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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키타카존 Feb 07. 2023

은행에는 여러 가족이 함께합니다.

은행 첫 출근  '저분은 누구신지?' 고민했던 분들

 공대를 졸업하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은행원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게 되었다. 두 달여를 힘든 신입직원 연수 후 첫 영업점 배치를 받고 출근한 첫날은 마치 군대 신병 때 자대배치를 처음 받고 어리둥절할 때 이상으로 긴장된 순간이었다. 20여 년도 더 된 기억 속의 그날이지만 그 긴장됨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느껴진다.

 처음 출근하고 낯설기만 한 직원분들과 인사를 했다. 지점장님, 부지점장님, 차장님 등등. 하루 이틀 지나다 보니 영업점을 왔다 갔다 하시는데 '이분은 누구시지?' 하는 분들이 계셨다. 한참 선임에게 물어보기도 뭐쓱해서 혼자 알아내려고 했지만 그 답은 쉬이 나지는 않았다.


 궁금 은행 가족 1 : 아침 일찍 왔다 갔다 하신다. 나이는 부지점장 급이신 것 같은데 일은 하지 않으신다. 목소리는 또 너무 크셔서 영업점에 나오시기만 하시면 그 존재감이 크게 드러난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어디 계셨는지 모르겠다. 퇴근 무렵에는 또 나타나신다.


 지금은 은행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지만 내가 처음 근무한 지점은 은행이 직접 소유한 '자가건물'이었다. 5층건물에 1층은 리테일 영업점, 2층은 기업담당 영업점, 3~5 층은 계열사가 쓰고 있었다. 그분은 그 건물 관리를 담당하시는 분이셨다. 지금은 건물 관리등은 외주를 주거나 하지만 당시에는 그분도 은행의 별정직 직원 이셨다. 차후에 그분이 근무하시는 곳을 갈 기회가 있었다. 그분의 사무실(?)은 지하의 공조실 같은 곳이었다. 조금 소음이 있지만 나름 갖출 것은 다 갖춘 곳이었다. 전날 과음한 남직원들이 잠시 쉬기 위하여 가끔 들린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궁금 은행 가족 2 : 영업점에서 가끔 뵙니다. 조용하신 성격이셔서 말씀은 많지 않으시만 그래도 왔다 갔다 하신다. 점심때 이후에 어느 조용한 곳에서 잠깐 쉬시는 모습도 목격이 된다.


입행 1년 이후 부모님을 졸라 소형차 한 대를 마련했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지만 출퇴근하기에는 교통이 애매해서 마련한 것이다. 사실 신입직원에게 주차장 자리가 주어지기는 어려웠지만 자가건물이어서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혜택이었다. 기계식 주차였지만 그래도 익숙해지니 세콤등을 위한 새벽 출근과 자주 있는 야근 때문에 나름 필수품인 자가용이었다. 그리고, 그분은 그곳에서 뵈었다. 그분은 주차장등을 관리하시는 분이셨다. 주차장에 갈 일이 많지 않았던 탓에 그분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궁금 은행 가족 3 : 사실 이 분은 지금도 영업점 어는 곳에나 계시는 '청경' 분이셨다. 영업점에 가면 은행입구에서 인사도 하고 업무안내도 해 주시는 분이시고 요즘엔 나이대가 다양하시지만 내가 입행할 무렵 우리와 같이 했던 분은 나이가 있으신 분이셨다. 그리고, 한 지점에서 은행이 직접 채용하고 관리하는 분들이셨다. 지금은 외부 용역 기관에서 채용을 해서 관리를 해서 그분들의 지위도 예전과 지금은 달라지기는 했다.


그분들 이외에도 생각나시는 분들이 있다.

은행 행원급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세콤당번을 했다. 그 전날 세콤키로 모든 직원들이 퇴근 후 은행을 세콤키로 세팅하여 잠그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세콤을 해제하여 문을 연다. 그때 언제나 아침 일찍 문 앞에서 기다리시는 분이 계시다. 은행을 청소해 주시는 여사님이시다. 세콤당번일 때는 문 앞에 기다리시는 여사님이 걱정이 되어서 조금 더 일찍 은행으로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언제나 묵묵하게 조용히 청소해 주시던 분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시 은행에는 직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다. 요즘에는 영업점당 직원이 줄어들고 영업점마다 구내식당을 둘 수 있는 자리도 협소하여 식당을 거의 찾아볼 수는 없다. 입행당시에는 토요일 근무가 있었던 때라 그날 끓여 주시던 라면 맛은 잊을 수 없다. 가끔 밖에서 점심을 먹는 날이면 오늘 맛있는 거 했다고 하시며 서운해하시는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이젠 은행을 방문하더라도 비대면으로 본점에 집중되어 있는 직원과 업무를 보는 경우도 있다. 사람 사는 냄새가 조금씩 없어지는 은행이 아쉬워진다. 때론 조금은 느려도 여러 잡무에 양복을 작업복로 입고 땀 흘리던 그때가 조금은 그리워진다. 그리고, 은행 내에서 함께 했던 그분들 모두 건강히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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