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존재의 이유

by 티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커'라는 캐릭터가 주는 울림은 거대하다. 오랫동안 조커는 히어로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빌런으로 DC코믹스를 대표했고, 그 기이한 캐릭터의 생명력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 중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를 받는 <다크나이크> 히스 레저의 조커로 폭발했다. 2019년 영화 <조커>가 탄생하기 위해 쌓아 올려진 조커 캐릭터의 역사는 충분했다.


결국 <조커>는 2019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는 업적과 더불어 '마블이 DC를 이길 수 없는 이유' '조커의 새로운 시작' 'DC블랙의 탄생' 등 수많은 이야기를 양산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는 지점은 <조커>라는 영화의 존재 이유다. 이 영화는 보편적 도덕과 윤리를 버리고 개인적 잣대와 판단으로 사회를 유린한 한 남자를 이해시키고자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뢰와 사랑이 없고, 분노와 소외,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만이 남은 이미 깨져버린 공동체를 고발하기 위함인가. 물론 둘 다이겠지만, 전자를 통해 후자를 취한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우려스럽다.


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은 세심하고 치밀하게 쌓이는 아서의 감정선과 극적인 환경에 공감하게 된다. 그의 존재를 납득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동정하게 되는 셈이다. 이 자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영화는 폭력과 살인의 가해자인 조커의 행위에 감정적 명분을 만들어 줬다.


방송 중 머레이를 죽이는 그 순간에서야 관객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치밀하게 쌓아 올린 공감대를 한 순간에 부숴버리는 그 순간부터 관객은 '이건 아닌데' 하는 기분이 든다. 완전히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아서가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부터 택시 위에 서는 장면까지 조커의 존재는 스크린 안에서나 현실에서나 확실하게 각인된다. 시위대는 조커를 숭배하고, 화염과 피, 분노와 갈채 그 위로 무법지대라 불리는 고담시에 무질서와 폭력의 그늘이 드리운다. 조커의 탄생 순간이다. 그래서 머레이를 향해 당긴 방아쇠는 조커를 더 이상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조커를 탄생시킨 지점이다. 나아가 부조리하고 무책임한 현실 사회에 대한 선전포고와 다름 없다. 나한테는 그제서야 불안감이 엄습했는데, 저 사회는 어떻게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 구원이 가능한가? 아니지, 가상의 공간이 고담시가 문제인가, 택시 위에 선 조커의 뒷모습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 공간을 정확히 마주한 질문이다.


<조커>의 마스크에 오버랩되는 하나가 있다면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이었다. 본래 가이 포크스는 저항의 아이콘이었으나 해당 영화를 계기로 마스크가 유명해지면서 실제 시위나 집회에서 종종 쓰이고 있다. 최근 홍콩의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가이 포크스를 쓴 시위대들이 등장했다. 잘 쌓아 올려진 이미지는 파급력이 강하다. 가이 포크스가 그렇듯, 나는 조커가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앓는 인구도 많아지고, 흉악범죄는 늘어난다. 요새 무차별적 충동적, 잔인한 수법의 살인사건이 자주 언론에 보도되면서 폭력이 일상에 스미는 기분이 든다. 살인뿐만 아니라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분노가 일상화됐다. 온라인상에서도 현실 공간에서도 유례 없을 만큼 과감한 언행이 노출되고 있다. 분노는 분노를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고, 그렇게 생긴 생채기는 다시 누군가에 생채기를 낸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없어지고, 무의미해지면서 나의 안위가 최우선이 됐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이 공존을 위한 질서나 배려를 우선한다. 조커는 이 모든 것의 상징이 된다. 물론 지나친 우려, 예민한 발상 등으로 치부될 수 있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분명 이렇게 되기까지의 사회구조적 원인은 명백할 것이다.


조커가 처해 있었던 환경적 요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덮어 놓고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기에는 <조커>가 그리는 현실은 비참하다. 나아가 지금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조커>는 더욱 걱정되는 영화다. 풍선이 터지듯 조커의 방아쇠가 당겨졌다면, 그 영화가 누군가의 방아쇠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화 <조커>는 앞서 말했듯, 아서라는 한 인간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동시에 현실을 직면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과감하고 과격한 방식을 택했다. 어느 지점에서도 관객은 쉽게 불쾌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조커>가 잘 만든 영화인 데는 덧붙일 말이 없다. 그런데 너무 잘 만들어서, 걱정이 되기는 처음이다. 여전히 그 불쾌감에서 쉽게 벗어나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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