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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경 Nov 03. 2017

디자인 교육의 보편성

디자인 교육의 보편성을 고민하는 요즘이다. 디자인 수업은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도 참으로 유용하다. 왜냐면 디자인 수업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 수업은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수용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내용적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경험하고 참여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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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과제가 주어지면 학생들은 각자 자신이 고민한 생각을 과제를 통해 얘기한다. 다른 학생들은 이를 보고 듣는다. 학생은 자신의 과제를 설명할때 상대를 설득하기보다는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경청하기 위함이다. 물론 설득하고 싶다는 의도도 다소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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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과 다른 학생들은 발표한 사람의 작품에 대한 대답(크리틱)을 할 의무를 느낀다. 이런 수업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와 너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수용하게 된다. 그래서 김의래 교수는 자신의 수업을 '관점 교육'이라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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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는 참으로 편견으로 가득차며, 극단적으로 사고하며, 고집이 세다. 급기야 편가르기를 권장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함께 살기 위해 상대를 전멸시켜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 양극화 된 경쟁 의식이 내재된 상황이랄까. 이런 상황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이끄는 디자인 교육은 확대될 가치와 의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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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이대로 디자인 교육을 확대해서는 안된다. 현재 디자인 교육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태도를 기르기에는 적합하나, 뭔가를 배우기에는 부족하다. 수업 내용이 부실하고, 콘텐츠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과제'가 학생들이게 주어질때 그 과제를 들여다보면, '무슨무슨 회사 CI 만들기' '자신의 주체성 찾기' '동네(도시) 탐방' '재밌는거 찾기' 등이다. 포스터를 만들더라고 그 내용은 사사로운 주변의 것을 찾도록 한다. 대부분 형식이나 형태를 익히는 과정으로 내용적으로 배울 것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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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를 다니고 디자인대학를 다닌 경험을 통해 두 수업의 차이점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전자는 배우는 것은 많으나 남는 것이 없고, 후자는 배우는 것은 없으나 남는 것은 있다는 생각을 했다. 두 수업이 적절하게 조화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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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한 것이, 역사나 철학, 종교, 문명, 과학, 사회학 등 글만으로 표기된 학문들, 이것들을 공부하고 이미지로 구현해보는 수업을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령, 포스터를 만드는 수업을 한다고 하자. '박물관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하고, 각자 역사 박물관을 만들라는 프로젝트를 준다. 학생들을 특정 역사를 주목하고, 그 역사를 구성하는 이미지나 사물, 건축, 상징들을 찾도록 한다. 이것들을 선별해 재구성하여 이야기를 만들고, 이 이야기에 따라 박물관을 어떻게 전시할지 고민하도록 한다. 최종 과제는 박물관 전시를 오픈하는 포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형태에 집착해도 늦지 않다. 어쩌면 가장 빠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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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이런 수업이 있다면 학생들은 어떤 역사나 종교, 과학에 대해 얼마간의 지식을 습득할 것이고, 그것들을 다른 학생들과 공유할 것이며, 이미지로 구현시키는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종교 포스터이라면 수업을 통해 다양한 종교를 비교하고, 원리를 이해하고, 상징을 다루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역사와 종교를 배우고, 문명의 다양성을 알고, 철학과 과학을 배운다면 일타쌍피, 즉 형식과 내용, 형태와 기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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