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디자인이란 무엇인가

by 윤여경

오늘 난 시각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을 구분할 논거를 찾았다. 음... 뭐랄까... 일종의 순서와 확장 개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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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기호이다. 기호는 겉과 속으로 구분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기표이고, 속에 들어있는 것이 기의이다. 좀 더 시각적 이미지에 좁히면 겉(기표)은 형태이고, 속(기의)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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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시각적 형태는 어떤 물질에 근거했다. 그래서 순수 형태는 불가능했다. 심지어 말레비치가 그린 검은 사각형마져 물감이라는 물질적 재료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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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디지털 세상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비로소 순수형태라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본다. 어떤 물질과 재료에 기반하지 않는 순수한 형태 그자체... 어도비 일러스트로 그린 검은 사각형이 우리가 머리속에 개념적으로 갖고 있던 순수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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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세상이 등장하면서 시각이미지에 있어 형태는 물질적 재료에서 해방되었고 순수한 형태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 우리는 컴퓨터로 순수한 형태의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거기에 물질적 재료를 더해 생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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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 패키지 디자인에 관심을 두고 있다. 패키지는 참 묘하다. 분명 시각디자인인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포스터나 책 등의 인쇄물과 달리 종이와 구조, 후가공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각디자인 전공에서 패키지를 가르치지만, 이건 제품디자인 영역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패키지 경험을 통해 난 비로소 시각디자인과 제품디자인의 경계를 경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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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나에게 종종 시각디자인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항상 본질과 바탕을 강조하는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한 질문일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만족스런 답을 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저 디자인전공의 역사를 들먹이면서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이젠 좀 더 또렷하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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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은 음악작곡과 비슷하다. 음악 작곡은 어떤 물질적 재료를 경유하지 않는다. 리듬, 멜로디, 하모니라는 소리 규칙을 바탕으로 비물질적으로 작곡된다. 작곡된 음악은 연주자의 목소리와 물질적 악기에 의해 연주될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경험된다. 시각디자인으로 치면 연주는 인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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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디자인은 순수한 형태에 물질적 재료를 입히는 과정이다. 작곡이 연주되는 과정이라고 할까... 형태에 물질이 더해지면서도 순수한 이미지는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간다. 마치 목업된 패키지 이미지가 실제 종이과 구조가 반영된 패키지 제품으로 만들어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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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의상, 도자기 등은 모두 제품의 구분이다. 현재 많은 디자인 전공은 다루는 물질과 기능에 근거한 매체가 다를뿐 사실상 제품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크게보아 디자인 전공은 시각과 제품 디자인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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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디자인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먼저 순수한 형태를 다루는 시각디자인을 배워야 한다. 시각디자인은 제품디자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바탕이자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시각디자인 기초가 갖춰지고 나서 물질적 재료와 기능에 따른 제품디자인을 배우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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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단계는 건축이다. 건축은 형태와 재료를 어떤게 구성할지 고민하기에 가장 적절한 분야인듯 싶다. 지금 건축은 건물을 짓고 도시를 계획하는 분야로 여겨지지만, 내가 보기에 건축은 인간에 구성하는 모든 인공물에 적용되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형태와 물질적 재료, 심지어 사람까지 조화롭게 구성하려면 건축적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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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디자인 공부 순서와 방향이 선명하다. 순수형태인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다양한 재료인 제품디자인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전체를 조망하는 건축디자인을 배우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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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렇게 말하고 보니 어떤 학교가 떠오른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아는 그 학교... 돌이켜보면 그들은 참 대단했다. 디지털이 없던 환경에서 순수한 형태성을 추구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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