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을 돌아보면 모든 게 장난감
아이를 일찍 재운 나는 에너지가 남아있고 정신이 말짱해서 여느 날과 다름없이 습관적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하루를 마무리하기 전 익숙한 루틴 중 하나로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어떤 새로운 정보가 또 올라왔나 궁금해하며 나는 스크롤을 죽죽 내려갔다. 그렇게 영혼 없는 눈빛으로 글을 읽고 또 읽었다.
첫 임신을 하고 10달 동안 뱃속에 있던 아이를 출산해서 내 눈앞에서 볼 수 있게 되었을 때의 그 생소함이 지금도 참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째를 키울 당시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내 눈앞에서 꼬물거리며 새근새근 숨을 쉬는 그 조그마한 딸 한 명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글을 쓸 생각도 없었고 책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아이를 잘 재울 수 있을까? 잘 먹일 수 있을까? 감기가 얼씬도 하지 못하게 잘 챙겨 입힐 수 있을까? 가 내 고민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 나도 잠 좀 제대로 자고 사람답게 예쁘게 살고 싶다는 고민도 조금 하긴 했지만.
그랬던 나는 아이를 낳고 육아정보가 가득한 인터넷 공간을 알게 되었고 시간적으로 오래 머물다 보니 국민템이라는 국민템은 다 관심이 갔다. 가격대가 워낙 다양해서 가격대가 좀 있는 새 장난감의 구입에는 매우 신중한 편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물품에 대해서는 소소하게, 아주 조금씩 구매력을 높여갔다.
첫째에게는 부피가 꽤 나가는 놀이기구들도 여러 개 제공했다. 모두 새 상품은 아니어도 중고로, 그리고 조카로부터 물려받은 것들로 아이의 놀이시간을 일명 '돌려 막기'로 채워갔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서 초반에는 장난감이 조금씩 늘어났지만 이내 하나씩 하나씩 줄여가는 시간이 찾아왔다. 미니멀리즘에 눈을 뜬 나였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부피가 큰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꼭' 필요치는 않다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물건 하나를 중고판매로 처분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은 그날 낮잠에서 깨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라진 그 물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부피가 꽤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우리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시골에 근무했을 때 아이 셋을 기르는 중년의 여선생님이 계셨다. 그분에게서는 알게 모르게 배운 것들이 참 많은데 그중에 하나는 바로 장난감에 관한 것이다. 내가 임신한 걸 아시고 축하인사와 함께 건넨 그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애 어릴 때 장난감 많이 안 사줘도 돼요. 주방에서 냄비 가지고 놀고 숟가락 가지고 놀고 그게 다 진정한 놀이니까요. 아이 너무 가둬 키우지 말고 자유롭게 집안을 돌아다니게 해 주세요.
그때 나는 그 말씀을 잘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의미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그 당시의 나는 제대로 이해했다고 자부했지만 아이에게 행하는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보니 이제 와서야 그 선생님의 말씀이 어떤 뜻인지 더 잘 알 것 같다.
첫째에게는 물심양면으로 제공해 줬던 물건들과 그 큰 놀이기구들 중 셋째는 구경조차 못한 게 많다. 막둥이가 자라 가는 과정에서는 그 놀이기구들이 필수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세 아이가 자유로이 놀고 돌아다니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거실을 그 큰 물건들로 채우자니 생각만 해도 갑갑했다. 아무것도 사다 나르지 않아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다.
막둥이가 기고 걷게 되면서는 그 선생님의 말씀대로 주방 공간의 물품 배치도 자연스레 바꾸었다. 칼 같은 위험한 것은 모두 싱크대 선반 위로 올리고 아이의 손이 닿는 모든 공간을 안전한 식기와 냄비들로 채워두었다.
우리 막둥이가 돌 즈음 가장 좋아한 장난감은 바로 '숟가락'이었다. 한 번 꺼내기 시작하면 여러 번 바꿔치기는 기본이고 대여섯 개에서 많게는 10개를 꺼내놓기도 했다. 바닥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떨어뜨려놓은 그 숟가락은 그저 설거지할 때 한 번 더 물로 헹구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일을 일주일, 이주일을 넘도록 무한 반복했다. 하루는 헛웃음이 났다. 돌쟁이 아기의 장난감이 주방서랍에서 꺼낸 숟가락이라니. 아이의 애착물품이 숟가락인 아이가 우리 애 말고 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누나들과 놀 때도, 놀이방에 있을 때도 숟가락을 꼭 쥐고 돌아다녔다.
또 한 날은 요리하던 내 옆에 온 막둥이가 사과와 파프리카를 보더니 까치발로 서서 그것들을 하나하나 다 바닥으로 내렸다. 이어서 수납장에 있던 그릇을 꺼내서 담더니 나와 누나들에게 먹어보라는 시늉을 한다. 그날 나는 갑작스럽게도 막둥이의 행동을 통해 아이들에게 허용해 주는 그 바운더리가 충분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 공간 안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노는 모습이 참 편안하게 느껴졌다.
지금도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인 것에 비하면 장난감은 지나치게 단출하다. 하지만 그 덕에 아이들은 제 나름대로 새로운 놀이를 하며 시간을 알차게 보낸다. 둘째는 자신의 식판과 수저를 직접 설거지하며 찐주방놀이를 했고 실내화를 스스로 빨았다. 첫째는 저녁 준비 중이었던 나를 대신해 가짜엄마를 자처하며 역할놀이로 칭얼대는 막둥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첫째 때 유행했던 그 육아 '국민템'은 셋째 때에는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도 많다. 그리고 새로운 다른 아이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5년의 터울이 있는 셋째를 기르다 보니 '국민템'도 유행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국민템'에 빠져들지 않는다. 다만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직접 알아보고 판단해서 구입할 뿐이다.
사진 © itshoobastank,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