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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Jun 28. 2022

승진할 때 난 5년 뒤 퇴사할 거라 이야기했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서

직장인으로서 회사 내에서 가장 큰 임팩트의 순간은 승진과 관련된 때이다. 인사철이 되면 회사 내에서 모든 촉수가 인사와 관련된 이야기에 쏠리게 된다. 특히, 승진대상자들에게는 다가오는 인사이동 발표날은 마치 대학 입학결과 발표나 회사 입사결과 발표와도 비교될 정도의 긴장감이 드는 날이다. 

첫 번째 승진대상 연한이 되었을 때는 설렘으로 시작하고, 두 번째 대상이 되었을 때는 기대감으로, 세 번째 대상이 되었을 때는 이제는 정말 되어야 할 텐데라는 간절함으로, 네 번째 대상이 되었을 때는 승진이 안되었을 때 돌아오는 파장을 걱정한다. 은행은 인사 발표가 1월과 7월 두 번씩 있어서 1년에 2번은 이런 즐거운 기다림 또는 피 말리는 긴장감을 맛보아야 하는 순간이다.


 나의 직장 내 첫 승진의 기다림은 입행[은행은 입사라는 말을 입행으로 표현한다] 후 5년 차였다. 설렘의 기다림 시기다. 같이 입행한 동기 중 빨리 승진한 직원이 나오는 시기였다. 은행 내에서는 '동기중 스타트'로 그 친구는 계속 평가가 된다. 5년차 6개월 기대감이 나오는 시기다. 내가 잘 난 건 없지만 열심히 했기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다. 결과는 역시나 아니다. 6년 차는 소위 인싸인 동기는 이미 승진을 했고 이젠 조금 잘 나간다고 보이는 동기들이 승진할 것 같은 시기이다. 그러나, 우리의 평가와 회사의 평가는 다를 때가 있다. 내가 모르는 그 동기들만의 내공이 있었나 보다. 예상했던 동기와 예상 밖의 동기들이 승진을 했다. 6년 차 6개월 때는 승진이 안되었을 때의 느끼는 파장이 걱정된다. 또 아니다. 나의 회사 내에서의 평가가 걱정이 되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고 돌아보는 때였다. 그러나, 마음을 잡고 일한다. 기운이 없어지는 시기이다.


이렇게 나도 매년 기대를 했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인지 계속 승진이 안되었다. 그러다가, 정말 힘들게 승진을 했다. 내 실력으로 온전히 된 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늦게나마 내가 인정받았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그날은 기분 좋게 축하주를 많이 마셨지만 기분은 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승진 후 각 지점과 본점 부서에서 승진자들이 모여서 집합연수[연수원에 모여서 2박 3일 정도 합숙하면서 받는 연수]를 받았다. 프로그램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승진이 되었음을 축하해주는 자리도 있었고, 외부강사를 초청하여 강의를 듣는 시간, 비슷한 연령의 승진자들이 모여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 등 이었다. 어떤 프로그램 중  미래에 어떤 모습의 책임자가 되겠느냐, 어떤 방향으로 은행생활을 하겠느냐 등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도 가졌다.


"5년 뒤에 퇴사하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승진이 안되어서 맘 조리고, 또 승진을 하겠다고 알게 모르게 노력해 놓게 퇴사하겠다고 하니 좀 앞뒤가 안 맞는 이야기였다. 연수에 참가한 다른 직원들도 의아해했다. 눈이 동그랗게 되어 쳐다보는 직원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승진자 연수에 와서 퇴사하겠다고 하다니 아마 은행 내에서 이상한 직원으로 찍힐 노릇이다.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지금 은행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내는 겁니다.퇴사라는 것도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 입니다. 퇴사를 하려면 은행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서 경쟁의 시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앞으로 5년 동안 은행을 벗어나서도 살아갈 수 있는 실력을 키우겠습니다. 경쟁력을 키워서 은행 밖에서도 인정받는 직원이 되겠습니다.”

정말 퇴사를 염두에 두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약간의 호기와 열심히 금융인으로 공부하면서 직장생활을 하겠다는 당찬 포부였다.


그 뒤로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난 승진을 한번 또 했다. 이번에는 첫 번째 승진과는 다르게 기대감의 시기에 했다. 또 그 뒤로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그 젊은 날에 첫 번째 승진 때 퇴사하겠다는 용기는 점점 없어져 간다. 업무적으로 개인적으로 실력을 키우려는 노력은 했다. 운이 좋게 회사에서 하는 연수 프로그램으로 석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회사를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느덧 직장과 나를 점점 동일시하고 있었다. 이젠 실력이 있더라도 회사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그 실력이라는 것도 회사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이는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회사라는 울타리를 치웠을 때도 나를 회사 안에서의 나 만큼 인정해 줄까?  회사에서의 연차는 늘어가고 직책도 올라가는데 왜 내 모습은 계속 작아지는 건지 모르겠다.


사실 주어진 업무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꼼꼼히 하나하나 체크해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영업조직에 있을 때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분량 이상의 일을 해내려고도 애쓴다. 조직 내에서 내 영역 안의 업무를 최대한 하면서 업무를 통하여 경험을 축적한다. 문득 이런 내 모습이 잘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스스로 나를 너무 관대하게 평가하는지는 모르지만 일을 하는 관점에서는 잘하고 있는 것 같다고 격려해준다. 그러면 일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걸까?


어느 대학의 슬로건이 생각난다.

“그대 OO의 자랑이듯, OO 그대의 자랑이어라”

난 이 문구를 좋아한다. OO의 자리에 지금 다니는 직장을 넣어본다.

일방적이지 않는 서로를 자랑하고, 서로서로 성장하자. 서로를 인정하고 커가자. 이런 의미로 다가온다.


앗차 하고 머리를 스치는 게 있다.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 부분이 부족했던 것 같다. 오래전 승진할 때 난 회사 안에서 내가 성장하기를 꿈꾸었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회사가 나아가는 길을 만들며 나도 나아가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생각이 점점 옅어지고 급기야는 보이지 않는다. 회사는 큰 바다에서 항해해서 나아가는데 나는 그 큰 배에 그냥 타서 배가 움직이도록 일만 하는 것 같다. 나도 배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꿈을 잃어버렸을 수도 있고 꿈꾸기를 힘들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잃어버린 꿈인 것 같다. 회사 내에서 꿈을 꾼다. 승진하겠다는 꿈이 아니다.

내가 커가는 꿈을 꾼다. 내가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더라도 스스로 뭔가를 멋지게 해 내리라는 꿈을 꾼다. 울타리를 넓히는 일에 나도 힘을 쓴다. 그 울타리가 넓어지면서 나도 그 안에서 커가는 꿈을 꾼다.


앞으로는 내가 울타리 안에 있을지 울타리 밖으로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또 그 결정이 내가 스스로가 내리는 것인지 또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일지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꿈을 꾸고 꿈을 키우려 노력한다는 게 중요하다.


오늘 그 옛날 잃어버린 꿈을 찾아본다. 그리고, 그 꿈을 다시 키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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