 옛날 중세 한국말에 대해 알아야 한다. 옛날 사람들이 쓰던 한국말과 지금의 한국말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알아야 그 생각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에는 객관적인 역사가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역사는 사람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에 필연적으로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역사가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학은 '숫자'가 아주 중요하다. 이 숫자는 연도 등 구체적 사건을 설명하는 수치만이 아니라 그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의 수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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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도 마찬가지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을 연구하는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주관적이다. 한국말 연구가 객관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중세과 근대, 현대 한국말의 비교 연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계속 쓰이는 한국말과 변화해온 한국말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가령 '나' '아름' '다움' '하지' '쪽' '우리' 등 처럼 이 말들이 오랜시간 말해져 왔다면 이 말들을 쓴 사람의 수가 많다는 의미다. 즉 해당 말에 담긴 의미를 알면 한국사람의 생각, 한국사회의 사상적 토대를 짐작 할 수 있는 잣대가 된다. 쉽게 말해 오래된 말은 그 자체로 한국사람의 주체성이자 정체성이며 나아가 객관적으로 한국사람의 문명과 문화를 살필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는 의미다.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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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말차림법(문법)
여러말 비교(서양말, 중국말, 한국말 등)
한국말 기본 소리와 느낌
한국말 소리와 의미의 변화
한국말 속에 내포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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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사라진 말소리들이다. 한글 자소에서 '아래 아' '반치음' 등이 사라져서 한국말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말 발음이 다소 빈약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가나 표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있다. 나는 이를 연구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연구는 '한글'만 혹은 '한국말'만 가지고는 연구가 안된다. 반드시 말과 글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즉 문자와 글과 말의 관계, 나아가 의미를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 "한국말에서 '아래 아'가 사라져서 '하늘'과 '해'의 한국말 소리와 의미는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식의 논문이 있어야 할 듯 싶다. 정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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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의 탄생과 사라진 말소리
사라진 말소리와 생겨난 말소리
말소리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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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류가 현재 국어국문학 연구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모르겠다. 나는 그쪽 공부를 전혀 해 본적이 없어서... 하지만 앞으로 이런 방식의 연구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으로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