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에서 '것'은 존재고, '일'은 인식이다. 모든 존재를 담아내는 '것'이라는 말 덕분에 우리는 문장의 논리 도식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문장에서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주어나 목적어 등에 해당된다. 인식을 의미하는 '일'은 보통 동사에 해당된다. 그래서 한국말(교착어)과 영국말(굴절어)의 문장 구성을 아래 도식처럼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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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 것1 + 것2 = 일
영국말 : 것1 + 일 = 것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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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은 '것1'과 '것2'가 만나서 함께 '일'을 한다. 그래서 '것1'과 '것2'는 독자적인 하나의 쪽으로서 일에 참여한다. 그래서 일을 할때 '것1'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일을 벌이기 전에 반드시 '것2'를 고려해야 한다. 가령 "나는 먹는다"는 '나=것1'이 '먹는다'는 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책을 먹는다"는 무언가 이상하다. "나=것1"과 "책=것2"가 함께 벌이는 일로서 "먹는다"보다 "읽는다"를 주로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우리를 먹는다"는 완전히 어색하다. "나=것1"과 "우리=것2"는 관계는 "먹는다"는 일로서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논리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은 머리 안에 있는 '일의 논리'가 밖에 존재하는 '것들의 현상'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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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말은 '것1'이 '일'과 먼저 만나기 때문에 '것2'는 '것1+일'에 종속된다. "I eat"이라 말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I eat book"이라고 말하면 무언가 이상하다. 또한 "I eat us"라는 말도 완전 어색하다. 그 이유는 'I+eat'의 존재와 인식의 관계에 있어 'book'과 'us'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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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보면 한국말과 영국말의 논리차이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문장의 구조를 살피면 둘은 논리의 접근이 전혀 다르다. 한국말은 '것1+것2'가 어울리기에 적당한 '일'을 고른다면, 영국말은 '것1+일'이 어울리기에 적당한 '것2'를 고른다. 존재1와 존재2의 어울림에 적당한 일을 고르는 한국말과, 존재1와 일의 어울림에 적당한 존재2를 고르는 영국말의 이 차이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적 태도와 실천적 행위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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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최근 기존 논리학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 기존 논리학에는 '+' 개념이 전혀 없다. 오로지 '=' 개념 즉 '동일률'만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논리학은 '모순률'이나 '배중률'만이 있고, 그나마 '이유률'이 약간의 '+'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말에는 무언가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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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에서 '것'의 발견은 말의 논리에 있어 '+'의 발견이다. 다양한 '것'들이 낱낱의 '쪽'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영국말에서 '것'의 부재는 말의 논리에 있어 '='을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모든 '것'들이 '일'과 연관되어 말해지기 때문에 '='의 강력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것'과 '일' 사이에 있는 '+'의 존재마저 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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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점에서 서양철학에서 경험론의 발견과 등장, 프랜시스 베이컨의 '실험과 관찰' 등의 방법론은 엄청난 성과이다. 그 덕분에 그나마 과학세계에 '가설과 검증, 반증'이라는 태도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설'은 바로 '+'이고, 검증과 반증은 '='이다. 그 전에는 '가설(+)'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이 상상이 되는가? 나름 과학적으로 성경을 논증해 지동설 가설을 주장한 이탈리아 신학자 조르다노 부르노가 마음껏 입도 뻥긋 못하고 화형을 당했으니... 그런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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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내가 디자인 분야에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무식할때는 '예체능'이라며 나 자신의 무지함을 달랠 수 있었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때는 '예체능'이라며 새로운 시도와 창의성을 강조할 수 있다. 아마 내가 다른 분야에 있었다면 이런 자유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고, 자칫하면 화형에 준하는 욕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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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자 이제 우리는 '것'이란 말의 존재적 의미를 알았다. 이제 어떻할 것인가. 눈을 질끈 감고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눈을 크게 뜨고 새로운 생각으로 나아갈 것인가. 선택만 남았다. 나는 디자인의뢰를 받으면 클라이언트에게 몇가지 시안을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선택은 자유예요. 선택에 책임이 따른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