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키타카존 May 17. 2023

내가 없는 세상과 없어진 세상 속의 나

몸 값(웹드라마)과 마지막 눈사람 (최승호)

몸 값 (웹드라마)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던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후,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할 거래를 시작하며 광기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 (진선규, 전종서, 장률 등 출연)


 장기매매하는 장소가 지진으로 무너지면서 장기가 팔릴 뻔한 가짜 경찰, 장기 매매를 하는 여직원, 아버지의 장기 이식을 위해 경매로 장기를 낙찰받았으나 지진으로 장기 낙찰받은 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보증금으로 맡긴 돈마저 날린 청년.


 여러 죽을 고비를 넘기고 또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면서 숨겨진 돈을 갈취(?)하여 구사일생으로 지진으로 무너져 가는 건물을 탈출한 세 사람. 그러나, 산 위에서 그들이 바라본 건 이미 지진으로 폐허로 변하고 있는 도시. 그들은 살아났지만 세상은 없어졌다.



마지막 눈사람 (최승호 작)


G1 나는 말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


G2 어느 날 나는 지상에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G3 빙하기가 지상의 피를 다 얼려버린 것이다.


G5 옥상 위 뚱보의 고독, 그렇다. 소름 끼치는 무서운 고독이 빙하기에 있다.


G10 흘러가는 것도 없고 흘러오는 것도 없이 모든 사물들이 굳어 머무는 세상이 한 꼭대기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G16 왜 나만 죽지도 못하고 빙하기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일까. 이건 끔찍한 형벌이다. 옥상은 나의 감옥이고. 그렇지 않은가.

ㅆ다

G25 구원이 끝난 밤, 지상에는 구원받을 사람이 없다. 옥상 위에 구원받지 못한 내가 하나 남아 있지만 바라는 것이 오직 죽음이기 때문에 이 빙하기에 구원의 문제는 끝장이 아니다


  ‘몸 값’ 드라마를 보았다. 다소 과격하고 거친 장면들이 있었지만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엄숙한 의지를 다소 희극적으로 과장되게 보여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는 다 다르다. 그러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기보다는 그냥 삶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이유가 있어 사는 건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 듯 그렇게 그렇게 살기 위하여 발버둥 친다.


 어쩌면 지금까지 힘들게 살아온 세월이 지진이라는 세상의 천지개벽 속에서 본인들의 위치를 뒤바꿀 수 있는 순간으로 인식하게 그렇게 절박하게 살아남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세상에 나는 남았지만 세상은 없어져 버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냥 내가 숨을 쉬고, 내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일까?


우연한 기회에 접한 최승호 시인의 ‘마지막 눈사람’ 책을 읽었다. 빙하기에 홀로 남은 눈사람이 세상에 존재는 하지만 온통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죽음으로 자기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사람은 죽어서 사후세계를 꿈꾼다. 천국과 지옥, 그 중간의 연옥도 말한다. 아님 윤회를 통해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떠나는 관문이라 믿는다. 죽음이 끝이 있는 건지 관문인 건지는 모른다. 사후 세계가 믿음의 문제라고 해야 하는 건지? 아님 사실인 건지 그건 각자의 몫이고 종교적인 영역이다.


세상과의 단절을 두려워 했던 시간이 있었다. 젊은 시절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낯선 곳에서 청춘의 한 페이지를 보냈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건 육체적인 어려움이 아니었다. ‘난 세상과 떨어져 있는데 세상은 변하고 난 그대로 인 것 같아’라는 단절의 고통이었다. 홀로 떨어져 내가 속해 있던 곳이 나를 잊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더 힘들었다.


죽음이란? ‘내가 없는 세상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리가 더 두려워하는 건

‘없어진 세상 속에 나‘이다. 세상이 없어진다면 내가 살아 있더라도 그건 이미 내가 죽은 것이다.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있는 자리를 지켜본다.

나를 나로 만드는 건 어쩌면 내가 아닌 그 사람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여기서 나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때론 그 자리에 있는 모습으로서의 나가 아닌 내 본래의 모습, 내면의 나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 그 자리의 나로 잘 돌아가기 위한 절차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난 출근한다. 회사 속에 나를 만나러.

오늘도 난 일을 한다. 일속에서 나를 알리기 위해서

오늘도 난 저녁을 사람들과 먹는다. 친구들 동료들 속에 웃고 있는 나를 보기 위해서

오늘도 난 퇴근한다. 가장으로서 나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이런 내가 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것이 삶이라 느낀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과 후 전쟁활동' -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