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그날이 오길 바라며
내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야망이 있다. 이걸 듣는 사람은 나를 엄청난 속물이라고 평가할 것 같아 지금껏 입 밖에 내본 적이 없다.(심지어 내 단짝인 남편에게조차도) 하지만 이제는 글로 남겨두고 싶다. 그것은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팔아 1,000만 원을 버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거나 책 읽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사실 이 모든 것들을 싫어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며 자발적으로 글을 쓴다는 사람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기에 나 또한 이에는 정말 무관심했다. 그저 대학 때는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리포트를 쓰기 바빴고 다이어리에는 했던 일을 단순히 기억하고자 하는 의도로 짧은 글을 남겨뒀을 뿐이다.
그런 내가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몇 가지 '계기'가 있다. 사실 그때는 이런 일들이 내게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알지 못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돌아보니 내가 글을 쓰고 싶게, 더구나 '잘' 쓰고 싶게 만든 계기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2012년 2월 나는 임용 4수 끝에 합격을 했고 9월에는 시골의 어느 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6개월간 근무를 하고 나니 나는 뭔가 알맹이가 빠진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에 목표지향적이었던 나라서 20대의 대부분을 바쳐 노력했던 '교사'라는 목표를 이루고 나니 더 이상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서 운영한다는 '평생교육원'을 알게 되었다. 자격증 콜렉터인 나는 뭐라도 따놓자 싶어서 독서논술지도사 과정을 듣기로 했다. 6개월 간 매주 토요일 오전을 그 수업을 듣느라고 애썼다. 자취를 하던 나는 시골에서 금요일 밤만 되면 본가로 왔다. 바로 토요일 아침 9:00에 있는 독서논술지도사 과정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좋은 글과 좋지 않은 글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쉽게 읽혀야 하고 주술 호응이 잘 맞아떨어져야 하고 등등. 글쓰기에 열정이 있는 교수님 덕에 나는 '글'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수업은 매주 과제가 있었다. 교수님에게 배운 것을 직접 내 글에 적용해보면서 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손에 쥔 이후에는 이내 글 쓰기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평범한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2019년 어느 날 둘째를 낳고서 특별할 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내가 사는 지역에서 정착사례 후기 공모전을 개최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뭐라도 하자 싶어 그리고 사실 그 공모전의 상금이 매우 탐나서 2주의 시간을 두고 글을 써서 응모를 하기로 했다. 매일 밤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노트북이 있는 방으로 와서 개요를 2, 3일에 걸쳐 짰고 그 뒤부터는 줄글을 쭉쭉 써내려 갔다. 퇴고에 퇴고를 몇 차례 거듭하고 더 이상은 못하겠다 싶을 때쯤 마무리 지은 원고를 담당자 이메일로 전송을 하고는 결과가 나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결과는 우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상금은 바로 '20만 원'이었다. 이때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무도 시킨 적이 없는데 내 노력으로 2주간 육아 퇴근 이후의 소중한 시간을 들여 글을 썼고 그 결과 부수입도 얻은 것이다. 정말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지자체 시장님과의 만남도 있어서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간담회에 참석할 기회도 얻었다. 신기한 일들이 이어지자 일상에 굉장한 활력이 더해졌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약 빨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덧 나는 또 하루하루를 내 일상에 매몰되어 살고 있었고 셋째인 막둥이를 낳고서는 애셋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만으로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글을 쓰기는커녕 공모전 하나를 우연히 알게 되면 나가자! 마음을 먹고도 한자도 쓰지 못해 이내 포기했던 날들이 지속되었던 것이다.
올해를 시작할 무렵 나는 글쓰기에 대한 욕구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36년간 책을 전혀 즐겨 읽지 않던 나였는데 작년 여름 이후부터 책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책이 너무 달아서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날들이 점점 늘어났고 세상에 이렇게나 좋은 책이 넘쳐난다는 걸 나는 왜 그동안 몰랐나 싶었던 후회를 할 정도였으니.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하나 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결국 읽은 책에 대한 소감을 글로도 남기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먹은 것과 동시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도 불이 지펴졌다.
하지만 글이란 걸 잘 써본 적이라고는 그저 지역 정착사례 수기 공모전에서 '우수'를 한 경험뿐이었다. 남들은 저마다 자신의 무기라고 할만한 특색 있는 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였다. 그래서 지역 신문에 육아 관련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고 나만의 특별한 글감을 찾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하기도 했다. 10개월간 이런 글, 저런 글을 마구잡이로 써서 올렸다. 읽어주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점점 쓰다 보니 그나마 남편의 육아휴직이 2년 차라는 건 조금은 남들에게 특별한 소재로 비췰 수 있겠다 싶었고 이걸로 브런치 작가 응모까지 하게 된 것이다.
브런치를 계기로 다시 내 글쓰기 열정에 불이 활활 붙어버렸다. 이제는 글을 그저 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싶어 졌고 '잘' 쓰고 싶어졌다. 여전히 나만의 특출 난 글감이라고 생각되는 자랑거리는 크게 없다. 하지만 어떤 내용의 글을 쓰든 우쭐대거나 자기만족에 빠진 글이 아니라 진실에 기반해 나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차곡차곡 담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 글로 인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새로운 생각을 하고 나은 삶을 꿈꾸게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글을 통해 통장에 차곡차곡 머니가 들어오는 것도 마다할 생각은 없다.
교사로, 엄마로, 아내로, 딸로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는 자괴감에서부터 벗어나고자 한 몸부림이 지금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만들어냈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잘 쓰고자 하는 노력은 꽤 오랜 시간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 © craftedbygc, 출처 Unsplash
요즘 저는 이은경 작가님의 책 ‘오후의 글쓰기’를 읽고 있습니다. 매 강의 끄트머리에는 글쓰기 과제가 있는데 마침 오늘 읽은 부분은 제가 한 번쯤 쓰고 싶었던 소재에 대한 글이라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