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제3회 푸드 에세이 공모전 출품작
남편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자에게 일어난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까지도 카톡으로 공유하는 편이다. 출근길 버스에서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일들, 오늘 안에 우리가 아이들과 관련해서 꼭 해내야 할 것 등. 거창한 건 없지만 잊고 싶지 않은 내용들을 글과 사진으로 주고받는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나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육아휴직 중인 남편은 집에서 셋째를 돌볼 시간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에 알람이 울렸다. 화면을 보니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있었다. 그건 바로 만둣국 한 그릇이었다. 이어지는 멘트는
“맵싸한 만둣국, 아버님 붙잡아서 차려드림 ㅋ”
남편은 아침에 아이들을 돌보러 와주신 아빠에게 그냥 가시지 말고 점심을 같이 먹자고 말했단다. 마침 일을 가지 않는 날이었던 아빠는 사위의 제안을 받아들여 만둣국을 먹고 가셨다고 했다.
나는 당황했다. 생전 누구에게 직접 요리를 만들어서 대접하는 일이 잘 없는 남편이 갑자기 아빠에게 만둣국을 만들어 드렸다는 사실이. 퍼뜩 든 생각은 ‘남편이 아빠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그랬나?‘였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참 많이 외로워했다. 엄마가 아닌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는 건 여전히 흔치 않은 일이라 아이를 돌보면서 낮에 편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막둥이를 봐주러 평일 아침마다 흔쾌히 와주시는 아빠를 남편은 참 좋아했다. 집으로 돌아가시려는 아버지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식사를 하고 가시라고 했을 거다.
한편으로는 그 당시 남편의 요리 자신감이 넘쳤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남편은 자연스럽게 저녁 준비도 스스로 도맡았다. 어느 날부터 내가 퇴근할 때가 되면 멸치육수를 내는 날이 잦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만두를 활용해 만둣국을 종종 만들었는데 그 맛이 좋아서 나뿐만 아니라 세 아이도 모두 다 잘 먹었다. 가족의 반응 덕에 만둣국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남편이 장인어른에게 직접 만든 국 한 그릇을 의기양양하게 내어드린 것이리라.
이 일이 너무도 인상 깊어서 그날 하루 종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편의 마음씀씀이와 행동에 크게 감동받았다. 그런데 계속 이 일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남편이 만둣국을 끓인 건 진짜 본인이 외로워서 그리고 그저 요리 실력을 뽐내려고 그런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빠와 나는 거리가 있는 부녀사이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고 아빠는 엄마와의 다툼도 잦았다. 그래서 아빠는 나에게 참 무섭고 어려운 분이었다. 평생 아빠와는 마치 기차가 달리는 철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있는 것처럼 서로가 한 발짝 떨어져서 거리를 두며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생각과 달리 그 거리가 좁혀질 수도 있겠다 싶은 일이 생겼다. 그건 2년 전 셋째를 낳고 나서 육아우울증에 시달린 내게 아빠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덕이다.
아빠는 어렸을 때 내게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게 미안하셨는지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때마다 속으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단정 지었던 나였다. 내게 아빠는 결코 편한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세 아이와 맞이하는 평일의 아침이 너무 버거워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아빠의 그 말이 신기하게도 계속 떠올랐다. 몇 날 며칠 어떻게 부탁을 드릴지 끙끙 앓으며 고민한 끝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렸다. 아빠는 흔쾌히 와주시겠다고 답한 그다음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오셨다.
이런 상황이 되자 남편은 나에게 아빠를 좀 살갑게 대해드리고 말동무도 되어 드리는 게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무뚝뚝한 내가 살가운 딸로 바뀌는 건 너무도 어려웠다. 셋째를 살뜰히 돌봐주시면서 기저귀도 갈아주고 장난감으로 함께 놀아주는 아버지가 참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유년시절의 내게 자상하지 못했던 아빠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상처가 많은 내 마음을 들킬까 봐 조심스러워진 나는 아침마다 참 혼란스러웠다. 아빠의 도움이 진심으로 감사했지만 그 속마음을 따뜻한 말 한마디로 내뱉는 것조차 어려운 나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나를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잘 알기에 이해를 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답답해했다.
아빠는 내 뒤를 이어 육아휴직을 하는 남편 또한 도와주기 위해 계속해서 와주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그는 매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타 드리는 것, 차비라도 하시라고 드리는 용돈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고 여겼나 보다. 또한 딸인 내가 보통의 딸처럼 아버지를 대하지 못하는 그 모습이 마음 한편에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들인 최선의 음식을 장인어른에게 대접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오히려 나이가 드신 장인어른이 돌아가시는 발걸음이 외로우실까 뜨끈한 국이라도 내어드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을 거라 생각하니 이내 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여전히 아빠와 나는 거리가 있는 부녀사이다. 하지만 남편이 아빠에게 만둣국을 끓여드린 그 일 이후로는 나도 아빠를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리고 평행선 같았던 나와 아빠의 거리가 언젠가는 더 가까워져 있겠다는 희망도 생겼다. 꼭 남들처럼 살가운 딸이 되어드리진 못해도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상처에 머물러서 현재를 감사히 살아가지 못하는 내가 되어선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더 늦기 전에 용기를 내어 말 한마디라도 더 다정하게 하고 고맙다는 표현도 조금씩 해보았다. 어떤 거창한 차림새 없이도 남편이 자신의 마음을 만둣국으로 표현한 것처럼 나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빠에게 표현해 봐야겠다는 다짐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 셋째에게 표현해 주시는 그 사랑이 내게 못다 부어주신 사랑의 늦은 표현이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사진 © jonecohen, 출처 Unsplash
이전에 썼던 글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편집했습니다. 겸손한 마음도 담고 욕심도 조금 담아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똑 떨어졌네요. 하지만 이 또한 제 글쓰기 인생에 귀중한 경험이 되리라 믿기에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도 올립니다. 같은 공모전에 출품했던 이웃님이 브런치에 올리시는 걸 최근에 보고 저도 용기를 냈어요.
이 글을 고쳐 쓰면서 며칠간 울었습니다.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글이 나의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쭈욱 글을 쓰려고 합니다.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