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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Mar 16. 2023

거실을 바꾸자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2

진짜로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냈어요

지난 글에서 아이 셋을 키우는 저희 부부가 거실 구조를 바꾸게 된 계기, 그리고 이렇게 가구를 재배치하면서도 잊지 않았던 목표들을 글로 남겼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도 표해주셨어요. 오늘은 저와 남편이 거실을 재구성하면서 이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디테일들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이렇게 거실과 방 구조를 바꾸면서 집생활에 만족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무엇보다 각 공간의 '역할'이 확실히 구분되었어요. 이전에는 거실은 아이들이 워크북을 하며 학습하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막둥이의 장난감도 있어서 놀이하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작은 방 하나가 또 놀이방이어서 놀잇감의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 장난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죠.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도 필요한 장난감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했고 정리하는 저와 남편도 거실과 방을 오가느라 지치기 일쑤였어요.


의논 끝에 거실은 편하게 책을 읽는 공간, 학습하는 공간, 가족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모든 장난감은 다 놀이방으로 넣어서 그 방에서는 아무렇게나 어지르며 놀아도 허용되는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입구에 있는 작은 방 하나도 정체성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이 방에 건조기와 옷장 그리고 책장과 책상이 있었어요. 상상만 해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죠? 서재로 보기에는 옷장과 건조기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옷방이라고 하기에는 책장과 책상이 공간을 좁게 만들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항상 잡동사니를 올려둬서 막상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런 저희가 1-2주 동안 고민하며 거실부터 변화시킨 것입니다.


그 변화의 디테일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책 중심의 거실을 만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책장들을 모아서 거실의 메인인 소파가 있던 자리에 배치했어요. 저희 부부가 소장한 책의 대부분, 그리고 세 아이가 갖고 있는 책이란 책들은 모두 다 여기에 꽂았습니다. 세세하게는 아이들의 워크북, 스티커북, 심지어 사운드북까지 다 이곳에 모았어요.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은 반납기한 전에 읽어야 하므로 아이들 눈에 잘 보이는 전면책장에 꽂았습니다. 아이들은 잘 놀다가도 때때로 지겹거나 심심한 순간이 있어요. 그때 눈앞에 장난감이 아니라 책이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기관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밥을 먹는 주방에서도 눈에 쉽게 들어오는 위치에 책이 있다 보니 이전보다 책을 읽는 빈도가 많아졌어요.


반대로 거실에 장난감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전에는 막둥이가 주로 거실 중심의 생활을 해서 거실 한편에 막둥이 장난감을 두기도 했어요. 큼지막한 블록 한 상자도 옆에 같이 두었고요. 제 눈에 잘 보이는 거실에서 노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지만 이제는 두 돌도 지난 만큼 과감하게 모든 장난감을 정리해서 놀이방으로 옮겼답니다.


대신 아이들이 함께 놀이하며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보드게임, 교구, 큐브(요즘 남편이 빠져있는 것 중 하나랍니다.), 그리고 막둥이의 동물 퍼즐 등은 거실의 잘 보이는 책장에 배치했어요. 이런 도구들은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아이가 고민하고 사고력을 기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보드게임도 한 아이가 시작하면 주변에 다른 아이들이 함께 모여들어 서로 이야기하며 놀 수 있는 도구이기에 거실 중심의 생활을 돕고 아이들에게도 유익하리라 생각해서 거실에 두었습니다.


두 번째, 정리정돈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책장 중 몇 칸은 아이들에게 할당해 주었습니다. 한국나이로 8세인 첫째와 6세인 둘째에게는 책장 중 아이의 눈높이에 맞는 세 칸을 할당해 주었어요. 여건상 아이에게 책상을 따로 사줄 수가 없지만 이제 첫째에게만큼은 정리정돈의 습관을 잘 심어주고 싶었거든요. 책을 꽂는 두 칸은 어떻게 구분해서 쓰든 자유롭게 활용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다만 스티커나 장난감이 아닌 워크북이나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두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간단히 했어요. 그리고 젤 아랫 칸에 있는 수납함도 한 개씩 주면서 필요한 물건들을 담아두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놀잇감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놀이방 수납함에 넣고 여기에는 필통과 테이프, 풀, 한글&영어 단어카드 등을 자유롭게 담는 모습을 보였어요.


