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별곡(2) 시키지 않은 삽질

by 장완주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라는 말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기능이나 디자인을 테스트하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전자적 복제품으로, 작은 물건에서부터 거대 도시까지 모두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새로 개발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모델로서 사용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 어쩌면 사람도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게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주객이 전도되어 디지털 트윈들이 완벽하게 구현해낸 지구에서 디지털 인간들이 주인으로서 모든 실질적 행위들을 실제 인간보다 자유롭고 제약 없이 하고 현실의 (걸리적거리는)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은 캄캄한 방에 갇혀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디지털 트윈이 있기 전부터 사람에게는 페이퍼 트윈이 있긴 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일부는 전산화되긴 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출생신고와 함께 만들어지는 가족관계(옛 호적) 기록부, 주소가 생성되자마자 만들어지는 주민등록부, 국경을 처음으로 넘자마자 만들어지는 여권 기록부, 병원에 다니기 시작하자마자 만들어지는 의료 기록부, 금융거래와 동시에 만들어지는 신용 기록부 등, 개인의 활동을 쌍둥이처럼 반영하는 페이퍼 트윈은 만약 실제 활동과 불일치하는 기록이 있다면 반드시 수정해야 하고, 그것으로 불이익이 따를 경우도 있다. 세상이 고도화될수록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딘가에 기록으로 남는다.


인감도 페이퍼 트윈 중 하나다. 1편에서 적었듯이 인감은 개인이 재산을 취득하거나 사용, 처분할 때 필요한 디지털 서명이다. 요즘은 증명서 발행 기록도 전산에서 조회가 되긴 하지만, 인감은 기본적으로 '대장'이라고 불리는 종이 서류를 기본으로 한다. 그곳에 찍힌 도장을 분실했다면 인감증명서를 백 장 발행해도 말짱 헛것이다. 증명서에 찍힌 인영과 같은 도장을 제시해야 하니, 이것이야말로 레알 '트윈'이다.


업무를 처음 받았을 때의 인감 창고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다, 문제는... 나였다. 초과 근무할 일거리가 필요했던 나에게 인감 창고가 걸려든 것이, 굳이 그걸 손댄 것이 문제였다. 여자 인감이 남자 인감 칸에 꽂혀있고, 70년생 인감이 80년생 박스에 꽂혀있던 것이 자꾸 떠올라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도서관 알바 출신이라 제 자리에 안 꽂힌 서류나 책에 대한 학습된 강박이 있다. 지금도 공공 도서관에서 쓸데없이 오지랖을 떨며 남의 집에 가 있는 책을 집에 돌려보낸다. 집 나온 인감대장을 볼 때마다 제자리에 넣어놓긴 하지만 대체 얼마나 많은 대장이 길을 잃고 '분실 재작성'으로 가지를 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초과근무를 하며 인감을 확인하기로 한 것이다.


중간에 전산조회를 시작한 것도 문제였다. 그냥 눈 질끈 감고 말았어야 했는데 또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이 할머니 살아계신 건가? 헐, 사망하신 지가 10 년이 넘었네...' 사망자 인감은 별도로 빼놓아야 한다. 혹시나 해서 인감 박스 하나에 들어있던 인감을 전산에 모두 조회해보았는데, 주민번호 변경, 성명 변경, 주소 변경, 지문 날인 등 기재되어야 할 사항이 누락된 인감이 여럿 나왔다. 전출자의 인감이 아직 우리 동에 잠자고 있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다시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가서 인감대장 박스를 하나씩 창고에서 꺼내 책상에 갖다 놓고 대장 하나씩 전산에 조회하기 시작했다. 우리 동 인감 모두.


