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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Mar 14. 2023

거실을 바꾸자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거실을 재구성하기

올해 초 방영한 SBS 다큐프로그램 중 하나인 '체인지'를 매우 흥미롭게 잘 보았다. 1부는 학원 끊기 프로젝트, 2부는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였다. 특히 2부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는 남편과 나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 내용이기도 했다. 바로 우리 삼 남매를 어떻게 키워야 하나, 우리 집이 가족에게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할까? 가 우리 부부 사이의 화두로 던져졌다.


남편은 작년에 나에게 거실공부 관련 영상 하나를 공유해 줬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본인도 학창 시절 집의 식탁에서 공부를 시도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남편의 행동이 하도 특이해서 이유를 물어봤더니 방에서 하는 공부는 너무 외로웠다고 한다. 그래서 공부할 거리를 챙겨서 주방으로 나갔는데 의자에 앉자마자 어머니는 (남편이) 시끄러우니 방에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바로 쫓아 보냈다는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서로 학창 시절에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이 이야기가 불현듯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인 임용시험을 네 번쳤다. 하지만 그때의 공부가 즐거웠던 적은 결코 없다. 직업을 얻기 위해, 직장을 가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했지 배움과 학습 자체가 내게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사실 임용시험을 준비할 때만큼은 정말 외롭고 우울한 그림자가 가득한 수험생이었다. 남편도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동일한 시기를 겪었으리라. 그런데 신기한 건 공부가 즐거웠고 하루하루 스스로 알아가는 기쁨이 컸다고 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싶을 정도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는


그런데 나는 왜 그랬을까? 나는 왜 우울했을까?


라는 질문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같은 공부를 했던 두 사람이 이렇게 공부에 대한 서로 다른 태도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고민 끝에 스스로 답을 찾고 싶었다. 문득문득 이 질문을 떠올리고 작년에 봤던 거실공부 관련 영상, 올해 초에 봤던 공부방 없애기 프로젝트를 혼합해서 생각하다 보니 나름의 답을 찾게 되었다.


나에게 '공부 = 외로움'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은 생계를 유지하기에 바쁜 삶을 사셨고 나이차가 있는 오빠 둘은 긴 시간 학교에 있거나 밖에서 친구들과 놀았다. 결국 혼자 남겨진 나는 외로워서, 그리고 어려운 가정형편을 극복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시험을 치는 학생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점수에 집착 아닌 집착을 했고 공부는 즐거워서가 아니라 해야 하니까 하는 삶을 살았다.


공부의 의미 따위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냥 학생이면 으레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 열심히 했고 눈을 돌려봐도 같은 반 친구들이 공부를 하니 그저 분위기를 따랐다. 좋은 점수를 받고 싶었고 선생님으로부터의 칭찬이 고팠다. 공부는 내게 이런 의미였다. 그러니 20대 중반의 수험생이었던 나에게도 공부는 즐거울 것이 없는 대상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아침에 책상에 앉으면 한 숨밖에 안 나왔다. 부정적인 사고의 고리를 끊고 싶었지만 그때는 이유도 모른 채, 그리고 방법을 찾을 겨를 도 없이 하루하루 그저 내 생각과 싸우며 '열심히' 공부할 뿐이었다. 혼자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고 외로워서 동네의 공공 도서관을 찾았다. 이것 또한 내 나름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며 나를 깊이 있게 돌아보고 나니 내려진 결론은 '공부 =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처럼 공부를 자발적으로 그리고 즐기며 하는 아이 었으면 한다. 내가 느꼈던 공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결코 나의 소중한 세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이 감정은 대물림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절절한 결단이 생겼다. 홀로 책상에 앉아 하얀 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이유도 모른 채 '그저 해야만 하는 의미 없는 공부'를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공간을 변화시켜야 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게 가정에서 머물고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느끼며 형제, 자매와 즐겁게 지내도록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나는 본격적으로 우리 집 공간의 재구성에 대한 의견이 생각날 때마다 글과 사진으로 카톡을 주고받았다.


- 만 2살인 막둥이가 소외되지 않는 구조

-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가 물건정리와 학습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구조

- 장난감이 아닌 책을 중심으로 한 삶을 살 수 있는 구조


정리해 보니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우리 부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거실을 바꾸기로 했다. 큰 목표는 위와 같았지만 실상은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아이들은 모르게) 의논을 했다. 남편은 소파를 거의 안 쓰니 공간확보를 위해 일단 버리자고 했고 나는 버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답했다. 3단 낮은 책장을 거실로 가져오냐 마냐로 몇 번의 대화가 오갔다. 오늘은 티브이를 중고로 팔아버리자고 했다가 다음 날은 안방으로 옮기자고 했다가 그다음 날은 그냥 그 자리에 두자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공간을 재구조화하기로 하고 나서 1-2주 정도는 아주 구체적인 의견을 주고받았다.


숱한 의논 끝에 남편은 한 날 크게 결심을 했고 우리는 큼지막한 가구들을 옮겼다. 아무 것도 사지 않고 그저 위치를 바꾸는 방법으로만 변화시킨지 세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무척이나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아이들은 거실에서 책을 읽고 가끔(?) 공부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 또한 세 아이를 학교로, 유치원으로, 어린이집으로 보내고 나서 거실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저녁밥을 먹고 나면 다섯 식구가 거실에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세심하게 계획해서 만든 거실 덕에 우리 가족은 더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세 아이 모두 즐거운 거실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여기까지만 썼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추후 이어서 써볼게요! :D)




거실의 메인인 소파 자리를 책장으로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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