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존댓말은 기업에서 원하는 수평관계를 만들어내는데 별로 안좋은 선택이야. 실제 비지니스에 유효한 수평관계는 존댓말이 아니라 반말에서 비롯되거든. 관계은 수직과 수평만이 아니라 친밀함과 멀어짐도 두루 살펴야 하는데, 일단 서로 존댓말과 반말을 하면 수직관계가 형성되. 이때 반말을 하는 사람은 친밀함을 느끼지만 존댓말을 하는 사람은 어색함을 느끼게 되지. 그래서 존댓말과 반말로 대화하는 관계는 말의 형식에 의한 차별과 억압이 생기기 마련이야.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가(특히 사람 관계) 한국말의 존비어체계에서 비롯되지.
-
수평관계는 상호 반말만 혹은 상호 존댓말을 쓸때 형성되는데, 반말에 의한 수평관계는 친밀한 수평관계고, 존댓말에 의한 수평관계는 서로 멀어진 수평관계가 되. 다만 반말만 쓸 경우 친밀한 관계가 갑자기 적대적 관계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고, 존댓말만 쓰면 점차 서로 어색해지고 멀어지게 될꺼야. 당연히 긴밀하고 친밀한 소통은 사라지겠지.
-
나는 새해 다른백년 칼럼에서 반말(평어) 글쓰기를 시작했어. 지금 쓰고 있는 글의 문체처럼. 아직은 약간 어색하지만 쓰면서 점차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고 있어.
-
사실 존댓말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아. 단어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고 종결하는 말의 어미도 신경써야 하고... 존댓말은 선비의 언어야. 말을 할때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까지 고려해야 해서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야. 그래서 존댓말로 대화하려면 지식수준이 상당히 높거나 어휘력이 아주 풍부해야해. 게다가 서로에게 삼가하는 품격까지 갖춰야 하지.
-
상인의 언어는 반말이 훨씬 좋아. 긴박한 상황에서 의견을 말하기도 자유롭고 대화도 즐겁고. 단어선택이나 형식에도 억압되지 않고. 다만 반말은 자칫 잘못하면 서로 불편한 말을 하게 되면서 적대적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지.
-
이런 점들을 고려해 디학 철학 교사 이성민 샘이 디자인한 언어가 바로 '평어'야. 평어는 지금 디학에서 실천되면서 어느정도 그 효과가 증명되었고 여기저기 조금씩 확산되고 있어. 디학학생들의 평어 경험을 글로 엮는 책도 나왔고. <예의 있는 반말>(텍스트프레스, 2021). 언어에 관심있는 기업들은 이 책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될거야.
-
기업은 여러 관계가 공존하는 집단이야. 관계는 언어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잘 알아야해. 여러 관계가 공존하려면 존댓말, 반말 그리고 평어가 고루고루 쓰여야지. 존댓말만, 반말만, 평어만, 하나의 언어만 쓰이면 하나의 관계만 남게 되거든. 이런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언어+관계를 디자인할 필요가 있어.
-
이런 곳에서 이성민 샘과 나를 불러 언어디자인과 사람관계, 비지니스를 위한 언어 등에 대한 세미나를 열면 아주 재밌을텐데... 사실 인문학은 글이 아니라 말에 쓰여야 제맛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