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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Oct 18. 2022

반대쪽 플랫폼에도 출구는 있었다

내가 하차한 곳에서 난 인생의 정답을 잘 찾을 것이다.

매일 출근하는 것도 나름 정해진 루트가 있다. 버스를 타는 일정한 시각과 지하철의 일정한 출입구와 일정한 플랫폼까지 나만의 루트가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 시각 그 자리가 마음이 편하다. 특히 지하철 일정 칸에서 타야 나중에 내려서 나가는 출구 앞에 가까이 내릴 수 있어서 항상 그 자리를 고수하는 편이다. 설사 다른 곳으로 탄다면 나중에 하차해서 항상 그 출구까지 걸어가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막 도착한 지하철을 허겁지겁 뛰어서 타느라 매번 타는 곳과 정 반대의 플랫폼에서 지하철을 탔다. 매번 타는 곳이 지하철의 처음 칸이라면 마지막 칸에 탄 셈이다. 그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내려 평소 같으면 다시 처음 플랫폼까지 걸어가서 그곳 출구 계단을 이용해서 밖으로 나오는 고지식함을 발휘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나의 고지식함을 잊어버린 건지 아무 생각 없이 반대편 출구로 나와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그 반대쪽 플랫폼에도 출구는 있었다.


사실 그 당시에는 조금 놀란 일인데 이렇게 글로 쓰고 보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돼버렸다. 지하철 맨 앞쪽 이든 맨 뒤쪽 이든 결국엔 출구는 있는 법이다. 뒤쪽으로 나간다고 해서 지하철에 갇히게 되는 건 아니거늘 난 왜 그렇게 앞쪽 출구만을 고집했을까? 심지어 지하철 뒤쪽 플랫폼을 타고 내려서는 맨 앞쪽으로 걸어가서 그쪽 출구로 나가야 하는 고지식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초등학교 때 장래희망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의사가 전문직으로 미래에 경제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것 같은 직업이기 때문이거나 타인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런 꿈을 꾼 건 아니었다. '슈바이처'의 전기를 읽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었다. 사실 그 꿈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쯤 아프리카 어느 오지에서 원주민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 있어야 되니 현실적으로 보면 의사가 안 된 것이 아니 못된 것이 오히려 조금 더 몸은 편한 삶을 살게 하지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본다. 6학년 때 장래희망을 주제로 쓴 글짓기 제목은 '송사리가 잉어로' 였었다. 현재의 내가 ‘송사리’라면 열심히 노력해서 잉어가 되겠다는 글이었다. 그런데 송사리는 결코 잉어가 될 수 없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제목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이 묻어 있던 제목이었다. 당시 그 글로 구청이었는지 시청이었는지에서 아이들의 글을 묶어 책도 만들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그때 기억이 왜 떠오른 걸까?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 고등학교 때의 지하철 플랫폼의 출구는 그 장래희망으로 이어져 갔다. 그러나, 그 장래희망에도 불구하고 대학과 전공을 결정해야 되는 시기에는 다른 곳의 플랫폼으로 가게 되었다. 공대의 입학은 어찌 보면 이과계열이기는 하니 앞 쪽 어느 언저리 플랫폼에 탑승은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난 졸업하면서 은행에 취직을 했다. 금융회사는 또 어느 플랫폼인가? 중간쯤 어디인가?

그리고 또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사실은 맨 뒤쪽 지하철 어느 플랫폼을 탔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내 인생의 지하철은 다행히 일정한 방향으로 가기는 했나 보다. 그리고, 이젠 맨 앞 플랫폼이 좋기는 하지만 때론 맨 뒤 플랫폼도 기꺼이 탈 것이다. 잘못 탄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맞게 알맞은 또 어쩌면 나에게 어울리는 플랫폼이다. 어느 곳 자리에서 그 지하철을 타듯 난 나의 정거장에 잘 하차할 것이다. 내가 하차 한 곳에서 나의 인생의 정답을 잘 찾을 것이다. 나는 이젠 알았다. '반대쪽 플랫폼에도 출구는 있었다.'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어느 출구도 오늘날 나의 길로 바르게 안내해 줄 것을 믿는다.


이 아침 출근길에서 반대쪽 플랫폼의 지하철을 타며 스스로를 칭찬한다.‘ 그래 지금 넌 잘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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