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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Mar 07. 2023

둘째를 등에 업고 참여했던 그림책 모임

그렇게 그림책에 빠져들었다

둘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부터는 남편과 사소한 일로도 투닥거릴 정도로 육체적 피로감이 심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던 3차원의 삶이 단조로워진 것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도 있었다. 이미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며 첫째를 집에서 돌본 경험이 있는터라 앞으로 보내게 될 어쩌면 뻔한 삶을 새로운 일들로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무얼 하면 좋을까? 하지만 내게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다시 말해 아침과 오후에 등하원을 책임져야 할 4살 난 딸과 이제 태어난 지 100일이 된 둘째가 있었다. 이 조건만으로도 선택지는 절대적으로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 흔한 문화센터를 가면 되지 않느냐? 하시겠지만 그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첫째가 다닌 2-3개월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문화센터에 등록한 적은 없다.)


할 수 있는 건 없고 하고 싶은 건 도무지 무엇인지 모를 그때! 마침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그림책방에서 엄마들끼리 그림책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종종 손님으로 방문해 본 적은 있지만 이런 낯선 모임에 참여하는 건 선뜻 마음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100일이 갓 지난 둘째를 데리고 함께 가야하는터라 이게 가능할지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변화는 하고 싶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자체는 몇 없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신청을 했고 용기를 내어 첫 모임에 나갔다.


막상 가보니 다들 4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인원은 나를 포함한 4명으로 구성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둘째를 데리고 참여하는 것도 흔쾌히 이해해 주셨다. 일주일에 한 번 오전 10시 반쯤 모여서 각자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다른 엄마들에게 읽어주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첫 모임을 한 그날 사장님은 갑자기 자기가 그림책 한 권을 먼저 읽어주겠다고 했다.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어른이 어른에게 그림책을 읽어준다고?


이 낯부끄러운 상황을 앞으로 나는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나란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그림책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다. 책을 좋아하는 남편을 만나, 그리고 첫째가 태어나서 그나마 최근 1-2년에야 책이 있는 환경에서 살았을 뿐이지. 어른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는 것도 낯설었지만 정작 내가 다음 주부터 이 모임에서 그림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점이 더욱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저 사람이 그리워서, 육아를 하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 나간 모임일 뿐인데.


하지만 나의 걱정과는 별개로 그다음 주 모임부터는 각자가 준비해 온 그림책을 읽어주고 또 다른 엄마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보고 들었다. 둘째와 함께 하는 외출이라 수월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차가 없는 날에는 택시를 타고서라도 갈 만큼 내게는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한 주 한 주 모임에 잘 참여해 가던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00이(첫째)한테 책 읽어주는 실력이 점점 느는 것 같아.


누군가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봤던 경험이 거의 없던 나에게 이 모임은 정말 유익했다. 타인이 보여주는 그림과 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어떻게 읽으면 듣는 이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배워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전혀 몰랐던 세 엄마들과 그림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내 찌들었던 마음은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치유되어 갔다. 그리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엄마들이라 육아의 고민도 비슷했고 그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외로움의 그늘은 조금씩 사라졌다. 덤으로 세상에는 정말 의미 있는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형식의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책 추천을 받기도 했고 그림책방 사장님의 추천을 받거나 매대에 큐레이션 되어 있는 책들을 살펴보며 그림책 무지렁이인 내가 그림책을 접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져 갔다.


지금 돌이켜보니 책과 친하지 않았던 내가 여태까지 세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을 꾸준하게 읽어줄 수 있었던 건 그리고 일상이 피곤하고 힘들어도 캐리어를 끌고 도서관을 2-3주마다 한 번씩은 꼭 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모임 덕분이었다. 그림책이 내 구겨진 마음을 다시 곱게 곱게 펴줄 수도 있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또 책을 읽지 않는 삶을 살던 내가 그림책을 통해 감동을 받고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우리 아이들도 한 권의 책이 지닌 그 대단한 힘을 느껴보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생겨났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걸 아이에게 추천할 수는 없다. 내게 유익하지 않은 걸 아이에게 줄 수도 없다. 유명하다는 책, 좋다는 책을 한가득 구해와서 책장에 꽂아놓고 아이에게만 읽어보라고 한다면 그 말에는 힘이 없다. 내가 그림책을 통해 감동받은 경험, 그림책을 보면서 깔깔 웃었던 경험, 그림책을 보며 눈물을 흘린 경험, 그림책을 통해 마음이 바뀐 경험. 그 일상의 작은 경험들이 지금의 책육아를 하는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부모가 그림책과 친해지는 경험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내가 그렇게 변했으니까.


둘째와 함께 참여한 그림책 모임(2019)



사진 © yasya,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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