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인 서너 명이 인감을 만들겠다며, 왜소하고 머리가 아주 짧은 여자분을 모시고 왔었다. 모두 50대 후반, 60대 초반 정도의 연배였다. 머리가 그 정도로 짧다는 것은 그가 정신질환이 있다는 의미다. 가명으로 그분을 김민원 님이라고 칭하는 것이 쓰고 읽기 편할 것 같다.
김민원 님은 십 대 때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후 환갑을 앞둔 당시까지 수용시설에 계시는 분이었다. 진단받은 때가 주민등록증을 만들기 전이고,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은 분이라 신분증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치 않았다. 법적 행위를 하실 일도 없었으므로 인감도 당연히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인감이 필요해진 것이다. 계기는 모친의 사망이었다. 사망자의 배우자는 돌아가셨으니 자식들이 상속인인데, 상속은 모두 포기하든 한 명만 받든 나눠받든 하여간 인감이 필요하다. 내가 받지 않으려 해도 상속 포기서와 인감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김민원 님이 인감대장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인감별곡 (1)편에서도 썼지만, 인감대장을 만든다는 법적 행위를 하려면 '의사표현'의 진의가 증명되어야 한다. 정신질환의 경우 의사표현의 진의는 인정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신분증도 없다. 김민원 님이 김민원 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지문등록도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김민원 님의 오빠와 언니는 "병원에서 '자기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는 진단서를 끊어오면 될 것 아니냐"라고 했고, 나는 그렇다고 했으나 병원에서 그렇게 써줄 리가 없다. 그들은 다시 빈손으로 와서 "이 일 때문에 미국에서 왔는데 일을 왜 이렇게 어렵게 하느냐"며 미국은 이렇게 꽉 막히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 법원에서 성년후견인 지정을 받고 오셔야 한다고,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나 그 방법뿐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들이 그 후 어떤 절차를 밟았는지는 모르겠다.
치매환자도 인감을 만들거나, 증명서 발행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치매가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으며, 환자의 인감이 언젠가 필요하게 된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분이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이 있으시고, 그분이 살아계실 때 재산권 행사가 필요하시다면, '성년후견인 지정 신청'을 하시라고, 꼭 하시라고 강권하고 싶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니 미리 잘 알아봐야 한다. 성년후견인은 치매환자의 인감 발행을 신청할 수 있다.
한국은 가족 상호 간에 재산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개념이 불명확한 나라다. 부모가 자식의 돈에 손을 대는 게 당연하고, 형제간에 두루뭉술한 말들이 나중에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고성으로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감은 어쩌면 그런 일들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서류상의 재산'은 인감 없이 함부로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송사가 있었다. 누군가가 아버지 모르게 인감도장을 변경하고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다. 당연히 그 '누군가'가 아버지의 새 인감도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으로 수천 만원의 차용증이 만들어졌고, 아버지는 그 돈을 갚아야 할 법적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Mr. '누군가'가 공무원, 그것도 시골에서는 꽤 높은 공무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Mr. '누군가'에게 그 일을 지시한 사람이 군의원, 시골에서는 꽤 알아주는 권력자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시골 택시기사 하나 죽이겠다고 공문서와 사문서를 위조한 Mr. 군의원과 Mr. 누군가는 나의 고모부와 백부다. 고모는 그 지역에서 알아주는 '불패의 변호사'를 섭외했다.
아버지는 그 송사에서 이길 수가 없었다. 법적 행위는 서류로 증명된다. 서류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증명하지 못하면 서류의 내용은 진실이 된다. 아버지는 변호사를 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참 후에 그 사건을 알게 된 나는 기가 막혔다. 팩스로 받아본 차용증에 찍힌 아버지의 도장은, 아버지 성격에 어울리지도 않게 몹시 화려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의 부장님이 친한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상담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나는 그 변호사님의 조언대로 엄마에게 "3년 전에 만들었다는 차용증에 찍힌 인감 자국은 분명 3년 묵은 것이 아닐 테니 문서위조임을 증명하면 된대."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마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 그 일을 하지 않았다. 내가 이유를 따져 묻자 엄마는 "70만 원이나 달란다."라고 했다. 그깟 70만 원이 아까웠을까? 그랬다면 내가 나서서라도 그 일을 했겠지. 엄마는 그냥 그럴 생각이 없었던 거였다.
