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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Apr 07. 2023

아이가 학습만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책육아의 한 고비를 넘어가는 중

지난 1월 저희 가족은 다 같이 도서관에 갔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실을 방문하여 검색대에서 필요한 책을 같이 찾아보기도 하고 서가로 가서 각자 책 등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직접 골라서 읽기도 했어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이들은 대출하고 싶은 책을 찾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이제 그림책에서 문고판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던 첫째는 유아책이 아닌 아동책이 모여있는 코너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책을 골라 읽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곁에 가서 첫째가 고른 책들을 빠르게 스캔해 보니 학습만화 두세 권이 함께 놓여있었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주변에 조카들을 통해서도 미리 봤었던 그리고 독서 관련 책에도 나왔던 바로 그 '학습만화'를 아이가 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입니다. 물론 저희 아이가 이런 학습만화를 처음 접한 건 아니었습니다. 작년 봄부터 다닌 피아노학원의 한편에 놓인 책장에서 학습만화를 꺼내 읽고 있는 모습을 하원길에 종종 봤었어요. 하지만 그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학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 잠시 그 책을 읽고 마는 것과 자주 방문하는 도서관에서 스스로 학습만화가 있는 위치를 알게 되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 골라 읽는 건 다르게 와닿더라고요.


아이가 읽는 걸 일단은 지켜보았습니다. 집에 갈 시간이 다 되어 각자 대출하고 싶은 책들을 정리해서 대출기계로 가자고 했어요. 첫째는 학습만화 두세 권도 함께 빌리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에게 "이 책은 빌릴 수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꽤나 논리적인 아이이기에 사전 설명 없이 갑작스럽게 금지령을 내리면 분명 거부감을 표할게 뻔했습니다.


일단 대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 일을 어쩌면 좋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남편과 함께 속닥속닥 비밀대화를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이런 모습을 보인건 이유가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책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아이들에게는 학습만화가 아닌 줄글을 기본으로 한 책들을 읽게 하자는 사전 합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남편은 학습만화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습만화는 '장난감'과 비슷하다는 최승필 작가님의 강연을 듣고 더욱 그 의견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날 집에 와서 저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학습만화를 도서관에서 읽는 건 괜찮아. 그리고 밖에서도 그런 책이 있는 곳에서는 읽고 싶으면 읽어도 돼. 하지만 그걸 집에 가져오진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학습만화에는 그림이 많고 대화가 적거든. 엄마, 아빠는 아직은 네가 그걸 읽으면서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


학습만화는 장난감과 비슷한 것이기에 읽으면 재미는 있지만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본래의 독서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풀어서 풀어서 설명했어요. 다행인 것은 아이도 몇 가지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희의 의견을 수용했습니다. 여기서 아이가 저희의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건 '도서관에서 학습만화를 읽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말한 덕이었어요.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금지시키면 아이는 더 깊이 더 자주 더 몰래 빠져들 겁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이가 책을 싫어하게 되거나 저희와의 관계가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어요.


그리고 1주일 뒤 아이의 요청으로 남편은 딸과 함께 단 둘이서 도서관에 갔습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무르며 학습만화책 서너 권을 쌓아두고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렴 괜찮았습니다. 약속대로 대출해서 집에 가져오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안심할 수 있었던 점은 아이는 여전히 그림책도 같이 읽었다는 것입니다.




그림책에서 흔히들 말하는 문고판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고판은 아무래도 두께가 두껍고 그림이 적어서 아이들의 흥미를 이끌기가 쉽지 않거든요. 학습만화는 초등학교 도서관에 많이 구비되어 있어 점점 접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그리고 캐릭터를 기반으로 스토리를 전개하기에 많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봅니다. 그런 학습만화가 아이들에게 주는 여러 장점들도 잘 압니다. 책이라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그림을 기반으로 하기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교육적 효과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딸을 비롯한 초등학생들이 많이 보는 학습만화를 저도 한 번 펼쳐보았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책만 보던 저는 학습만화의 색감과 구성에 놀랐어요. 사실 저는 어렸을 적에 책을 한 권도 안 읽었지만 심지어 만화책도 즐겨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학습만화가 더 생소하게 다가왔어요.


무엇보다 대화가 아주 짧아요. 단어나 짤막짤막한 문장 위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일반 줄글이 아니고 등장인물 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기에 구어체로 빠른 전개가 이뤄져요. 그림이 크고 컬러감이 상당히 화려해요. 그래서 더욱더 내용을 곱씹어가며 고민을 한다던지 여러 장면을 상상하면서 사고력을 기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어요. 눈앞의 선명한 그림이 상상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보는 건 자연스러운 독서의 과정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학습만화에만' 빠져드는 건 부모로서 조금 경계를 하며 곁에서 잘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 그림책을 많이 읽고 재밌어하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나면 여러 과외 활동들로 인해 바빠집니다. 그래서 책을 진득이 펼쳐 들고 읽을 시간이 많이 부족해요. 짧은 시간에 훌렁훌렁 넘겨가며 읽을 수 있는 학습만화를 더 집어 들기가 쉬운 이유입니다.


또한 부모님들께서는 아이들이 좀 컸으니 이제 책은 혼자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리고 평소에는 혼자서 책을 읽지만 잠자리 독서만큼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여전히 그 시간을 좋아하고 기다리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저희가 읽어주면 내용을 재밌게 알려주기도 하고 모르는 단어 뜻을 물어보면 설명해 줘서 좋다고 합니다. 아이가 조금 더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책 읽어주기를 멈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때로 학습만화를 보더라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줄글이 있는 담백한 그림책, 문고판책도 자연스럽게 읽을 거라고 믿습니다. 어릴 적 책을 전혀 읽지 않았던 제가 저희 아이들만큼은 책을 가까이하게 하려니 순간순간 판단하고 설득하고 곁에서 지켜보는 시간들이 참 부자연스럽네요.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




사진 © markusspiske,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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