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다양성'과 '적절성'이다. 이 두 말은 서로 반대되는 말이 아니라 서로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동전이 가치가 있으려면 양면이 모두 공존해야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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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있어서도 다양성과 적절성의 조화가 중요하다. 살아있는 존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에 둘의 조화는 결국 순서의 문제다. 다양성이 우선인가, 적절성이 우선인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양성을 어떻게 적절하게 조화시킬 것인가.?'와 '적절성을 높히기 위해 다양성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이 둘은 같은 의미고 말장난 같이 보이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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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언어학에선 '나는 학교에 간다'와 '학교에 나는 간다'를 동일한 의미로 취급했다. 하지만 둘은 다른 의미다. 일단 의도가 다르다. 의도가 다르면 의미전달 방식이 달라진다. 사람은 말을 할때 중요한 것을 먼저 말한다. '나는'을 먼저 말하면 '나'를 초점에 두고 강조한 것이고, '간다'를 먼저 말하면 '행위'를 초점에 두어 강조한 것이다. "간다, 나 학교에"라고 말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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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적절성의 순서도 중요하다. 중국이나 싱가포르, 북한과 같은 일당 독재국가에서는 항상 적절성이 앞선다. 더 높은 적절성을 위해 다양성을 수용해야 한다. 안그러면 변화에 따라가지 못해 언제가 폭망한다. 반대로 미국이나 대만, 한국과 같은 양당제(혹은 다당제) 국가에서는 다양성이 앞선다. 더 높은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안그러면 분열되어 망한다. 옛날 열린우리당이 그랬고, 지금 국민의힘이 그럴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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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 다양성과 적절성이 조화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본다. 첫째는 무책임이다. 역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는 법인데, 어떤 사람들은 책임보다는 역할을 즐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다 재미 없으면 역할을 버린다. 무책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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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전략이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전략은 과거 공산당의 전략과 비슷하다. 먼저 어떤 사건이나 이념으로 편을 나누고 상대편을 절멸시키기 위해 중상모략을 한다. 때론 뭉친 집단이 한 개인을 공개망신 주기도 한다. 이 공개망신의 수단으로 언론과 각종 SNS가 동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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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능력에 대한 태도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능력은 '경쟁'과 동일어인듯 싶다. 최근의 화두가 '공정한 경쟁'이듯이. 이건 능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경쟁은 어떤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지 가치 그 자체가 될수 없다. 실제 능력의 가장 중요한 태도는 '문제 해결'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대화, 타협의 자세가 요구된다. 특히 민주주의를 우선하는 한국에선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그런데 경쟁은 갈등까지만을 가르킬뿐이다. 갈등경쟁은 대화와 타협으로 가는 과정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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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환경에 관심을 두고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인상깊었던 책이 크로포트킨의 <만물은 서로 돕는다>였다. 이 책은 여러 생물학적 오해에서 비롯된 입장이지만 메세지만은 분명했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에 결국은 서로 돕기 마련이다. 이때 나는 자연에서 능력은 우승열패나 적자생존 같은 경쟁이 아니라 자연의 만물이 함께 할 수 있은 방안을 찾는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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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공적영역인 정치와 사회분야는 더욱 그렇다. 편가르고 경쟁하고 무책임하게 갈등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오랜시간 이 병폐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또 한명의 시민으로서 너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