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쓰자 처음처럼
한 번쯤은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내 삶에 일어난 변화에 대해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왠지 오늘은 이 글을 꼭 남기고 싶다.
블로그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날짜를 새삼스레 찾아보니 2021년 9월이다. 3년 내리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틈 날 때마다 일상의 생각, 아이들과 함께 읽은 그림책, 주말 나들이 이야기, 작가와의 만남 후기 등 그냥 쓸 수 있는 건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다 썼다. 만 한 살이 되지 않은 막둥이를 집에서 보고 있었을 때였지만 그건 내게 하나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세 아이 육아가 버거웠어도 어떻게든 그 턱을 가까스로 넘어가면서까지라도 내 손가락에 글 한 자락을 붙인 채로 살고 싶었다.
마음속에 울분이 차오르고 우울감이 나를 질식시킬수록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때 돈 이 들지 않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글쓰기가 내게는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무렇게나 글을 쓰다 보니 내 일상을 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남들이 아닌 나만 쓸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일까 몇 달에 걸쳐 고민했다. 남편의 육아휴직에 대한 단상을 아내인 내 입장에서 한 번 써보자 싶어서 고만고만한 글 들 사이에 조용히 하나씩 끼워 넣었다.
그러자 어느새 10편의 글이 만들어졌다. 그 글로 브런치에 두 번째로 도전했다. 그게 2022년 10월이다. 방금 정신을 차리고 계산해 보니 블로그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이룬 성과다. 정말로 누구 하나 내게 돈 한 푼 주지도 않았는데 그게 내게는 엄청난 보상이 되었다.
3년의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에는 일을 하면서도 글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새벽 5시, 5시 30분 기상을 하면서까지 글을 쓰고 밤에는 9시에 아이들보다 먼저 칼잠을 자는 삶을 지속했다. 내가 일을 하면서도, 아이 셋을 보면서도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브런치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내 글이 다음에, 카카오톡에, 구글에 노출된다는 게 그저 신기했다. 내가 타닥타닥 신나서 써 내려간 글들이 남들에게도 읽힌다는 게 그 자체로 기뻤다. 조회수 1000, 2000이 넘어갈 때마다 꼬박꼬박 알려주는 알람이 내 글쓰기에 조바심을 더해주었고 때로는 내 글을 읽어주는 구독자 수가 한 명 한 명 늘어가는 게 과분하기만 했다. 진심으로 달아주시는 댓글이 온 마음으로 감사했고 책을 쓴 작가들이 독자와의 만남을 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달콤한 상상도 해봤다.
그러던 어느 날 특별한 일이 또 일어났다. jtbc 뉴스룸 작가님으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평범한 1월의 어느 날 저녁, 아무런 예고 없이. 육아휴직에 대해 쓴 글에 댓글을 남기셨고 나는 설레는 맘으로 바로 연락을 드렸다. 그렇게 작가님과 부산에 사는 어흥라떼 사이의 zoom 인터뷰가 성사되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신날 수 있을까? 길거리를 가다가 깜짝 인터뷰를 해도 일상의 선물을 받은 기분일 텐데 나는 내 글을 통해 그 기회를 얻었다. 10초든 20초든 5분이든 인터뷰 시간은 중요치 않았다. 매일 새벽 해가 뜨지도 않은 그 시각에 아무도 시킨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타닥타닥 노트북으로 써 내려간 글들이 내 삶을 이렇게도 밝게 비춰줄 수 있다니. 내가 잡은 그 기회가 꿈만 같아서 두 눈으로 댓글을 보고 또 보았다.
이후에는 브런치에서 가끔씩 글로 보이는 그 업체의 협업제안도 받았다. 실시간 원격 수업만 해봤던 나는 구글밋으로 화상미팅도 했다. 아, 회사원들은 이렇게 화상으로 미팅을 하는구나? 우물 안 개구리 같던 내 삶에서 또 한 걸음을 내딛는 기회가 주어졌다.(고민 끝에 긍정의 답을 드리진 못했지만) 그 기회가 왔다는 것, 그게 내겐 가장 중요한 성과였다.
이제는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삶도 살고 있다. 이것도 참 우연한 기회였다. 작년 이맘때쯤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을 때의 장점을 소개한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이게 뭐지? 나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시민기자 신청을 해 두었다. 평소에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소심하고 답답하리만치 신중한 나인데 이상하게도 글쓰기에 관해서만큼은 번개 같은 실행력을 가지게 되었다. 신청을 한 것도 잊고 있을 무렵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갑자기 오마이뉴스가 다시 떠올랐다. 내가 썼던 글 중 조회수가 높았던 글 하나를 편집해서 처음으로 송고해 보았다. 오 마이갓, 여기도 신세계다! 내가 기자라니!!!!!
나만 이렇게 우물 안을 온 세상으로 착각하고 살았던 걸까? 다른 우물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갇혀있던 사고가 아주 잔잔한 조각으로 산산이 깨지는 경험을 했다. 글쓰기 베테랑으로 보이는 시민기자님들을 보면서 나는 또 자극을 받는다. '이게 글 소재가 된단 말이야?' 싶은 것도 어쩜 이렇게 통찰을 담은 멋진 글로 만들어내시는지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리고 쓰면 쓸수록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그 마음이 더욱더 강렬해진다.
사실은 지난달 말부터 글쓰기가 참 어렵게 느껴졌다. 잘하려고 할수록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글이 안 써졌다. 누가 보면 작가도 아닌데 유난스럽게 왜 이러는 거야 싶겠지만 나로서는 지금의 내가 몰두할 수 있는 건 그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손안에 꼭 쥐고 싶은 보물은 다른 무엇도 아닌 '글을 잘 쓰는 것'이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남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 욕심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자리를 잡자 한 자도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내 삶이 변한 것도, 내게 여러 기회가 찾아온 것도 글을 잘 쓰려는 욕심으로부터 나온 것이 전혀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다 보니 글감이 내 노트에 차곡차곡 모였고 그걸 굴비를 엮듯 차분하게 하나하나 엮어가니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그리고 내 생각도 행동도 삶도 변해있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싶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그 막막함이 오히려 부러운 오늘이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마음대로 쓸 수 있었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했다.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자. 그렇게 그렇게 쓰다 보면 언젠가는 또 마음의 키가 훌쩍 자란 어른이 되어 있겠지.
사진 © goumbik,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