전출지로 보낼 인감들과 어느 날 야근 중에 찾아 낸 사망자 인감


이게 끝이 아니었다. 특정 주민번호 대의 인감 중에 검은곰팡이가 핀 인감이 하나둘씩 발견되기 시작했다. 어둠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출현 빈도가 점점 늘어나더니 곰팡이 상태도 계속 악화되었다. 다시 인감 창고를 살펴보았다. 분명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곰팡이가 핀 인감들은 약 열댓 개의 박스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스템과 종이 대장을 하나씩 들춰보다가 드디어 원인을 찾았다. 2011년도에 주소가 모두 도로명 체계로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인감대사가 있었는데, 그때 이곳 담당자가 대사 하러 인감을 쌓아놓았다가 물을 쏟았던 거다. 얼마나 많은 물을 왜 쏟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의 인감이 물에 젖은 채로 다시 비닐 안에 담기게 되었다는 것 밖에는.


그는 분명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귀찮았을 것이고, 한두 명만 입 다물면 어차피 1, 2 년 내에 업무가 바뀌니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내 상상력으로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기 어렵다. 그 후로 7 년의 세월이 흘렀고, 7 년간 인감 담당자가 여럿 바뀌었으나 과연 이 상황을 알았는지, 알고도 눈 감았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일부 인감은 그 사이에 도장도 변경하고 전출도 가느라 창고 밖에 나왔을 텐데 아주 몰랐을 리는 없다. 그리고 드디어 멍청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를 아줌마 하나가 이 지뢰를 밟은 것이다.


나는 매일 저녁 마스크를 쓰고 곰팡이가 핀 인감의 비닐을 벗겨 물티슈로 곰팡이를 닦아내고 말렸다. 그때는 코로나도 없었는데. 하루가 넘게 고슬고슬 말린 후 깨끗한 새 비닐을 씌워 제자리에 넣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한 대장은 복사한 서식을 곰팡이 부위만큼 오려서 풀칠하여 새 옷을 덧입혔다. 생각 같아선 인감대장을 새로 만들고 싶지만, 인감은 원본을 최대한 보존해야 한다고 했다.

비닐을 벗겨 닦은 후 말리려고 모아둔 인감대장
곰팡이를 닦아내고 새 옷을 덧입힌, 한 사람의 인감대장 앞뒷면이다. 정신건강을 위해 작은 사진으로


몇 달이 지났다. 1만 장이 넘는 인감을 들여다보며 기재 누락, 전출 누락, 말소 누락을 처리했다. 아무 데나 꽂아놓고 찾지 못해 새로 만든 인감대장도 백 건이 훨씬 넘게 합본해 놓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고, 왜 하는지도 묻지 않았던 나만의 업무였다. 오히려 눈치를 본 건 나였다. 창고 깊숙한 곳의 묵은 곰팡이를 끄집어내듯, 모두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누군가의 무책임과 태만을 끄집어낸 것은 절대 잘한 짓이 아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일인 것을 알지만 두고 볼 수 없어서 한 일이다. 7년 전에 엎질러놓은 물도 이제 거의 다 닦았다. 그때 했더라면 이틀이면 보송보송 말랐을 일이다. 어느 순간 나는 누가 물을 엎지르고 닦지 않았는지, 누가 인감 업무를 하지 않고 처박아놨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잊었다.


그때 무슨 마음으로 그 일을 했던가... 그 시절의 블로그를 뒤져보니 We are what we repeatedly do.(우리는 우리가 반복해서 하는 행동으로 규정된다.)라고 써놓았더라. 아리스토텔레스가 했다는 말인데, 직접 읽은 건 아니라서 정확하지 않다.


일을 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말, 이렇게는 하면 안 된다. 주소 기재란 덧지를 깨끗하게 복사해서 붙이는 것이 원칙이다. 도대체 종이를 뭘로 어떻게 자르면 이렇게 너덜너덜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첫 칸을 쓰면서 주소가 틀렸으면 다시 붙여도 될 것을 저렇게 지저분하게 찍찍 그어서 써놓았다.


드디어 기쁘고 행복한 날, 마음의 평화를 얻는 날이 왔다. 인감 창고 정리가 끝이 났다. 남자 인감과 여자 인감을 연도별로 박스를 잘 나눠서 순서대로 라벨을 붙여놓았다. 가지런한 저 인감들은 한 장도 빼놓지 않고 내 손을 거쳐간 것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의 인감대장이 들락거리는 속에서 잠들지 못하던 망자들의 인감도 드디어 영원한 안식을 찾았다. 사망연도 별로 정리해서 노란 박스에 담아 한 곳에 보관해두었다. 주인은 사망했어도 인감은 영구 보관된다. 한때 재산권을 행사하며 살았던 증거로서.

