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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Apr 10. 2023

직장에서 만난 동료와 독서모임을 합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사귄 친구

지난주 화요일은 육아휴직을 하고 나서 처음으로 저녁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3월부터 남편의 복직과 세 아이의 신학기 적응을 위해 힘쓰던 엄마로서의 내가 평일 저녁에 나갈 생각을 하니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육아를 전담하는 분이라면 내 마음을 정말 잘 아시리라 믿는다).


이 모임은 작년 10월부터 이어 온 직장동료와의 독서모임이다. 올해 3월부터 나는 휴직을 했고 직장동료는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겼지만 모임을 지속하기로 했다. 우리 둘의 근무지가 달라진 이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을 가방에 쏙 집어넣고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독서모임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나의 첫 발령지였던 면소재지 중학교에서 시골살이의 외로움을 겪고 있을 무렵 교직경력이 많으신 선생님께서는 젊은 신규교사들을 위해 독서모임을 제안하셨다.


대학시절 조모임, 임용시험 준비를 위한 스터디 외에 독서모임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내가 그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는 참 낯설었다. 하지만 1년 간 책 한 권과 차 한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책을 중심으로 각자의 생각을 나누었던 그 모임이 내게는 여전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왜냐하면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달리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초임 때 1년간 지속했던 독서모임 이후로 나는 약 10년 간 독서모임을 한 적이 없다. 신도시 학교로 옮기면서 세 아이를 낳아 기르고 휴직과 복직을 번갈아 하던 나였기에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책과 친하지 않았다. 독서란 그저 남의 취미일 뿐 내 취미는 전혀 아니었다.


작년 가을 남편은 갑자기 독서모임을 하나 만들어야겠다며 누구랑 함께 할지,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 나는 궁금하지도 않은 모임 계획을 구구절절 내게 늘어놓았다. 약속은 상대방의 동의를 사전에 얻고 잡는 우리 사이이기에 남편은 나에게 한 달에 한 번 평일 저녁에 독서모임을 가져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흔쾌히 OK를 했던 나였지만 속에서는 은근히 심통이 났다. 막 퇴근한 내게 세 아이를 맡겨두고 평일에 모임을 나가시겠다? 그럼 나도 집을 나갈 근사한 핑곗거리를 하나 만들어야겠네? 마침 나 또한 근무를 하면서도 독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시기였기에 그 있어 보이는 독서모임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내 속에서도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솔솔 피어올랐다.


나이는 동갑이지만 나보다 한참은 생각이 깊어 보이는 그녀가 떠올랐다. 알고 지낸 지는 4년이 다 되었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나는 일반교과 교사, 그녀는 특수교사였고 근무부서도, 머무는 교무실도 달라서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작년 3월 복직을 하며 같은 부서가 되었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가끔 있었다. 아이 셋 엄마인 나와 비혼인 그녀는 참 다른 삶을 사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그리고 새로운 배움에 열정이 있다는 것도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티 내지 않는) 조용한 다독가라는 점에서 초보독서가인 나에게는 독서모임 메이트로 딱이었다.


그녀가 내 조심스러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떡하지?'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카톡을 통해 독서모임을 제안했다.  강아지가 부끄러운 제 꼬리를 감추듯 편하게 대답해 달라는 소심한 말도 덧붙였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독서모임을 내게 제안해 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게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으로 비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친구의 이런 모습이 나는 참 좋다. 속내를 훤히 드러내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람.


그간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눈 책들을 세어보니 5권이다. 때로는 함께 고른 책이 너무 어려워서 서로 불만을 쏟아내며 모임을 시작한 적도 있었고 때로는 각자의 일이 너무 바빠 꾸역꾸역 한 권을 겨우 다 읽고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나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10년이 넘은 친구와도 나눌 수 없는 어려운 가정사, 풀리지 않는 일상 고민들을 이 친구에게 나누었고 친구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성장과정과 직장에서 겪은 어려움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독서모임을 하는 그 시간에 각자 마음속에 담아왔던 보따리를 훤히 내어놓고 함께 답을 찾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책은 혼자 읽었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다른 사람과 그 책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의미도 상당하다. 때로는 책 내용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해도 주제와 소재만으로도 대화가 무한하게 확장되는 경험을 하면서 더더욱 책과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많은 외로움 가운데서 시간을 보냈다. 혹여나 나와의 만남이 지인에게 피해가 되지는 않을지 조심하며 은둔하는 삶을 2년 넘게 지속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어려움을 벗어나서라도 내가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제는 지인들과의 오프라인 만남이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고립감과 우울감이 심화되는 시간들 속에서도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지고 싶어 하는 열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내가 특히 더 그렇다. 세 아이를 기르며 육아와 직장일에 온 에너지를 쏟던 내가 평일 저녁 겨우 남아있는 에너지를 타인과의 만남에서 쓰려고 보니 아무나 만날 수는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돌아보니 배울 것이 있고 깨달음이 생겨나고 내 삶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과의 모임이 그리웠던 나였다.


친구도 3월부터 바쁜 신학기를 보내다가 처음으로 퇴근 후에 사람을 만난 게 바로 나와의 독서모임이었다고 한다. 나와 똑같이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왔다는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10월의 어느 날 독서모임을 제안했던 내 선택은 탁월했다는 답을 스스로 내렸다. 사람을 알아가는 방법과 계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책을 중심으로 한 만남이 이토록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또한 내게는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사람들의 만남에 함께하는 밥도 있도 커피도 있지만 ‘책’ 한 권도 같이 놓여 있다.


직장생활을 하며 고민과 고충이 있다면, 삶에 대한 더 깊은 대화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면 이렇게 책을 사이에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 주제와 장르, 소재 뭐든 괜찮다. 그리고 둘이든 셋이든 다섯이든 인원도 아무렴 다 괜찮다.


지금 당장 주변을 둘러보시길 바란다. 두리번두리번.

아무리 독서모임이라도 갬성샷은 빠질 수가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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