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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본질'이란 무엇인가

by 윤여경

사람들은 본질을 중요시 여긴다. 본질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밑바탕에 있다고 여겨지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이다. 이를 '근본'이라 말하기도 하고, '원리'라 말하기도 하고, '개념'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 본질(근본=원리=개념)을 바탕으로 대상과 현상을 파악하려고 한다. 혹은 이 본질을 알면 세상의 진리를 깨달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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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본질'에 대한 인식이 생겼는지 늘 궁금했다. 오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말(언어)'의 환유적 성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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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말'을 만들때 자신이 경험한 것의 일부를 강조하거나 확대한다. 이를 소리로 전환해 '말'을 만든다. 가령 어떤 사람이 거대한 동물을 보았는데 그 동물의 다양한 특징 중 '코가 길다'라는 것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그 사람은 나중에 그 동물을 '코가 긴 것'이라고 기억할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말할때 '코가 긴 것'이라고 강조할 것이다. 이를 짧게 압축하면 '코길이=코끼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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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떤 대상을 기억할때 전체를 다 기억하지 못하고, 부분을 가져와 기억하고, 이 부분을 가지고 유추해 전체를 재구성한다. 이를 신경과학에서 '맥락부호화'과정이라고 말한다. 부분의 '부호'가 전체에 '맥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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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에서 이 맥락부호화를 '환유'라 말한다. '환유'는 어떤 사람이 어떤 대상을 지칭할때 그 부분을 가지고 지칭하는 언어적 행위를 말한다. 가령 어떤 건물을 가르키며, "저 노란 건물 봐봐"라고 말하는데 이는 말하는 사람이 '노란색'을 강조해 건물 전체를 가르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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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말을 만들때 혹은 말을 할때 '환유'적 태도를 갖고 있다. 이 환유적 태도는 어떤 대상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기 위한 부분을 취함으로서 생긴다. 이 과정에서 대상이나 현상의 어떤 중요한 부분을 가져오는데 이때 가져온 바로 그것이 점차 '본질'로서 여겨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보통 '본질'은 대상과 현상을 가르키는 '말' 안에 내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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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하나의 대상에 내포되어 있거나 여러 대상의 공통 성질로서 존재한다. 하나의 대상에 내포되어 있을때는 본질이 어떤 대상 안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여러 대상의 공통 성질로서 존재할때는 본질이 초월적으로 포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본질에 대한 태도가 달랐고, 공자와 노자가 본질에 대한 태도도 달랐던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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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질'의 이런 바탕을 알게 된 것은 나 자신이 한국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쪽'을 중요시 여긴다. '쪽'을 중요시 여긴다 함은 대상과 현상을 '쪼갤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말을 그 자체로 여러 음절이 쪼개져 재조합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덕분에 한국말을 하는 나는 대상과 현상을 마구마구 쪼개서 재조합 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게 된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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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가 '생각'에 있음을 강조했다. 데카르트에게 '생각'은 대상을 쪼갤 수 있는 능력이었다. 데카르트의 이 쪼개기 생각 능력은 후일 과학혁명의 철학적, 방법적 바탕이 된다. 이 바탕이 미술에 영향을 미쳐 근현대 미술이 탄생했고, 디자인이 형성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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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알고 싶은가? 그럼 쪼개라. 그러면 본질이 보일 것이다. 혹시 쪼갤 수 없는 대상이나 현상이 있는가? 그러면 그 대상이나 현상에선 본질을 찾지 말아라. 대상과 현상의 전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중요한 것은 본질이 있냐 없냐가 아니라 본질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능력이다. 즉 '본질이란 무엇이가'를 두가지로 요약하면 첫째는 쪼갤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것이다. 둘째는 쪼갤 수 있는 것에서 본질을 찾는 것이고 쪼갤 수 없는 것에선 본질을 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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