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아이를 얻었지만 점점 나는 잃게 되는 '육아'로부터
나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사귄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는 가깝게 지냈던 시기도 있지만 각자의 삶이 바빠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며 바라보기만 한 적도 있다.
한 교회에서 만나 청년의 시기까지 주일마다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각자의 사정으로 교회를 옮기게 되었다. 그 뒤로는 가끔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 우리가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지금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그리고 친구는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두 살 터울의 딸 둘을 키웠던 시기가 참 외롭고 힘들었는데 내 친구는 그 혹독한 시기를 지금 겪고 있다.
2주 전 이 친구를 포함하여 총 네 명이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그간 내게 일어난 2년의 일들에 대하여, 특히 글쓰기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독서가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다듬어갔는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들을 위주로 대화를 나눴다.
이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자꾸 눈물을 흘린다. 마음에 울컥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보다. 그런 친구의 마음을 내 마음에도 그리고 내 눈에도 고이 담아두었다. 하지만 2주의 시간 동안은 그날을 다 잊은 듯이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그러고는 이틀 전 갑작스럽게 친구와 연락이 닿아 어제 둘이서 다시 만났다. 2주 만에 만났는데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각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깊이 있게 또 잔잔하게 다시 나누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야기해 본 적 없는 유년 시절의 기억과 상처에 대해 그리고 각자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려면 여러 명이 아니라 단 둘이서 만나야 해."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여러 명이서 만나도 좋은 이야기는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왜 둘이 만나야 그런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거지?
하지만 어제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누군가를 만나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그저 피상적인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만 해왔다. 내 삶에서 일어난 소용돌이 속의 흙탕물을 굳이 남에게 꺼내 보이기 싫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잔잔한 파도 같은 이야기만, 아니 되려 반짝이는 윤슬 같은 이야기만 모아서 자랑삼아 내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만나서 나의 상처, 내가 육아를 하며 스스로 자괴감을 느꼈던 순간,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자존심을 내려놓고 진솔하게 이야기하자 친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남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동안 깊은 이야기를 시작해 본 적이 없기에 단 둘이 아니라 네다섯 명을 함께 만나도 괜찮았다. 어찌 보면 얕은 깊이의 대화만 나누고도 꽤 괜찮은 이야기를 했다고 자부했던 것이다.
삶에서 타인과 꼭 깊은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러지 않고도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내 깊은 속이야기를 드러내면 상대로부터 받는 위로와 치유가 있고 또 상대방을 통해 얻는 기쁨이 있다. 마찬가지로 나도 대화의 상대에게 좋은 멘트를 건네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기꺼이 되어줄 수 있다.
친구는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다가 눈물을 울컥울컥 쏟아냈다. 마음속에 차오른 감정들이 더 이상 누를 수 없을 만큼 많아졌나 보다 싶었다. 친구의 눈물을 보자 나도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울어도 괜찮아. 마음껏 울어.
그 말을 건네면서도 친구의 여러 마음이 헤아려졌다. 나는 그 친구가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육아라는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며 마주 해온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마주하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친구가 여러 번 말한다.
00아, 네 말이 너무 따뜻하다.
그리고 진짜 많이 변했다.
내가 25년간 지켜본 친구는 장점이 참 많은 아이다. 우리는 만나면 꽤 즐거웠고 좋은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와 얽힌 감정들을 굳이 서로에게 말로 표현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친구가 내게 건넨 갑작스러운 칭찬이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나도 생각만 하고 있던 친구의 장점을 말로 표현해 보았다. 친구는 그동안 이런 칭찬은 처음 들어본다며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해 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우리는 헤어지는 그 시간이 아쉬워 가까이에 있는 우리 집을 함께 지나쳤다. 결국 친구가 타야 하는 버스가 오는 정류장에 가서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친구가 어제 내게 건넨 이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00아,
나는 네가 글쓰기로 일상을 보낸다는
그 말이 참 부럽더라.
나는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친구가 미처 다 알지 못한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어두운 터널을 걸어오는 그 길 가운데에서 삶의 변화가 드라마틱하게 일어났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괜찮다고 친구를 위로하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이제 시작이라고. 지금부터 네가 좋아하는 걸 찾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리고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이제 하나씩 하나씩 답을 찾게 될 거라고.
내 친구가 남편이 아닌, 아이가 아닌, 가장 소중한 '나'에 대해 다시 알아가려는 노력을 시작한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또한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나은 친구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길 꿈꿔본다.
사진 © hannahbusing,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