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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Jan 31. 2023

육아일기를 매일 쓰면 좋은 엄마가 될 줄 알았지

감사일기를 쓰고 나서야 알게 된 그때 내 감정

결혼을 하면 언젠가는 아이를 낳아야 하고 그것은 곧 가정이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린이,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자라듯 그 이후의 내 인생도 다음 순서가 있고 또 정답이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 삶에 커다랗고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지길 바라는 사람처럼 별다른 고민이 없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삶을 단순하게 지향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몇 달 뒤 아이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아이는 늦지 않게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10달의 임신기간을 보낸 뒤 아이는 태어났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만 하루가 채 되지 않아 어쩌자고 이 아이를 낳았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육아를 시작했다.


엄마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는 것 같아 보여 나도 아이를 낳았다. 그래서 현실은 더 혹독하게 느껴졌다. 밤낮으로 아이를 돌보며 피로함에 허우적거리다 아이가 배냇짓을 하는 순간에는 잠시나마 기쁨을 누리는 그런 삶이 이어졌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 삶 속에서 나는 강렬한 희망을 찾고 싶었다. 막연하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 한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면 이제 막 기역니은을 배우는 아이가 빨리 편지 한 장을 뚝딱 써내려고 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큼이나 욕심이 앞섰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맘카페를 통해 '육아일기'를 매일 쓰면 무료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이에게 이 일기를 통해 하루하루의 소중한 추억을 사진과 글로 성실하게 남겨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 좀 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아이의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고 장문의 글을 줄줄 써내려 갔다. 완성된 육아일기를 발간하고 한 권의 책이 되어 우리 집 책장에 꽂히는 순간이 참 보람차고 뿌듯했다. 둘째가 태어나고서 나는 이전보다 두배로 육아일기를 쓰는데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기를 쓰면 쓸수록 보람차고 뿌듯하던 그 감정이 점점 사그라든다. 도무지 실체를 알 수 없는 일기에 대한 부담감이 하루하루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결국 일기를 쓰는 것도 그리고 책장에 꽂힌 일기를 보는 것도 싫은 순간이 찾아왔다. 결정적으로 일기를 쓰는 과정이 즐겁지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며 바쁘다는 핑계로 매일매일 쓰지 못한 일기는 점점 더 쌓여가기도 했다. 결국 다 해낼 수 없는 숙제가 되어 책장의 일기장을 볼 때마다 앞으로 써야 할 일기들이 나를 한숨짓게 했다.


그런 감정이 이어지던 어느 날 첫째의 일기 5권, 둘째의 일기 4권을 끝으로 나는 일기 쓰기 작업을 중단했다. 9권을 만들고 멈추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도 사실 쉽지는 않았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받을 수 있는 셀프 육아훈장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 아이를 위해 노력했어요. 이것 좀 보세요! 하고 내밀 수 있는 실체가 있는 그런 훈장.


일기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사라진 지 몇 년이 지나 나는 올해 새로운 형태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계기는 갑작스러웠다. 얼굴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인터넷에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있으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어쩌면 평범한 글을 올렸는데 그걸 읽은 게 시작이었다. 요즘 예비 초등생이자 나의 육아고민 출처인(쉽게 말해 트러블이 잦은) 우리 첫째에게 나는 별생각 없이 제안했다.


엄마랑 같이 감사일기 써볼래?


의외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게 뭐냐고 물었고 짧은 설명을 듣더니 함께 하고 싶단다. 그날 갑작스럽게 시작된 '딸과 함께 쓰는 감사 일기'는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잠자기 직전 우리 둘은 작은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각자 그날 감사했던 일 3가지를 노트에 쓰고 서로에게 읽어준 뒤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서로 안아주고 기도로 마친다. 다해서 10분도 채 되지 않는 그 시간이 뭐라고 딸은 매일 그 시간만 되면 설레는 얼굴로 방으로 들어간다.


지난 보름간 감사일기를 쓴 시간은 딸과 나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육아를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 자책감을 더 나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바꾸는 마법 같은 시간이었다. 며칠 전 아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아이에게 요즘 가장 기분이 좋았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다. 그저 요즘 우리 딸의 속생각이 궁금해서 별 뜻 없이 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랑 감사일기 쓸 때요.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내가 생각한 그 이상으로 이 일기가 우리를 치유하는구나. 과거를 다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그때 내가 일기 쓰기가 싫어진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솔직하게 말하자면 육아일기를 쓸 그 시기에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엄마이진 못했다. 그런데 일기를 솔직하게 쓸 수가 없었다. 미래의 내 아이가 읽을 책인데 내가 오늘 얼마나 무엇을 아이에게 잘못했는지 낱낱이 고백하기가 싫었다. 기억지우개가 있다면 아이의 머릿속에서 오늘의 나쁜 기억을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지워주고 싶을 만큼 너무 부끄러운 날도 있었다. 그래서 항상 일기의 말미에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엄마가 오늘 미안했어. 앞으로 더 노력할게."와 같은 문구만 줄줄 늘어놓았다. 그러니 일기를 쓰고 싶을 리가 없지. 반성문을 매일 쓰고 싶은 학생은 없는 것처럼.


아이의 한 마디에 나는 육아일기를 쓸 때의 내가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이후 오히려 감사일기를 쓰는 시간이 왜 좋은 지도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내 잘못을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 반성문을 적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그래도 꽤 좋은 엄마였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떠올려 글로 적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긍정의 힘은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고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크게 더해 준다.


나는 책장에 꽂힌 9권의 육아일기보다 10페이지 남짓한 나의 감사일기가 훨씬 더 좋다.


나와 딸의 감사 일기 노트


사진 © priscilladupreez,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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