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러 생각

메타버스의 메타, 아날로그

by 윤여경

요즘 많이들 메타버스 얘기들을 해서 나도 한마디 보태면. 중세시대 기독교가 서서히 권력화되면서 기독교 사후 세계를 더 정교하게 다듬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연옥'이다. 중세 역사학자 자크 르 고프는 <연옥의 탄생>이란 책에서 중세인들은 연옥을 발명함으로써 절대공간인 사후세계, 영원성의 세계에 '시간' 개념이 생겼다고 말한다.

-

메타버스에 대해 여러 말들이 많은데, 나는 이 현상은 인류역사에서 크게 특별할 것이 없다고 본다. 디지털은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교체계에 가깝다. 다만 디지털의 가상(메타)세계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사람들을 중심에 두었다는 것이 다소 특이하다. 하긴 신비주의를 추구한 예전의 종교교단들도 산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두었고, 큰 집단을 유지하기 위한 가상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

어쨌든 메타버스 세계는 근본적으로 천국같은 가상공간이고 여기에 현대의 기술력이 강력하게 집중되는 거대한 흐름이자 현상으로 본다. 이 흐름은 당분간은 계속 될 것이다. 교황의 열쇠 힘을 통해 연옥에서 천국으로 보내주는 면죄부 판매처럼 30년 종교전쟁 같은 거대한 현실적 사건이 일어나긴 전까지. 현대 면죄부는 가상화폐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본적으로 둘다 가상세계를 위한 투자니까. 덕분에 앞으로 메타버스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고, 다양한 가상품이 상품화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엄청난 양극화가 형성될 것이다. 이 시장에서 성공한 이들은 고귀한 디지털 사제들이 되어서 제 1계급이 될 가능성이 높다.

-

나는 종교와 디지털 세계를 비교하며 그 가능성이 어디까지 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메타버스 세계의 가능성은 좀 경우가 다르다. 난 오프라인 세계이 더 관심이 간다. 언제나 늘 당연했던 일상세계는 온라인 디지털 메타버스 세계가 등장함으로서 '오프라인' 혹은 '아날로그'라는 개념을 갖게 되었다. 현실의 삶 자체에 개념이 생겼다고 할까. 그래서 나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개념이 너무 흥미롭다. 디지털 세계 입장에서 아날로그 세계는 어떤 메타버스를 구축하게 될까?

-

일단 지난 2년동안 코로나로 인해 교육세계는 강제로 온라인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미 인강에 익숙한 세대들이 있었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전환이 이루어졌고, 그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디지털 교육 덕분에 아날로그 교육의 중요성에 더 높아졌다고 할까. 나와 친구들은 이미 2012년부터 디지털 교육의 가능성을 생각해 2013년에 온라인 중심의 디자인학교를 시작했다. 이후 몇년의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그 한계를 절감했다. 아마 비슷한 시기 디지털 중심의 세계 교육 기관들도 현재 우리랑 비슷할 것이다. 교육은 디지털로는 잘 안된다는 사실을... 입시나 자격증시험 같은 특정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 디지털과 인강은 교육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

이 한계는 바로 시청각의 한계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오랜시간 인간의 지각체계에 관심을 가져왔다. 사람은 멀리있는 정보를 처리하는 시청각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보를 다루는 다양한 체감각을 갖고 살아간다. 이 영역은 거의 연구가 되어 있지 않다. 촉각의 경우는 약 2000-3000개 정도로 구분되는데, 구분만 될뿐 개념화까진 아직 멀었다. 올해 노벨상은 체감각을 연구한 분들이 받았는데... 이분들의 성과를 보면 이제 걸음마 수준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긴 이게 어딘가 싶지만.

-

교육은 멀리 있는 정보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정보도 함께 다루는 것이다. 어쩌면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의식주 등 생활문화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가까운 곳에 있다. 그래서 중요한 교육은 반드시 오프라인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디자인 교육은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디자인이 협업으로 이루어지기에 학생들끼리 서로 배우는게 아주 중요하다. 나는 제대로된 디자인 교육은 혼자 디자인을 잘하는 것이 아닌 서로 만나서 함께하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2019년부터 디학은 철저하게 오프라인 아날로그 방식으로 전환했다.

-

우리는 현재 이중화된 세계를 살아간다. 그 중 한쪽이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데, 나는 성장하는 것에 대비된 다른 면에 더 흥미를 갖게 된다. 메타버스에 메타버스가 되어버린 현실 세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나는 디지털 메타버스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현실세계의 변화가 무척 궁금하다. 트랜드에선 멀리 있기에 돈을 벌진 못하지만 트랜드에 앞서 있기에 더 흥미롭다. 현실세계은 가상세계 덕분에 점점 더 새로워지고 선명해질 것이다. 늘 그랬던 현실이 아니라 소중하고 절박한 현실로 느껴질 것이다. 나에게 새로 개척해야할 세계는 가상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있다. 나는 앞으로 현실 세상을 어떻게 바꿔갈수 있을까? 생각만해도 너무 재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유, 환유, 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