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디자인계에 인문학적 글쓰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뜸해 아쉽다. 생각의 넓이와 깊이가 어떻든 그런 시도가 있어야 디자인에 대한 논의도 깊어질텐데. 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점차 효율성과 표현성 중심으로 쉽게 말해 포폴과 취업 등 성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물론 유행은 돌고돌아 다시 디자인의 인문적 성찰로 돌아올 날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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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디자인은 장식과 기능에 대해 큰 논란이 있었다. 어떤 이는 장식을 범죄라 여겼고, 어떤 이는 장식을 축복이라 여겼다. 장식을 범죄라 여긴 사람들은 기능을 앞세웠고, 장식을 축복이라 여긴 사람들은 표현을 앞세워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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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의는 모두 진화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시절 아름다움은 특정한 양식이 독점했다. 성경과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지배했다.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아름다움의 지배 형식이 무너졌고, 역사주의 양식과 자유로운 표현들이 난무했다. 이때 진화론이 판단의 잣대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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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두개의 진화 관점을 주장했다.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은 잘 알려져 있는데 번식을 위한 성선택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능을 최대한 극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이를 '적응'이라 말하고 이런 진화를 '자연선택'이라 말한다. 이 주장은 다소 오해되어 강자와 약자를 구분한 우승열패, 적자생존의 경쟁 논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논리가 바로 장식을 범죄라 여긴 모더니즘 디자인의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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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은 자연선택을 주장하고 얼마후 성선택 이론을 주장한다. 생명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가기 위해 번식에 최선을 다한다. 번식을 하려면 다른 성에 의해 선택을 받아야 한다. 자신이 선택을 받으려면 성적인 매력을 뽐내야 한다. 그래서 생명체는 자신과 주변을 장식한다. 때론 이 장식이 과도해 기존의 중요한 기능마저 포기할 정도다. 다윈은 '청란'을 예로 든다. 수컷 청란은 암컷에게 선택받기 위해 날개를 예쁘게 꾸미다가 결국 날기를 포기하는 상태로 진화되었다. 즉 청란에게 장식은 아주 중요한 기능을 포기할 정도로 중요했다. 포스트 모더니즘 디자인에서 장식이 아주 중요해졌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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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은 범죄인가 축복인가... 나는 이 논쟁이 취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쉬웠다. 한때는 진화론을 근거로 장식을 범죄라 여기는 모더니즘 디자인에 설득되기도 했다. 사실 앞에선 그런척 하면서 뒤로는 장식을 즐겼다. 아돌프 로스가 장식이 가득한 방에서 <장식과 범죄>라는 에세이를 썻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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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아주 추상적인 말이다. '추상'이란 해석의 여지가 아주 넓다는 관념적 말이다. 디자인은 아주 구체적인 사물이거나 정보 등의 현상이다. '구체'란 어떤 특정한 기능이나 의미를 지칭하기에 해석의 여지가 아주 좁다. 좁은 디자인을 가지고 넓은 아름다움을 설명하기란 아주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아름다움을 진짜로 느끼려면 반드시 구체적인 디자인이 요구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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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다. 예수님이 탄생한 동시에 한해가 바뀌는 아름다운 날이다. 나는 소박한 트리 옆에서 내년에 나올 '아름다움'에 대한 책을 교정보다가 이 글을 쓴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인문학을 장식하는 축복이라 생각하며. 나아가 올해 고마웠던 분들을 생각하며. 내년엔 올해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되길 바라며. 코로나로 병상에 누워계신 분들이 쾌차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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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