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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Apr 06. 2023

입맛에 맞는 책만 읽다가 이제는 벽돌 책에 도전합니다

글밑천이 부족한 나에 대한 셀프처방

육아휴직 중인 저는 아침에 세 아이를 각 기관으로 데려다주는 게 저의 주요 임무 중 하나입니다. 첫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와서 둘째와 셋째의 외출 준비를 마무리하면 또 현관문을 나섭니다. 둘째를 유치원으로 데려다주고 나서 마지막으로 거리가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셋째와 함께 동네 산책을 합니다. 어느새 도착한 어린이집 앞에서 막둥이와도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그러고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와요.


세 아이들을 먹이느라 미처 챙겨 먹지 못한 제 밥을 간단하게 차려서 조금 늦은 아침식사를 합니다. 설거지를 후딱 해내고 나면 그때부터는 온전한 제시간이에요. 청소기를 돌리든 잘 말린 옷과 수건을 개든 글을 쓰든 커피를 마시든 저의 의지에 따라 제 맘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약 5시간 30분 정도 주어집니다.


저는 주로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책을 읽습니다. 글은 하루에 한 편씩 쓰는 게 꿈이지만 때로는 여러 상념이 제 머릿속을 떠돌아다녀서 차분하게 써 내려가기 힘든 날이 있습니다.(어쩌면 이마저도 스스로에게 하는 핑계일 수도 있지만요.) 그럴 땐 책상에 널브러진 책 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어요. 그 덕에 3월 중순부터는 독서량이 급격하게 많아지고 있습니다.


1.

2주 전 집에서 거리가 조금 있는 도서관에 처음 갔어요. 그날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습니다. 그중 한 권은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고명환 저)였습니다. 편안하게 쭈욱 읽어 내려갔어요. 내용이 쉽고 재밌더라고요.


내용 중 10쪽 독서법이 있었습니다. "책 한 권을 딱 10쪽씩만 읽는다. 단, 한 권만 읽는 게 아니라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다. 독서 초보자에게는 다섯 권을 추천한다. 각 책마다 10쪽씩 읽으면 하루에 50쪽을 읽는 것이다. 더 읽고 싶어도 참는다. 딱 10쪽만 읽는다. 궁금해도 참는다. 그래야 내일의 독서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즐겁게 독서할 수 있다."


저는 이제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이 생겼지만 초보자에게는 이 방법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여러 권을 동시에 읽지 않더라도 단 한 권이라도 하루에 10쪽씩만 읽으면 감질맛이 나서라도 책을 손에 쥐게 되겠다 싶더라고요.


2.

가끔씩은 집안일을 하면서 유튜브 강의를 듣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특정 강의나 프로그램을 찾아서 들을 때도 있지만 뭘 들어야 할지 모를 때는 앱 메인 화면에서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해 주는 것들 중 마음이 가는 영상을 클릭합니다. 그날도 이런 방식으로 <책 잘 읽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세바시 강연을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배달의민족 대표인 김봉진 님은 여러 독서법을 재미있게 알려주셨는데 그중에 눈길이 가는 부분이 '두꺼운 책에 도전하자'였습니다. 매우 두꺼운 책들은 읽다가 설사 딴생각이 나더라도 끝까지 읽어내라고 하시더군요. 이유는 독서는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3개월 정도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내가 독서를 잘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대요. 그때쯤 우리가 소위 '벽돌 책'이라고 부르는 두꺼운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가진 생각과 잘못된 편견들을 깨부술 수 있다고 해요. 이런 책을 읽어내기 위한 구체적인 팁도 주셨지만 그것보다는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한다!'라는 멘트 자체가 제 머릿속에 콕 박혔습니다.


3.

이전 글에도 썼지만 최근 2회독 한 책이 있어요. <공부머리 독서법>입니다. 이 책에는 "10번을 읽든, 100번을 읽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같은 책 딱 한 권만 완벽하게 읽어봐. 그러면 무조건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 있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제대로 읽은 지식도서 한 권은 학습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해요. 요즘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문해력을 향상시키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을 몇 페이지에 걸쳐 경험담과 함께 설명해 두었습니다.




서로 다른 책과 강연의 내용이 제 머릿속에서 짬뽕되어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요즘 글을 쓰면서 제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읽는 책들이 다 제 입맛에 맞는, 다시 말해 제가 읽어내기 쉬운 책들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답을 내리게 되었어요.


책을 많이 읽고 나서 글을 쓰면 축적된 지식과 어휘력이 뛰어나 같은 내용의 글도 더 맛깔나게 쓸 수 있을 텐데. 저는 아쉽게도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쓴 사람이 아닙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글도 써나가기 시작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어느 날 저를 돌아보고 나니 글밑천이 없더라고요. 어휘 창고에 어휘가 없는 그런 빈털터리 같았어요. 조바심이 났습니다. 나는 바퀴가 작디작은 유아용 자전거를 타고 낑낑거리며 가고 있는데 제 옆에는 자동차 타이어만 한 바퀴가 달린 사이클 자전거를 타고 여유 있게 가는 사람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블로그든 브런치에서든 뛰어난 문장가들의 글을 보며 주눅이 들었어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제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그러자 어찌어찌 쓰던 글도 더 이상은 쓰지 못하겠더라고요. 글쓰기에 브레이크가 걸린 겁니다.


이 상황에 며칠간 답답함을 느끼며 소심한 제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쓸 수 없는 막막함 가운데 있었죠.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안일을 하던 오후에 앞서 말씀드렸던 세 가지 내용이 제 머릿속에서 하나로 쫙 합쳐지면서 "벽돌 책을 하루에 10페이지씩 읽어야겠다."로 귀결되었어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딱히 이 내용들을 메모하거나 집중해서 두세 번을 읽고 본 것도 아니었는데 어쩜 이리 제게 딱 맞는 새로운 처방을 스스로 내릴 수 있었던 건지 저 조차도 신통방통했습니다.


그날 퇴근한 남편에게 같이 벽돌 책을 읽어보자고 제안했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도 읽지는 않으면서 그동안 한 권, 두 권 책장에 모아두기만 한 벽돌 책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을 제가 잘 알거든요. 남편과 저 각자 읽고 싶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던 책 한 권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딱 10페이지만 읽자고 이야기했어요. 벽돌 책을 사람들이 왜 읽는지 이해하지도 못했고 그 어려운 책을 읽어내는 사람들을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저도 드디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오늘이 겨우 3일차입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앞으로도 쭉 할 거거든요. 꾸준함이 장점인 제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이 정도 분량은 잘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루에 고작 10페이지니까요.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한 권 한 권 벽돌 책을 읽다 보면 제 생각이 확장되고 편견이 깨지고 부족했던 어휘력이 쑥 늘 것을 압니다. 저는 꾸준한 노력의 힘을 믿습니다. 홈트를 지속하자 저도 모르게 조금씩 근육이 생겨났던 것처럼 그 신기한 경험을 책 읽기를 통해서도 누려보고 싶습니다.


사진 © olenkasergienk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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