마찬가지로 거실에 있는 유아 책상도 아이들이 주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을 때 사용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는 반드시 자기가 올려둔 것들을 다 정리하도록 만들어요. 책장과 수납함이 아주 가까이 있어서 아이들도 힘들어하지 않고 정리합니다.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아이들에게 잘 베어 들면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현명하게 잘 활용하고 자기 주변을 잘 정리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세 번째, 이러한 변화로 인해 소외되는 사람이 없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려고 노력했어요. 한 가지 예로 남편은 구조변화를 이야기한 시점부터 계속 소파를 없애자고 줄기차게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멀쩡한 소파를 내다 팔거나 버리기가 싫었어요. 제가 허리디스크를 겪었기에 바닥생활만 하는 건 일상에서 불편함이 크리라고 예상했습니다. 결국에는 절충안으로 방에 있던 6단 책장과 긴 책상을 거실로 내고 소파를 작은 방의 그 자리로 보냈습니다. 요즘 그 누구보다 자주 소파에 앉아서 큐브를 하고 책을 읽는 사람이 바로 제 남편입니다.(허허허)


이 변화의 덕을 본 사람은 남편만이 아니에요. 3월부터 육아휴직을 시작한 저는 햇살이 잘 들어오는 거실창 앞 긴 책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책도 읽어요(지금도 긴 책상 위의 노트북으로 글을 씁니다). 가계부도 쓰고 다이어리 정리도 하면서 밝은 낮을 만끽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책상이 좁디좁은 방 안에 있을 때는 제가 가구들 사이에 끼어 있는 느낌이라서 작업공간이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해도 들지 않던 작은 방에 있는 책상을 햇살이 눈부신 거실로 가져오니 집에 머무는 시간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놀잇감이 한 데 모여있으니 그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노는 시간이 많습니다. 놀이방에서는 어떤 저지레도 허용되니 그곳에서 더 열심히 놀게 되었어요. 이전처럼 거실에 있는 놀잇감으로 놀 때 (남편과 제가 정리로 인해) 한숨이 나오는 상황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제는 때때로 아이들이 놀이방의 장난감을 거실로 가지고 나오면 허용해 줍니다. 다만 정리는 잘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깔지요. 거실에 있던 막둥이의 장난감도 다 치웠지만 당사자는 불편함이 없어 보여요. 이제는 원하면 작은 방으로 걸어 들어가 더 다양한 장난감들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나이가 되었으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거실 중심의 생활을 하기 위해 기존의 가구 중 몇 가지를 버릴까, 큰 책상이라도 하나 사야 하나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멀쩡한 물건을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기존에 가진 것들만으로도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리 가족 5인 식구의 생활패턴에 맞춰 잘 재배치하니 저와 남편이 목표한 대로 더 화목한 가족 중심의 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이들이 한 해 한 해 자랄수록 우리 가족의 고민은 또 달라지겠지요.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또 변화가 필요한 시기가 오면 지혜롭게 잘 대처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각자 방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고립된 삶이 아니라 거실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책도 읽고 배움도 주고받는 그런 따스한 가족을 꿈꿉니다. 여러분의 거실, 그리고 방에도 작은 변화를 일으켜보시길 바랍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은 즉각적이랍니다. 저희 둘째의 소감으로 글을 마칩니다. :)


우와~ 엄마!
거실을 이렇게 바꾸니까 기분이 좋아요.


반대편도 궁금하실 것 같아서 한 컷……(별 것 없습니다~)





사진 © nathanfertig,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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