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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하나'와 '함께'의 차이

by 윤여경

노장사상의 '물아일체'는 '하나'를 지향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따로 떨어져 있어 보이지만 사실상 하나로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를 유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기적'이란 말은 모든 것이 본래 '기'로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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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사상의 '인의예지'는 '각자'를 지향한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따로 떨어져 각각의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각각의 사물은 자신의 본질에 쫓아 살아간다. 본질에 어긋나는 삶을 살면 도태된다. '인의예지'란 바로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찾은 사람의 본질이다. 공자적 삶을 잘 살려면 자신의 본질을 잘 따르면 된다. 이를 공자는 자신의 이름을 잘 따르면 된다는 점에서 '정명(正名)'이라고 말한다. 쉽게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잘하면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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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영의 한국말 '쪽사상'은 '함께'를 지향한다. '함께'는 자칫 '하나'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다. '하나'는 모든 사물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상호의존적이다. 하나의 사물이 통합되어 있고 맥락에 따라 다양한 속성이 드러날 뿐이다. 복희의 '음양', 노장의 '유무'는 두가지 속성이 통합되어 있다는 전제에서 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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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한국말의 '쪽'은 통합된 상황이 아니라 쪼개진 상황을 전제한다. 세상의 사물들이 요소로서 쪼개져 있기에 각각의 본질을 내포한 주체성을 띄고 있다. 공자가 생각했던 것처럼. 다만 공자의 주장처럼 자신의 역할만 잘하면 안된다. '함께'한다는 것은 각각의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결합된다는 의미다. 비록 '나'와 '너(대상)'는 따로따로 주체적으로 존재하지만 반드시 서로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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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론은 결과적으론 노자의 관계론이나 불교의 연기론과 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출발이 다르다. 노자의 사상은 '나'와 '너'를 하나로 본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성에 가깝고, 불교의 사상은 '나'를 '공'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대상의존성에 가깝다. 한국말 쪽론은 '나'를 '너'와 요소로서 구분하고 '나'의 주체성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대상의 주체성도 인정한다. 이런 요소 결합적 상태를 '상호주체성' 혹은 '함께성'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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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론과 물아일체론을 '혼합물'과 '화합물'에 은유할 수 있다. '나'와 '너'는 마치 '철'과 '황'처럼 각각의 주체성을 갖기에 서로 혼합되어 함께할 수 있다. 이 혼합상태에 열이 가해지면 '철'과 '황'의 본래 성질이 사라지고 새로운 본질을 갖춘 '황화철'이 만들어진다. 혼합상태는 서로 분리 가능하지만 '황화철'의 화합상태는 분리가 불가능하다. 사물의 경우에는 화합상태가 가능하지만, 사람의 경우에는 화합상태가 가능할까 싶다. 가끔은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화합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혼합'상태, 즉 쪼개진 '쪽' 상태로 보아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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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결론은 사람은 상호의존적인 '하나'로서가 아니라 상호주체적인 '함께'로서 존재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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