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티키타카존 Jun 01. 2022

전공이 뭐니?

변화를 따라가는 삶

 어느 화창한 봄날 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업을 듣고 학교 교정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취업게시판에 "OO은행, 전공 불문"의 공고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이 내가 직장을 은행으로 고민한 첫 순간이다.


 난 서울의 한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였다. 졸업 후 바로 은행으로 입행(입사)해서 20여 년을 한 직장에서 근무 중이다. "은행에서 일해요. 그런데, 학부는 화학공학을 전공했어요." 내가 찾은 '특별한 나 찾기'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은행 최종면접때 질문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때 공대를 선택했을 때와 지금 직장으로 은행을 선택했을 때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되느냐?'였다.  

 사실 어떻게 대답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공대생이 은행에서 업무를 잘할 수 있겠느냐에 대한 대답 정도는 했을 것 같다.

 "기업을 바라볼 때 상경계 졸업자는 알고 있는 재무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재무를 본 후 학습을 통해 그 회사의 기술력을 보지만, 전 알고 있는 기술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회사의 기술력을 보고 재무 관련 지식을 더 공부해서 그 회사의 재무를 검토하려고 합니다. 방법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궁색한 답변이다.

 어쨌든 그 연결고리는  잘 이야기했으니 합격은 했을 텐데 도무지 생각도 나지 않고 정답(?)이 될 만한 것도 못 찾겠다. 다만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잘할 것 같은 일'을 선택했던 것 같다. 최인철 교수의 '굿 라이프'에서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 첫 번째는 '잘하는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라고 하는데, 난 내가 항상 잘할 것 같은 일을 선택하며 살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수학은 조금 하고, 과학도 나쁘지는 않고 그래서 공대 가면 잘할 것 같아서 선택했고, 공대 공부를 하다 보니 전공을 살려 계속 공부를 하면 할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잘할 자신은 없어서 대학원 가는 걸 포기하고 취업을 하려고 했다. 만약,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사실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도 나를 잘 모른다.


 당시 나의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 중 우선순위는 근무지였다. 얼마나 서울과 가까우냐? 내가 나름 허락할 수 있는 근무지는 경기도 정도였다. 은행이면 서울에 근무할 것 같았다. 은행에는 지방 지점도 많다는 걸, 또 먼 지방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입행하고 알았다. 내 친한 입행 동기는 연고가 없는 전라도 광주로 발령받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난다.


 사실 요즘 취업 시업 시장에도 소위 명문 공대를 졸업했거나 우수한 스펙을 갖춘 취업준비생들이 비수도권 근무를 기피한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   '남방한계선' 이 있다고 한다. 삼성전자 기흥캠퍼스가 있는 기흥의 '기흥라인', 네이버, 카카오 같은 테크 기업이 대거 입주한 판교밸리가 있는 '판교라인'이다. SK하이닉스는 본사와 공장이 이천에 있어 '이천쌀집' 으로 불린다. 남방한계선 아래여서 이천쌀집은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 단지를 세울 계획이다. '수원갈빗집'으로 불리는 삼성전자로의 사원 유출을 막고, 또 우수 신입직원 영입을 염두한 이천쌀집이 새 공장의 위치를 용인으로 정한 이유일 것이다.


 전공도  고려 대상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전공과 다른 직업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내가 입사지원서를 넣었던 곳이 대부분 화학 관련 회사였다. 학부 때는 한눈팔지 않고 전공 공부만 열심히 했다. 전공을 살려서 취업하려면 부전공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전공학점을 많이 들어야 한다는 지금은 어디에서 들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말로 전공수업을 정말 열심히 수강했다. 다른 길을 선택할  알았다면, 부전공을 하거나 다른 다양한 공부를  하는  도움이  되었을  같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큰 어려움은 코스모스 졸업으로 인해 더 좁아진 취업문이었다. 군대 기간 동안 휴학을 2년 반 동안 해서 어긋난 학기 수업을 핑계로 부모님을 설득하여 6개월 계획으로 갔던 '캐나다 어학연수'를 6개월 연장해서 총 1년을 다녀왔다. 어쩔 수 없이 코스모스 졸업을 해야 했다. 4학년 두 학기를 남겨두고 어학연수 후 가을에 다시 복학을 했다. 그런데, 내가 가고 싶었던 '수원갈빗집' 이 이미 그해 졸업대상자와 그다음 해 여름 졸업대상자까지 채용을 마친 상태였다. 물론 그 갈빗집 취업에 성공 못했을 수도 있지만, 상황이 날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은행에서의 직장생활은 시작되었다. 대부분이 상경계 출신인 직장생활은 쉽지만은 않았다. 기업부문 영업점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배워야 할 건 너무 많았다. 대학 4학년 때 회계원론을 상경계 1학년들과 같이 들은 것이 금융 관련 수업의 다 였다. 생소한 용어들과 씨름하고 영업점 창구에선 내 앞에 앉은 고객이 무서웠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처음의 업무는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엔 첫 사회생활의 어려움이 더 해져 힘들었다. 계속되는 야근에 한 번 자리잡혀 뻐끔해진 쌍꺼풀은 풀린 틈이 없어 짙은 쌍꺼풀을 가지게 되었다. 100여 명의 입사 동기 중 전산 전공을 빼고 공학 전공은 손꼽히는 정도였다. 그런데, 만약 내가 상경계를 졸업했다면 은행에 입행은 못 했을 것이다. 전공이 특이해서 뽑히게 되었다고 지금은 이야기한다. 장점은 있었다. 산업 관련에 대한 이해도는 좀 빨랐다. 그리고, 열심히 관련 업무를 알아야 했기에 관련 연수를 열심히 신청하고 수강하고 별도로 관련 분야를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은행 직원들의 전공은 상경계가 많기는 하지만 다양하다. 많은 분야에 업무를 하다 보니 다양한 전공자들의 쓰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부동산학과를 나온  입행 동기는 부동산 신탁업무 부서에서 오래 근무하였다. 인도네시아를 전공한 후배는 인도네시아 주재원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였다. 조선 관련 전공을 한 선배는 투자부서에서 선박금융을 하였다. 그 외에 아동학과, 영문과, 독문과 등 어문계열 학과를 나온 친구도 있다. 내 옆에서 근무하는 후배는 이탈리어학과를 나왔다. 여러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직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업무를 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도 긍정적이라고 본다.


 지금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전공이 뭐니? 화학공학입니다.” 공단에 근무할 때는 업체 방문할 때 잘 활용했다. “대표님 저도 공대 졸업했습니다” 같은 과 선배님이 대표로 계신 코스닥 상장 업체들도 있었다.

세상은 빨리 변한다. 요즘 입행하는 직원 상당수는 IT 관련 전공자가 많다. 은행도 그 변화에 발맞춰 나가고 있다. 직원들도 IT 관련 연수를 받고, 임원들도 코딩 교육을 받는다. 배우는 것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려고 하면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공대를 졸업해서 은행원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처럼, 지금 또 다른 변화에 맞추어 노력하는 삶을 살려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