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시민’과 '자유세계에 대해'

by 윤여경

이번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인 '개인'을 다루셨다. 개인은 '자유' 및 '평등'과 관련이 깊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는 아래 글에 자세히 다루니 패스하고, '평등'이 문제다. 나는 '평등'이라 쓰고 '계약'이라 읽는다. 이때 계약이 평등한 느낌을 주려면 '공정'해야 한다. 즉 근현대 정치경제사회에서 '평등'은 모두 똑같이 골고루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고루+두루+널리 나누는 '공정한 사회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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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자유는 '공정한 사회계약=평등'에 근거한다. 문제는 이 계약이 지켜지지 않았을때 있을 패널티이다. 패널티를 주는 폭력적 주체가 요구된다. 그래서 개인주의 사회에서 '폭력'은 아주 중요한 사회적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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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계약을 제약하는 폭력을 최소화하는 방향을 생각하다가 '세계국가'를 떠올렸다. 가라타니 고진도 일본의 평화헌법을 거론하며 '세계국가'를 대안으로 삼는다. 이런 접근은 토마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과 다를바 없다. 어쨌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폭력을 누군가 혹은 어딘가의 특정한 하나의 주체에 모두 양도할때 되도록 많은 개인이 자유와 평등(공정한 계약)이 보장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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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개인' '자유' '자아'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은 요즘 나의 고민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론과 실제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제가 같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이상주의자 혹은 허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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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프와 존슨은 <몸의 철학> 첫 부분에서 중세 '실재론'이 왜 그토록 강력했는지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가 '기본층위 범주'의 언어에 있다고 말한다. 이 언어를 생명의 분류로 은유하면 '속'에 해당된다. '문'에 해당되는 '동물'이란 말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제각각이고 '종'에 해당되는 '아프리카코끼리'라는 말은 떠오르는 이미지가 너무 구체적이다. 반면 '속'에 해당되는 '코끼리'라는 말은 바로 단순하게 그려진 '코끼리' 아이콘 이미지가 연상된다. 이 속 층위의 말이 바로 '기본층위 범주'의 말이고 중세이전의 사람들은 이 말때문에 언어에 있어 '실재론'을 믿었던 것이다. 이를 보편개념 실재론이라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동물'이란 존재가 세상에 있고, 궁극적으로 '신'이란 존재가 세상에 있다는 뜻이다. 즉 모든 말의 지표성과 의미성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는 뜻인데... 이런 접근은 중세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오컴 출신 윌리엄에 의해 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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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전의 사람들은 이상과 현실이 일치되는 층위 때문에 이상과 현실이 구분되어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했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이 일치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화나 계약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또한 때론 이런 접근이 혁명과 혁신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인정하는 허무주의자보다 이상과 현실이 같아야 한다는 이상주의자들이 훨씬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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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아는 것이다. 즉 이상과 현실이, 이론과 실제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인지 아는 것이다. 칸트가 말한 '판단력'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나, 자아)은 맥락에 따라 순수이성과 실천이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순수이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실천이성은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는 실천이성에 있다. 실천이성은 순수이성을 바탕으로 삼기에 순수이성이 바로 '평등'이고 '공정한 계약'이다. 실천이성적 자유와 개인은 이 평등한 계약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깨달을때 비로소 개인과 자유, 자아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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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단을 위해서 전제는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어 묻고 따지고 풀어야 한다. 또 사람의 말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따지고 풀어야 한다. 사람의 말에는 '마음(이성)'과 '몸(욕망)'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 사람에 대해 눈을 감고 말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성으로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이상주의나 일치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허무주의 둘 중 하나의 관점을 갖기 마련이다. 최봉영 선생님이 이 정도로 얘기할 수 이유는 평생은 '사람'과 '자아'에 묻따풀을 해오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성으로 세상을 규정하는 이상주의로 혹은 욕망에서 허우적대는 허무주의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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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도식은 개인과 자유, 자아 말고도, 한국말에서 있어 아주 중요한 말 '만'과 '도'에 대해 풀어놓고 있다. '만'은 '나만'과 '우리만'에만 그친다. 반면 '도'는 '나도' '우리도' '너도' '남도' '것도' 등등 고루 두루 널리 쓸 수 있다. 한국말에서 이 '도'가 바로 '쪽'이고, '상호적 자아'이고, '자유'이고, '공정한 계약'이고, 서로 존중하는 자유로운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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