사망말소인감박스, 마주보고 서있는 남자 인감 칸과 여자 인감 칸. 양쪽이 가지런하게 정리된 통로에서 한참 서 있었다.


가끔은 혼자서 시키지도 않은 그 삽질을 하던 시간을 생각하곤 한다. 창고 정리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업무가 바뀌었는데, 후임자는 인감을 만지는 것조차 싫어해서 인감을 꺼내거나 집어넣을 때마다 사회복무요원을 불러댔다. 내가 인계한 대로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나로서는 확인할 권한도 없을뿐더러, 내가 정리해놓은 인감 창고를, 접근 자격 없는 사람에게 맡기고 그토록 성의 없이 대하는 것에 그냥 속이 상할 뿐, 이미 업무 담당이 아닌 나는 그 인감 창고에 대해서도 아무 권한이 없었다.


여전히 나에게 그 일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푹 빠질 수 없게 하는 걸림돌이다. 업무 교체를 명했던 팀장님에게 나는 "인감 업무를 더 보겠습니다."라고 말할 명분이 없었다. "모든 업무를 골고루 다 해봐야 하는 것"이 더 공무원다우니까 말이다. 업무에 열의는 가지되 욕심은 부리지 말아야 한다. 열의를 가지는 것도 환영받지 못한다. 친한 서무가 내게 "언니는 전임자로서는 참 좋을 거 같은데, 후임자로서는 정말... 무서울 거 같아."라고 했다. 공무원 조직에서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약점을 잡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인감 대사를 하는 동안 내가 그토록 눈치가 보이고, 누가 잘못했는지 알지만 그냥 눈 감고 잊어버린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게다가 '일을 제대로 한다'는 기준과 평가도 명확하지 않다. 공무원 조직은 고과를 높게 받을 필요도 없고, 일을 잘한다고 승진을 빨리 하지도, 돈을 더 많이 받지도 않는다. 보상이 없는데 굳이 일을 잘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사고만 나지 않으면 5, 6년씩 일을 하지 않아도 아무 티가 안 난다. 그러니 업무 인계인수가 명확할 리가 없다. 팀장님, 과장님도 순환보직이니 마찬가지로 일을 모른다. '무엇을 했는지'는 눈에 띄지만 '무엇을 안 했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전임자가 누락한 것, 전임자의 전임자가 누락한 것, 몇 년째 묵혀둔 것들이 지뢰처럼 묻혀있는 업무 인계인수를 받기도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레전드 썰들이 고구마처럼 엮여 나온다.


앞서 인용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뒷부분이 아직 남아있다. Therefore, excellence is not a destination, but a habit.(그러므로 탁월함은 결과물이 아니라 습관이다.) '탁월함'은, 공무원의 세계에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내가 담당자일 때 지뢰만 안 터지면 다행인 직업이다. 그러려면 삽질을 멈춰야 할 텐데.


탁월함을 독촉당하던 때, 탁월함을 쫓아다니던 때가 그립다. 동료에게, 후배에게 탁월함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 헛웃음이 나올 만큼 당연하던 때가 그립다. 1년 전에 만든 것을 내놓기가 너무 부끄러워지게 하는, 고객님의 매서운 안목조차 그립다. 인감 창고에서 시키지도 않은 삽질을 했던 건, 고과를 잘 받기 위해서나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때 조금이나마 단련되었던 탁월함의 근육이 물컹한 비곗살이 될까 봐 그랬던 거다. 아무도 나에게 더 이상 탁월함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나 스스로 운동 삼아하는 거다.


아마 누군가가 묻어놓은 지뢰를 열심히 처치하는 공무원들이 한둘은 아닐 텐데... 그를 위해 여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로를 완성본으로 놓아둔다.


We are what we repeatedly do.
Therefore, excellence is not a destination, but a ha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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