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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러 생각

제유, 환유, 은유

by 윤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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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들을 바탕으로 나의 시각언어 이론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기 위해 인지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다. 오늘 인지언어학 책을 읽다가 문득 '환유'와 '은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 말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환유'에 있어서는 뭔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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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유(metonymy)는 언어가 생성되고 소통 됨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작용을 하지만 언어의 생성과 소통 과정의 바탕에 있어선 뭔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지각적 주의 과정에서 더욱 그런데, 환유는 대상의 속성 중 일부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대상의 겉모습 즉 경험의 표상 중 일부를 가져온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주로 겉을 경험한다. 속은 짐작할 뿐이다. 본래 시각언어는 이미지를 통해 소통된다는 점에서 대상 안에 있는 속성 보다는 표상을 주로 다루는데, 환유적 속성은 어떤 이미지로 표현하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기쁨'은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가? 또 '날까로움'은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 것인가? 표상 없는 속성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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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자가 아닌 이미지에서 속성의 표현도 겉으로 보여지는 구체적인 표상으로 보여주어야 소통이 가능하다. 이런 역할을 하는 기법을 다루는 개념어가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있었다. 그 말은 바로 '제유'였다. 제유의 영어 표기는 synecdoche로 발음조차 어렵다. 다만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syn'이다. 영어에서 이 표현은 무언가 를 연결할때 자주 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반면 환유는 meta로 시작된다. 영어에서 이 표현은 '~뒤에'라는 뜻으로 그 대상의 속성 따위를 짐작할때 쓰는 말이다. metonymy를 한국말로 하면 '뒤에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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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에 나열한 것과 몇가지 특징들을 통해, 제유는 겉으로 보이는 것들 중 중요한 것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언어적 기법이고, 환유는 속안에 있는 특징들 중 중요한 것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언어적 기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 용어로 치면 제유는 기표(겉보기)를 다루는 언어기법이고, 환유는 기의(속들이)를 다루는 언어기법이다. 그리고 이 둘을 모두 고려해 기호와 기호를 빗대는 언어기법은 '은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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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는 통사적(문장적)이다. 문장을 이끄는 말은 '동사'이다. 그래서 통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명시적 대상인 주어와 속성을 다루는 동사라고 볼 수 있다. 이때 명시적 대상인 주어는 주로 제유에 의해 선택되고, 속성을 다루는 동사는 주로 환유에 의해 선택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은유는 제유와 환유를 모두 고려한 통사적 태도를 갖고 추상적인 언어를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서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가령 '인생은 마라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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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과 구상의 관계에 있어 은유와 환유는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하나 빠져 있다. 바로 '감각-지각적 표상'이다. 감각경험은 최초로 표상을 낳고, 이 표상이 있어야 추상도 구상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유는 추상과 구상으로 가기 위한 첫번째 문이다. 나는 제유를 검색하면서 이 말이 표상과 표상만을 다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겉으로 보는 것 중 중요한 겉을 가져와 전체 겉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제유는 오로지 구체적인 표상만을 다룬다. 반면 은유와 환유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그 이유는 둘 모두 기본적으로 동사적인 속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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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언어학에서 은유는 환유에 기반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은유의 통사가 환유의 동사에 의지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여기에 제유의 역할이 다소 위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언어에 있어 제유의 역할을 복권시켜야 한다!!! 나아가 시각언어를 다루는 그래픽디자이너로서 어쩌면 우리가 인지적 지각과 언어의 연결에 있어 최초로 중요한 것은 속성을 다루는 환유 보다는 표상을 다루는 제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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