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월요일에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의 돌봄 교실 공개수업이 있었다. 아이는 평소 월요일에 하는 미술 수업을 즐거워했다. 마침 이 수업을 공개하는 날이었기에 엄마인 내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업 당일, 시간에 맞춰 교실에 들어갔다. 수업은 고흐의 '해바라기'를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채색하는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외부 강사님이 점묘법을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 뒤 곧장 채색을 시작했다. 먼저 색연필과 사인펜을 활용해 화병과 줄기 부분을 색칠했다. 다른 아이들은 금방 색칠을 하고 나서 "다 했어요!!!"라고 말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첫째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사인펜으로 한 줄 한 줄 빈틈없이 색칠을 해나갔다. 좋게 말해 이런 것이지 사실 채색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엄마인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애가 탔다. '마무리하는 시간은 분위기를 봐가며 맞췄으면 좋겠는데 왜 저렇게 느긋한 걸까?' 세 번 정도 마음에 참을 인(仁) 자를 새기며 기다리다가 결국 한 마디를 나지막하게 내뱉고 말았다.
"OO아, 사인펜으로 색칠하는 것보다 색연필로 하면 좀 더 빠르지 않을까?"
그러자 아이는 답했다.
"엄마, 나는 색연필보다 사인펜으로 칠하는 게 더 좋아요. 이렇게 하니까 진짜 예쁘죠?"
그렇게 우리가 더디게 느껴지는 대화를 하는 사이 다른 친구들은 면봉과 물감을 받아 해바라기 꽃 부분에 물감을 콕콕 찍으며 점묘법을 익혀갔다. 다행히 아이는 사인펜으로 색칠을 다 하고 나서부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면봉으로 물감을 콕콕 찍어가며 해바라기를 다채롭게 꾸몄다.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 아이는 재빠르게 마무리를 했고 채색 도구들을 강사님께 돌려드렸다. 수업에 참여한 아이의 표정이 좋아 보여서 나는 강사님께 다가가 감사인사를 드렸다. 그랬더니 강사님은 갑자기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OO이는 진짜 꼼꼼해요.
색칠할 때도 빈틈 하나 없이
야무지게 해내거든요.
우리 OO이 진짜 잘하고 있어요.
어머니, 사실 작품을 완성하는 속도는
연습하다 보면 점점 빨라질 수 있거든요.
하지만 꼼꼼하게 색칠하는 능력은
기르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아까 제가 점묘법으로 질문하니까
OO이가 뜻을 정확하게 발표하더라고요.
제가 수업 시작하기 전에 살펴보면
OO이는 책을 정말 자주 읽고 있어요.
아이 모습을 네 달 가까이 지켜본 강사님으로부터 들은 피드백은 생각지도 못한 내용이었다. 강사님이 내 마음에 다녀가셨나 싶을 만큼 엄마인 내가 걱정하는 아이의 모습을 정반대로 해석해 주셨다. 꼼꼼하게 색칠하는 것이 아이의 장점이라고.
무엇보다 육아서에 그렇게 숱하게 나오던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세요. 장점을 바라보고 과정을 칭찬해 주세요"라는 진부한 내용의 가르침이 강사님의 입을 통해 들려오자 다르게 느껴졌고 마음에 쏙 와닿았다. 그리고 일상 관찰을 토대로 전문성을 곁들인 피드백은 내가 강사님을 더욱 신뢰하는 계기가 되었다.
중학생을 가르친 교사로서 그동안 학생들에게 그리고 상담을 했던 학부모님들께 어떤 피드백을 주었는지 되돌아보았다. 단순히 활동의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아이의 학습 과정에 대한 피드백을 구체적으로 해주었는지 말이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를 그들에게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었는지도 떠올려보았다. 사실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지난겨울 나는 교사를 대상으로 한 경제 관련 직무연수에 참석했었다. 연수 과정 중 인상 깊었던 강의는 바로 <트렌트 코리아 2023>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수진 교수님의 설명이었다. 강의 내용 중의 일부가 책에도 잘 설명되어 있어서 인용하자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신세대 학생들은 점수 자체만큼이나 내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 점수를 받게 됐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가히 '피드백 세대'라 부를 만하다.
* 피드백 세대
자신의 수행 능력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로,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 새롭게 제안하는 용어다.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가 나오게 된 과정에 명확하고 객관적인 평가 기준이 있어야 결과를 납득한다.
요즘의 아이들은 꽤 구체적이고 근거 있는 피드백을 원한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 그리고 세대의 특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교사인 나 또한 아이들의 특성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좋은 피드백의 실전 편을 아이의 미술 강사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그저 내 아이를 보기 위해 참관한 것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능력에 대한 배움도 얻을 수 있었다.
복직을 반년 앞두고 있는 나는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면 학생과 학부모님들께 어떤 피드백을 주는 교사가 되어야 할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또한 상담 중에 내 이야기를 통해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계기를 마련해 드리면 나와 학생, 부모님 모두에게 얼마나 좋을지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과정들이 쌓이면 학부모는 아이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교사인 나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깨달음을 복직 때까지 잊지 않아야겠다. 현장으로 복귀한 뒤에는 지속적으로 실천해서 나와 상담한 분들 또한 좋은 피드백을 들었노라고 회상하게 만드는 그런 교사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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