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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흥라떼 May 23. 2023

초1 아이가 "학원 하루만 쉬면 안 되냐"고 물었을 때

중1 아이들을 보며 다짐했던 마음이 다시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작년은 육아휴직 3년의 종지부를 찍고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복직한 첫 해였다. 돌이 지난 셋째까지 키우고 복직한 내가 엄마이자 교사의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학생들을 보는 내 시야가 전보다 넓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출근을 해서 근무를 이어갈수록 학교가 이전보다 많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건 바로 지쳐있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당시 1학년 일부 학급에도 수업을 들어갔는데,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해 팔딱팔딱 생기가 넘칠 것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 피로에 지쳐있는 아이들이 종종 보였다.


1학기에는 방과 후에 세 명의 1학년 학생과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내 수업의 주요 내용은 아이들과 내가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의 기사를 한 편씩 공유하고 내용을 살핀 뒤 뉴스 기사의 형식, 특징에 대해 배우는 것이었다.


2022년 5월, 한 학생은 '공부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국내 학령기 아동, 청소년의 20%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했다. 이 기사를 함께 읽으며 나는 아이들 각자의 생각을 물었다. 역시나 아이들은 학업의 중요성은 잘 알지만 때로는 힘들기도 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공부에 열의가 있든 없든 기사에 공감하는 아이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는 다른 학생들의 마음도 궁금해졌다. 세 아이의 엄마였기에 중학교 학생들의 하루 일정, 그리고 학업을 대하는 태도를 더 알고 싶어졌다. 그때부터 아이들에게 다가가 일상생활에 대해 종종 묻곤 했다.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공부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자요."

"늦게까지 공부해서 너무 억울한 마음에 새벽까지 게임을 하고 잤어요."


여학생, 남학생 가리지 않고 아이들은 비슷한 사정이었다. 공부를 해야 할 학생들이 이토록 피로를 느끼며 일상을 힘들게 보내는 게 맞는 걸까.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보여준 그 기사의 제목이 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선택이 결여된 일상에 대해 그리고 아이들이 느끼는 피로와 학업부담에 대해 부모님께 이야기해 본 적이 있는지 묻기도 했다.


"이야기해 봤자 안 통해요."

"그만 이야기하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나 하래요."


사실 아이들의 이야기만 들어본 것이라서 부모님 또한 나름의 입장과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이야기를 했을지 어린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지만 교사이기도 하기에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분명한 깨달음 한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의 의견이 수용된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엄마로서의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 부분을 유념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방과 후 일정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 아이도 있었지만 전혀 자신의 선택, 선호와 무관하게 부모님의 결정으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도 있었다. 한 날은 학생이 부모님께 피로를 호소하며 하루만 학원을 쉬고 싶다고 했더니 "그럴 거면 학원을 그만둬"라는 답변이 돌아왔단다. 그저 하루를 멈추고 싶었을 뿐인데 부모님의 답을 듣고는 눈물이 핑 돌았다는 경험담을 전해주었다.


이 모든 일들을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던 어느 날 나 또한 우리 첫째에게 이 말을 내뱉고 말았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이제 세 달이 다 되어가는 딸은 일상 흐름에 적응이 되었는데 그날따라 피곤하니 피아노 학원을 하루 쉬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기분에 따라 학원을 다닐 거면 그만둬도 괜찮겠다는 매몰찬 대답을 하고 말았다.


사실 첫째는 방과 후의 시간에 대해 변화를 바라는 말을 최근에 자주 했다.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 하나를 바꾸고 싶다고 했고 또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피아노를 치는 게 지루하고 재미가 없기도 할뿐더러 학교에서 내도록 앉아있는데 집에서도 조용히 걷기만 해야 해서 답답하다고 했다.


그래서 학원만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뛰어다니면서 놀 수 있는 태권도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또 친한 친구와 함께 다니고 싶다는 디테일한 요구사항까지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야 세 아이를 각각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키며 일주일의 복잡한 사이클에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내 의견을 관철시키며 초등 1학년 딸아이의 말은 아이의 작은 키만큼이나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했다.


아이가 방과 후 일정에 대한 변화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서 너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나도 아이의 생각을 한번 곱씹어 보게 되었다. 그 순간 작년에 가르친 아이들의 모습이 내 딸의 얼굴과 오버랩되었다. 내 입에서 바로 한숨이 나왔다. 탄식의 한숨이었다. 나 또한 어느새 내 아이의 고민과 이야기를 묵살하는 엄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돌아보니 1년 전 학교에 근무하며 했던 내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내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했다. 정작 피아노를 치는 게 즐거운 건 나 자신이고 그걸로 뿌듯한 것도 아이가 아니라 나일뿐인데 내 모습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그 생각을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날로 귀가한 아이와 함께 식탁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이가 그동안 했던 말에 대해 다시 묻고 변화를 바라는 이유를 집중해서 들어보았다. 꽤나 구체적인 근거를 대며 아이는 자신의 성격, 좋아하는 것,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등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왜 이런 아이의 소중한 이야기에 그동안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 미안한 마음이 파도처럼 세차게 일렁였다. 아이에게 네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말과 함께 방과 후학교 프로그램도, 피아노 학원도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일주일 정도만 시간을 두고 더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다만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도 알려주었다. 한 번 정한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끝날 때까지(학원은 두세 달 정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한 분기)만큼은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당부를 덧붙였다.


엄마로서 아이를 키우며 해야 할 일도 신경 써야 할 것도 그리고 알아볼 것도 버거울 정도로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내 아이의 소중한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말로는 그런데 여전히 실천하는 건 어렵기만 하다. 그래도 조금 더 노력해 보려고 한다. 아이보다 앞서 가지 않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너희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존중하는 엄마가 되길.


사진 © whitfieldjorda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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