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과 서양말 중 무엇이 먼저일까

by 윤여경

방금 최봉영 샘과 귀한 통화를 했다. 오늘 김양욱 샘이 올려주신 게놈지도에 따른 인류의 이동과 형성과정을 통해 말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왜 한국사람과 서양사람의 말의 구조가 달라졌는지, 그 구조가 만들어낸 태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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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역시 동사의 위치다. 최초의 말은 분명 동사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먹는다' '먹어' '먹자' 등등 이 동사적 행위를 말하면서 동사 앞뒤로 행위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말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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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말은 동사가 문장 앞에 있다는 점에서 동사의 뒤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말은 동사가 문장 뒤에 있다는 점에서 동사의 앞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동사의 뒤가 발달했다는 것은 주체의 행위와 그 대상의 인식이 고도로 정교해졌다는 의미다. 즉 사태를 바로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동사의 앞이 발달했다는 것은 행위에 앞서 주체들의 범주 구분, 분류, 범위 등 주체의 존재성이 고도로 정교해졌다는 의미다. 즉 행위에 앞서 사태를 신중하게 분류하고 그 분류의 관계들을 살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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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나는 서양말과 한국말 중에 어떤 것이 먼저 등장했을지 가설을 논의했다. 선생님은 최초의 사람이 동사로서 말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서양말이 한국말에 앞선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처음에는 급박한 상황에서 말해지는 '동사'적 인식이 중요하다가, 점차 인식에 앞서 존재를 파악하는 '주체'적 인식이 발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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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나의 가설을 제시했다. 전쟁이나 운동경기처럼 소통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말이 짧아야 좋다. 가장 짧은 말은 역시 '동사'이다. 그래서 '동사'가 발달한 서양말은 무언가 행동이 급박한 상황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해안가에 정착한 민족들 혹은 시베리아로 들어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민족들을 행위를 하기에 앞서 먼저 자신이 처한 환경적 상태, 존재를 잘 살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점점 동사가 뒤로 밀려서 결국 맨 뒤로 온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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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가설 모두, 서양말이 한국말보다 앞선다는 입장이다. 서양말은 동사적 개념이 발달한 덕분에 인식론이 잘 발달했다. 한국말은 아직 연구가 미미하지만 동사에 앞선 것들이 발달했다는 점에서 존재론이 잘 발달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서양말과 한국말, 동사의 앞뒤 위치가 다른 두 말을 비교함으로서 인식론과 존재론을 판단할 수 있는 새로운 준거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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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설은 한국말에서 존비어체계가 발달한 이유도 어느정도 설명해준다. 한국말에서 존대말을 말을 아주 신중하게 하도록 한다. 그래서 존댓말을 하면 말을 삼가하게 된다. 왜냐면 말을 하기에 앞서 존재적 상황을 신중하게 판단하고, 그 대상에 따라 말의 범주갈래를 잘 판단해서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반말은 편하다. 동사가 발달한 서양말처럼 크게 고려하지 않고 바로바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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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말에서 존댓말의 등장은 존재에 대한 범주 구분이 더 섬세해지면서 만들어진 아주 섬세할 말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존댓말에는 아주 장식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장식들이 더욱 화려해졌고 결국 아예 하나의 말형식을 획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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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문이 그렇듯 연구의 시작은 가설이다. 앞서 쓴 내용은 지금까지의 한국말 연구를 근거로 사고실험을 통해 만든 가설들이다. 이 가설이 맞고 틀린지는 앞으로 더 많은 실험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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