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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Feb 24. 2023

다들 왜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지요?

생각할 틈, 지루할 틈이 주어진 아이가 던진 한 마디

최근에 아이와 난생처음으로 '키자니아'라는 곳을 가 보았다. 이곳은 유아와 초등학생들이 다양한 직업체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곳이다. 친한 친구의 권유가 있었고 나 또한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라고 하니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인기가 있나 싶은 궁금증이 커져서 올해 8살이 된 첫째와 함께 처음으로 가 보았다.


키자니아를 먼저 갔던 친구는 나에게 간단한 조언을 해 주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이다. 인기 있는 부스든 인기가 없는 부스든 시간이 맞지 않으면 대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챙겨가서 중간중간 입에 넣어주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그곳은 '돈을 내고 기다림을 배우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나는 친구의 조언을 떠올리며 하루 전 날 집에 있던 아이의 간식 몇 가지를 외출 가방에 주섬주섬 담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지루할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엄마인 나도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지루한 시간'을 함께 견뎌내야 할 날 위해 도서관에서 빌려두었던 얇은 책 한 권을 급하게 가방에 넣었다. 직접 가보니 친구의 말대로 대기는 기본이었다. 심지어 입장을 하고 나서 첫 체험을 하기까지는 25분을 대기해야 했다.


아이는 처음 방문한 곳이라 어리둥절했고 나는 직원 유니폼을 미리 갖춰 입은 딸아이가 귀여워서 사진을 두세 장 찍어주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준비해 온 간식 중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젤리 한 봉지를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도 10-15분이 지나니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다시 오리무중의 대기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체험이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준비해 온 책을 한 장 한 장 틈날 때마다 읽기 시작했고 아이는 다른 사람과 장소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다른 아이들은 도대체 뭘 하며 이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는 걸까? 바로 곁에 앉은 초등학생 둘은 리플릿을 주르륵 펼쳐 들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체험에 신나게 동그라미를 친다. 또 눈길을 돌려보니 아이들 대다수는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이 날 우리 딸은 5개 부스를 체험했는데 그 사이에는 짧게는 20분, 길게는 40분 정도의 대기시간이 있었다. 딸은 다행히 한 번도 보채지 않고 (내게는) 무미건조할 것 같은 시간들을 잘 견뎌내 주었다. 딸아이는 퇴장을 얼마 안 남기고 체험부스로 이동하는 길에 갑자기 혼잣말에 가까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런 말을 했다.


다들 왜 핸드폰을 계속 보고 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어린아이에서부터 초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죄다 1인 1 핸드폰을 가지고 화면을 바라보면서 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다리면서 간식을 먹는 아이들은 손에 간식을 쥐고 있으면서도 눈만큼은 영상에 고정되어 있었다.


집에 와서도  키자니아에서 지나가듯 던진 딸의 한 마디가 계속 생각이 나 아이 앞에서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남편은 바로 딸에게 그럼 너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냐고 물었다. 딸의 대답은


무슨 체험을 하면 좋을지 생각했어요!


였다. 그렇다. 아이는 지루한 시간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리플릿을 보여달라고 했었고 스스로 체험시설 (이해는 잘 못하지만) 위치도 살펴보고 리스트를 읽으면서 꼭 하고 싶은 체험 서너 가지를 골라서 나에게 중간중간 말해주기도 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옆자리에 앉은 아이와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본인이 하게 될 체험을 유리창 너머로 살펴보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오늘의 체험을 다녀오면서 그리고 딸아이의 지나가듯 내뱉은 하지만 결고 가볍지 않은 한 마디를 곱씹다 보니 요즘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이런 '틈'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쳇바퀴 속의 다람쥐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또 한편으로는 해야 한다고 배우며 자란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아이에게는 놀 틈, 지루할 틈, 심심할 틈, 주변을 둘러볼 틈이 주어져야 한다. 아이가 직업체험을 하러 간 곳에서 오히려 내가 중요한 깨달음 한 가지를 얻고 돌아왔다. 그동안 아이의 시간을 내가 인위적으로 채우려 한 적은 없는지? 아이가 심심해할까, 지루해할까, 지겨워할까, 답답해할까 지레 걱정하며 과도하게 아이 시간의 주인이 마치 엄마인 나인 것 마냥 내 마음대로 이끈 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 charlesdeluvi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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