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열차안에서

경험의 축적이 만들어 가는 나

by 티키타카존

20대 한창 혈기 왕성한 시절의 군대의 추억은 평생을 이야기해도 모자란 이야기이다. 남자들끼리 모여 누구 하나 군대 갔다 온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날 술안주는 그 이야기로 끝이 난다. 군대 제대하고 나면 복무했던 군부대 방향으로는 OO도 안 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싫어하는데 왜 그 군대 이야기는 평생 끝이 나지 않는 걸까?

나도 기억 저편에 잠자고 있던 군대의 추억이 최근 OTT로 '신병'을 보면서 슬그머니 되살아 났다. 힘들었던 일, 무서웠던 일, 재미있었던 일 등 다양한 기억들이 형형색색으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그만큼 그 군대생활이 강렬했음이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군대 가기 전 사회(왜 모든 건 군대와 사회로 구분을 지었을까? 군대 신병에게는 너 사회에서 뭐 하다 왔느냐? 고 묻는다. 군대 밖은 사회이다.)에서 입대하기 두려움에 몸부림치던 기억이다. 당시 난 1년여를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 미팅으로 만난 어떻게 보면 처음 사귄 여자 친구인 셈이다. 당시 젊은 청춘에게 군대라는 곳이 가장 두려웠던 이유는 사회와의 격리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우선이어야 하긴 하지만 죄송하게도 그때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는 게 군대 가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였다. 어느 날은 한참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김민우의 '입영열차안에서' :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 /삼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 /기다리지 말라고 한건 미안했기 때문이야 ~

-이장우의 '훈련소로 가는 길' : 넌 내가 힘들어할까 걱정스러운 눈빛이지만 / 아냐 나도 남자쟎아 남들처럼 견딜 수 있을 거야 / 너무 슬프게 울지는 마 내가 괜히 미안하잖아 /이제 한동안 못 보겠지만 내 생각이 날 땐 가끔 면회나 와줘 ~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 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뭐가 그리 슬프고 서러웠는지 나도 모르게 눈물 펑펑 흘리며 노래를 이어갔던 기억이 난다. 느낌은 달랐지만 군입대를 앞둔 친구들끼리 모여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부르기도 했던 곡들이다. 뭔가 이젠 인생이 끝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아님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두려움 때문이랄까? 이미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에도 그때 그 감정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논산훈련소 입소가 9월 말경이었으니 한달간은 친구들 만나고 술 마시고 나름 정리 아닌 정리를 하고 다녔다. 술 잘 못 먹는 애가 매일 술을 먹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름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입소 전날 머리를 짧게 깎았다. 노래 가사처럼 어색해진 짧은 머리로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군대 가면 먹고 싶어 진다는 음식이어서 나름 유명하다는 종로에 화교가 한다는 곳으로 찾아서 가서 먹었다.


논산은 열차를 타고 가야 했으나 부모님이 데려다주셨다. 큰 표정 변화 없으셨던 아버지는 연병장으로 나가는 내 뒷모습을 보시고 ‘파이팅’을 외치셨다. 그 파이팅에 나에 대한 격려를 나타내시면서 장남을 군대에 보내는 걱정을 숨기신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군대 생활은 시작되었다.


사실 국방의 의무는 모든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해야만 하는 말 그대로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2년여의 짧은 기간은 전체 인생에서 너무나 다른 경험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과는 결이 다른 시간이며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적은 시간이다. 그렇기에 그 환경이 두렵고 어렵지만 또한 어떻게든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힘들게 혹은 즐겁게 보내느냐는 오롯이 나의 몫이 되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여린 스무 살의 대학생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시간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난 사회로부터 친구들과 가족들과, 아니 내가 속해 있었던 그곳 자체와 멀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제일 힘들었었다. 몸은 군대에 있는데 마음은 항상 밖에 있었다. 그래서 더욱 힘든 군대 생활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로 남는 건 그곳에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면 몸도 마음도 그냥 그곳에 온전히 담아내는 게 나를 위한 최선’이라는 사실을 그땐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야 했었다. 사실 내가 없는 사회를 아무리 바라보아도 그 바깥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물론 군대는 내가 잠시 머무르는 곳이라고 간주해 버릴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 2년 이상의 시간은 잠시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가 원하지 않거나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대 때와는 달라야 했고 다르려고 노력했다. 내가 원하는 아니 어쩌면 좋아 보이는 다른 곳을 바라보며 마음에 두기보다는 현재의 나의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힘든 일들이 닥쳐오는 건 어디에 있든 같지만 나의 마음먹기에 따라 체감하는 그 강도는 다를 수 있다. 내가 있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지금은 그 혈기왕성한 20대는 아니지만 그 시절의 경험은 내 몸 어딘가에 기억되어 있다. 그러기에 어느 한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건 없는 것 같다. 설사 그 순간이 좀 힘들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쌓여있는 경험들의 집합체가 나이가 들어가는 나의 하나의 모습일 것이다. 오늘도 난 하나의 경험을 몸에 익히며 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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