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거의 언어학 책만을 읽는다. 예전엔 역사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 과학책 중에선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진화론에 대한 책을 즐겨 읽었다. 진화론은 여러 입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윌슨, 유전진화론을 주장한 도킨스, 공생진화론을 주장한 굴드, 또 올해 초에 읽은 조류학자 프롬의 '아름다움의 진화'까지 여러 관점이 있고, 진화론을 기반한 진화심리학과 행동경제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장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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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분명 과학인데 흥미롭게도 여러 관점이 존재한다. 이 관점들은 하나의 관점으로 통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진화론 책 한권만 읽으면 그 관점에 갇혀버린다. 횡으로는 여러 관점의 진화론을 읽어야 하고, 종으로는 진화론 변천사(과학사)를 검토해 현재 상황에서 또 나의 경우에선 무엇이 올바른지 검토하고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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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과 더불어 즐겨 읽었던 과학은 신경과학, 뇌과학이다. 뇌과학은 용어가 어려워서 진화론처럼 재밌지 않다. 신경과학은 연구자마다 분야가 너무 다양해서 전체를 조망하기가 쉽지 않다. 또 초기단계라 계속 연구 결과가 업데이트되면서 관점이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에 따라가기 버겁다. 조금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저 멀리 나아간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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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종교는 그 시대의 믿음, 즉 세계관을 형성했다. 때문에 종교의 경전은 진리이자 가장 기초적인 교과서였다. 종교 이외의 분야는 종교 경전을 바탕에 두고 판단되었다. 나는 우리 시대 종교는 과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책은 경전을 읽는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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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과학 경전은 기독교의 성경처럼 하나의 경전이 아니라 불교의 팔만대장경처럼 다종다양하다. 현대 과학이 과거의 종교 보다 위대한 점을 하나 꼽으라면 새로운 경험과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에 있다. 과학은 과거의 종교처럼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과학책에서 진리를 찾기 보다는 진리를 찾는 그들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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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역시 진리가 아니다. 나는 진화론은 역사학의 생물학적 변용이라고 본다. 역사와 진화의 차이는 근거 사료와 해석하는 태도의 차이일뿐이다. 기존 역사학의 사료가 인간의 문명에 기반한다면, 진화론의 사료는 자연의 흔적에 기반한다. 인문학인 역사와 과학(종교)인 진화론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을 대하는 태도이다. 두 분야 모두 변화를 추적하는데 변화를 추적하는 태도가 약간 다르다. 역사의 태도는 '진보'이고. 진화의 태도는 '적응'이다.(다만 조류학자 프롬은 '적응'보다는 '진보'적 관점에서 진화론을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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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국 학문과 공부에 있어, 또 삶을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본다. 무언가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는 진화론의 '적응'을 믿는다. 이것은 과거 종교에 가까운 태도다. 반면 진리는 변화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태도는 역사의 '진보'를 믿는다. 이 시대의 종교는 과학이기에 사람들은 '과학적인 태도'가 사실과 진리를 믿는 것이라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진화론의 '적응' 관점에서 기인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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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처음엔 과학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과학책을 즐겨 읽었고, 진화론 같은 분야에서 사람의 진리를 찾았다. 그러다 다양한 입장차를 발견하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다. 그러다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과학분야에도 '진보'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앞서 본 과학들의 다양한 입장차이가 진리를 향한 노력, 즉 진보의 성장통임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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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3만년전의 구석기인과 유전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3만년은 긴 시간이다. 작은 곤충이나 동물로 치면 종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진화보다는 진보를 택함으로서 현재의 문명을 만들어냈다. 그럼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어떻게 사람은 진화가 아닌 진보를 택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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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실마리가 사람의 '말=언어'에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여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정교한 언어를 갖게 되면서 진화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보라는 새로운 경로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언어를 알아야 사람의 바탕, 구체적으로는 사람이 진보하는 바탕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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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 읽으면 된다. 하지만 진보하기 위해서는 때론 읽기 싫은 책도 읽어야 한다. 진보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언어에 대한 이해를 피할 수 없다. 때문에 오늘도 나는 이 지루한 언어학 책을 억지로 펼치고 읽기 싫은 마음에 이 글을 끄적이고 있다. 수다떠는 것은 너무 재밌는데, 왜 언어학은 이리 읽기 지겨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