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묻따풀 강학회에서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최봉영 샘은 '이 몸'이 바로 나름의 그때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자아와 자유는 몸을 바탕에 둔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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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학회를 마치고 라마찬드란의 책을 뒤져 보았다. 라마찬드란도 최샘처럼 자아를 논의할때 감각질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자아는 감각질에 근거한다. 감각질은 세가지 특징을 갖는데, 첫째는 입력의 비가역성, 둘째는 출력의 유연성, 셋째는 단기기억의 맥락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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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감각질에 지배되기에 자유의지도 감각질에 지배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자유의지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점은 자유의지 불가론에 있어 강력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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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득 자유의지가 가능한 상황이 떠올랐다. 바로 감각질을 최대한 닫은 상태다. 우리가 소위 명상이라고 말하는 그 상태다. 어쩌면 명상은 자유의지를 만끽할수 있는 최상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명상이 자유의지의 기회라면 우리는 명상을 통해 자신을 비울 것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만끽하는 것이 맞다. 즉 비우는 것은 감각이지 생각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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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명상은 반드시 화두가 필요하다. 이 화두는 바로 '위함'이다. 이때 이몸의 감각을 최대한 닫고 내가 무엇을 위해 자유의지를 발휘할지 미리 생각하는 것, 나의 이쪽에서 내가 위하는 저쪽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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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자유의지이고 마음살림 명상이다.
덧) 이 몸은 물질적 육체를 의미해요. 감각질은 외부의 자극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니 자유의지보다 외부 환경의 상태가 먼저죠. 곤충 등 감각질이 중심인 동물들은 자유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면서 살아가죠. 감각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아요. 항상 주어지기 마련이고요. 주어진 감각을 부정할 수 없기에 비가역적이예요. 반면 감각에 대한 반응은 저마다 다르니 유연하고요. 그리고 감각에 의지하면 늘 주변의 상태를 고려하기 마련이예요. 이를 단기기억적 맥락에 의지한다고 말해요. 감각질로 자아를 설명하는 것은 최샘만이 아니라 많은 뇌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입장이기도 해요. '위함'이란 말이 최샘의 독특한 입장인데 당장의 감각에 종속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어떤 목적이 있다는 의미예요. 나아가 내 쪽만이 아니라 상대방 쪽도 고려하는 태도이고요. 그래서 육체적 몸의 감각을 닫고 고요한 마음에 집중하는 명상은 감각에 집중하기 보다는 미래의 위함으로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인데...마음을 비우라는 기존 명상의 주장이 다소 이상한 것이죠. 자유의지 기회를 부정하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