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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Nov 03. 2022

은행원의 출근룩 변천사

양복에서 청바지, 반바지로 변화는 가능할까요?

 대학 입학하면서 부모님이 사주신 양복이 떠오른다. 쓰리 버튼에 체크무늬 재킷이었다. 바지는 검은색이었던 것 같다. 완전한 정장은 아니지만 대학생이 되었으니 격식 있는 자리에 입고 나가라고 마련해 주신 선물이었다. 격식 있는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기에 입을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성당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첫인사를 해야 하는 자리 나 어떤 행사 등에 입고 나갔던 것 같다. 설마 미팅이나 소개팅 자리에 입고 나가진 않았었나 하고 부끄러운 기억을 끄집어 내보려고 했으나 다행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학 졸업 무렵에 정장 한 벌을 다시 샀다. 그 정장으로 졸업사진도 찍었고 면접서류에 붙일 증명사진도 찍었다. 입사를 위한 면접도 그 옷을 입고 다녔으니 나름 학생의 마지막과 사회생활의 첫 발을 같이 했던 추억이 깃든 정장이었다.


은행원으로 시작한 사회생활의 복장은 항상 양복이었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에 어머니는 와이셔츠를 주름이 가지 않도록 정성껏 다리미로 다려 주셨다. 그러나, 사실 은행에서의 양복은 일종의 교복이나 작업복 같은 느낌으로 입었기에 정작 난 그 사소한 주름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주름 가는 것에 신경 쓰다 보면 때론 무거운 박스를 나르거나 이것저것 몸 쓰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영업점 객장에 앉아 고객님들을 상대할 때 단정하고 깨끗한 모습을 위하여 입는 정장이지만 그 옷을 입고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내가 입사할 무렵에는 넥타이 색깔이나 와이셔츠 색깔에 제한을 두지는 않았다. 나름 색깔 있는 와이셔츠에 세련되어 보이는 넥타이로 사소한 차이를 만들었다. 그래도, 은행원들의 양복 색깔은 거의 비슷했다. 사실 나도 약간 청색이나 감색 등 어두운 색의 정장을 주로 입었던 것 같다. 은행 입사 때 신입직원 연수를 마치고 은행장님으로부터 사령장을 받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한 입사동기가 밝은 계통의 정장을 입고 나타났다. 모두들 놀랐었고 연수 담임으로부터 핀잔을 들었었다. 나도 가끔 그 동기를 대할 때면 그 밝은 색 정자부터 떠오른다. 은행은 유난히 복장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편이었다.


 보수적인 복장이지만 편리성을 추구하기도 했다. 여름에는 반팔 와이셔츠에 노타이를 하고 근무를 했었다. 사실 반팔 와이셔츠는 격식을 차려야 하는 양복에는 어울리지는 않는 복장이기는 하다. 여름에 싱가포르로 해외 출장 갈 일이 있어 복장을 고민하다 반팔 와이셔츠에 여름 양복을 입고 갔다. 그때 만났던 해외 은행의 직원은 복장만 봐도 이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 줄 안다고 하며, 한국 직원은 대부분 반팔에 재킷을 입는다고 하였다. 긴 와이셔츠에 재킷을 입지 않는 것이 싱가포르에서는 일반적이라고 했다. 주관적인 그분의 이야기이기는 하나 편리성과 보수적인 복장을 고민하다 보니 생긴 반팔 와이셔츠 인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당시 여름이 좋았던 이유는 반팔 와이셔츠 때문이었다.


 한때는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티셔츠를 나눠줘서 모든 직원들이 같은 색의 티를 입고 다니기도 했었다. 사실 이 티셔츠의 단점은 외부에 나의 직장을 너무 잘 알린다는 것이었다. 저녁 회식을 하면서 같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있으니 마음껏 술 먹는 데는 제약이 있었다. 그 티셔츠를 입고 주사라도 부리는 날에는 회사 망신을 시키는 직원이 돼버리는 셈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는 긴 와이셔츠에도 넥타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노타이는 큰 변화였다. 넥타이를 오래 하다 보면 사실 목이 좀 거북스럽기는 했다. 그래서, 객장 문을 닫고는 항상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마감 업무와 나머지 추가 잔업을 했었다. 

집에 아이가 생일선물로 사다준 넥타이부터 해외여행 다녀오면서 장만한 나름 명품 넥타이, 승진 선물로 직원들에게 받은 넥타이 등 수많은 넥타이는 장롱 속 어디에 깊숙이 박혀있는 신세가 돼버렸지만, 내 목의 자유로움이 있기에 그런 넥타이의 아까움은 깨끗이 잊어버렸다. 밥 먹을 때 넥타이를 와이셔츠 안에 넣고 먹는 귀챦음도 아련한 기억 속에 떠오른다. 노래방에서 취해서 넥타이를 머리에 두르고 노래 부르는 부끄러운 기억은 확 접어서 기억 저편에 놓아두었다.


급기야 올해부터 모든 은행 내에서 품위에 맞는 옷을 입는 것으로 자율화가 되었다. 처음에는 양복을 버리지 못하고 정장에 가까운 옷을 입고 다녔으나 점점 복장이 자유로워지고 있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입을 수 있어서 점점 편하게 입고 다닌다. 새로 산 옷장 안의 양복은 가끔 입고 싶을 때 입는 옷이 되었다. 양복을 입는다는 건 중요한 미팅이 있거나 어떤 격식 있는 자리에 간다는 시그널이 되어 버렸다.


양복을 입는다는 게 화이트칼러의 회사원이 된다는 의미가 있던 그 시절은 지나가고 있다. 아직 청바지를 입거나 하는 건 부담스럽지만 은행원이 단정한 자율복을 입는다는 사실만으로 직업과 복장에 대한 사회적인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자율복에서 창의성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은행원도 경직된 사고보다는 창의성이 어느 정도 강조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은행원도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고 여름에는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일하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외형보다는 내실이 중요한 학벌보다 실력이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아니 지금 상당히 많은 부분이 바뀌고 있다. 은행원도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코딩 실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 


출근룩으로 시대의 변화를 논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는 있지만 조금 더 자유로운 사고로 일하는 변화는 좋은 모습이다.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창의적인 모습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잘 살아남아야겠다. 

처절한 몸부림인지 즐거운 변화인지는 어쨌든 나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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