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러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여경 Oct 20. 2017

원전 문제

http://v.media.daum.net/v/20171020104600846?rcmd=rn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제 절차적 정당성까지 갖췄으니... 더욱 심각해졌다. 이 상황은 플라톤이 개탄하고 토크빌이 우려했던 민주주의의 그늘, '중우정치(우매한 대중정치)'의 표본이 아닐까 싶다. 

-

다수의 논리? 공리주의? 적용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다. 어찌 인간의 목숨을 도박에 건단 말인가. 어찌 비용 논리가 두려움의 논리를 엎어버릴수 있단 말인가. 어찌 60%가 40%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4%도 아니고 무려 40%다. 60%의 다수라고? 생존의 위협에 다수의 논리라니... 이게 왠 말인가... 이 문제는 수학문제가 아니라 삶과 두려움의 감정문제다. 답이 있고 승패가 있는 논리적 인공지능 영역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이 박동하는 살아있는 인간 영역이다. 

-

늘 그랬다. 바꿀것처럼 하면서 안바꾸는 태도... 엉망진창을 정당한 절차로 포장해 입을 막는 처리방식. 그렇게 의견을 눌러왔다. 적폐는 이명박근혜만이 아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이명박근혜이고, 정치권 자체가 적폐다. 아직 스스로의 적폐조차 털지 못하면서 누구를 탓하겠는가. 적어도 과거에는 죄 있는 자들은 돌을 던지지 못했다. 그런데 죄 많은 자들이 서슴없이 돌을 던지는 꼴이라니. 

-

과학자였던 메르켈은 원전 찬성에서 원전 반대로 돌아섰다. 왜 그랬을까? 비용때문에? 다수의 의견? 아니다. 비용과 의견을 넘는 거대한 에너지 흐름, 시대적 요구를 따른 것이다. 유연하게 자신의 의견을 바꾼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신념을 내세우기 보다는,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당신이 이끄는 사람들이 절벽으로 향하는데 그걸 지켜보며 독려하는 사람, 절벽이 저기 있다는 것을 절차적 정당성과 비용을 논리로 승인하는 자가 과연 지도자라 말할 수 있을까.

-

지도자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물론 선출은 다수에 의해 되지만, 결정은 다수만을 믿어선 안된다. 지도자는 민중을 지도하는 역할도 해야한다. 따를게 있고, 이끌어야 할게 있다. 현재 에너지 문제는 결정하고 밀어붙히기 보다 지켜보며 대응해야할 상황이다. 

-

에너지는 따르는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원전은 국민의 목숨이 걸린, 국민의 공포와 불안이 걸린 문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도자는 국민을 도박의 대상으로 여겨선 안된다. 그래 새로 짓는 원전은 안전하겠지... 그런데 만약, 만약, 정말 만약 딱 한번 사고가 나면, 그 엄청난 피해는... 누가 어떻게 감당하며,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모두가 절벽으로 떨어진다음에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인가... 그냥 하는 우려가 아니다. 그걸 우린 지난 몇십년간 몇번이나 목격하지 않았던가... 

-

민중과 권력자는 계약을 한다. 계약에 의해 형성된 공동체, 그게 바로 현대 국가다. 이 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안전'이다. 권력은 민중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만인에게 권력을 양도받는 것이다. 홉스에게 이 원리를 받아 제창한 로크는 만약, 권력자가 국민의 안전을 등한시하면 권력을 엎어도 된다고 주장했다. 과연 우리 시대의 안전이 외국의 군대에만 있는 것일까... 우리 스스로 안전을 등한시한다면... 그걸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알파고 제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