막내가 심장병으로 죽었을 때처럼 그 일은 내게 지독한 쓴 뿌리를 남겼다. 설마 그 도장 정말 아버지 도장인 거 아니야? 위조되었다던 그 서류, 사실은 엄마도 관련된 거 아니야? 나는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에게도 물을 수 없는, 독약 같은 질문 하나를 더 품고 살아간다. 하여 그때 내가 70만 원을 보내주었어도 엄마는 그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아버지에게는 말도 꺼내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한다.
어쨌든 그 돈 70만 원이 없어서 아버지는 죽었다. 변호사도 없이 혼자 법원에 끌려다니다가. 인감도장을 찍은 그 차용증의 위조를 증명하지 못해서 재판장에게 억울하다는 유서를 써놓고.
그 딸은 17년 후에 그토록 피해 다니던 공무원이 되어 첫 발령을 받고 인감업무를 맡았다. 나에게 인감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 언젠가 이 인감이라는 증명서가 없어지기를 소원하면서, 아버지처럼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길 바라면서 꼼꼼히 체크하고 또 관리했다. 인감대장에 새로 변경하는 도장을 찍는 일 하나에도 '어떻게 하면 가장 선명하게 나올까' 고민하면서 인주를 바꿔보고 용지를 바꿔보고 별 짓을 다했다. 인감이 위조되었을 때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인영을 대조해보는 것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다 사망자 인감을 정리할 때면 아버지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울지는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루었을 뿐이다.
전국의 도장가게 사장님들에게는 정말 죄송한 얘기지만 인감은 고비용, 고위험 신분증명이다. 없어져야 할 제도다. 발급을 위해서 무조건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니 민원인이 불편한 것이 첫 번째 이유고, 그 증명서를 발행하는 국가기관을 아무리 철저하게 관리 감독한다고 해도 그 신뢰성을 100%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사실상 인감과 관련된 많은 사고들이 가족 간에 일어난다. 인감에 접근하기 가장 쉬운 사람이 배우자나 부모자식이다. 그리고 인감을 위조할 가장 큰 동기를 가진 이들도 가족이다. 아버지처럼 감정싸움이었건, 아니면 상속 문제건 간에. 그런 일들을 막기 위해 인감제도가 있다지만 결국 그런 일들에 가장 악용되기 쉬운 것이 인감이다. 때로 내가 발급을 거부하면, 다른 데 가서 떼어달라고 하면 된다고 큰소리치고 나가는 사람도 많았다. 신청서를 위조하겠다는 얘기다. 그걸 쫓아다니면서 막을 수 있는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한 인감제도 혁신이 행안부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들었다. 블록체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점적인 인증 기관이 아닌 여러 사용자의 전자적 합의에 의해 누적해서 관리하는, 신뢰도가 매우 높은(속일 수가 없는) 증명 방식이라고 들었다. 어쨌거나 국가가 독점하는 신분증명, 학교가 독점하는 졸업증명 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간절히 인감의 소멸을 바란다. 업무가 지겨워서가 아니다. 국가전략적 차원도 아니다. 인감은 아버지의 피를 부른 제도다.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여자의 한에 비길 수 없을, 칠팔월 뜨거운 원한의 대상이다. 내가 한이 많다고 뭘 어쩔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개 말단 공무원으로서, 인감의 악용으로 가족을 잃은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낡은 제도를 대체해줄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도장은 예술작품으로 간직하고, 증명 기능은 빨리 다른 제도로 변화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