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공무원다운 사람을 꼽자면

by 장완주

팀 서무, 과 서무, 국 서무...

공직 조직에는 '서무'라는 용어가 있다. 직무 자체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서무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공무원의 진정한 맛을 알기 어렵다..라고 서무들은 말한다. 서무가 없는 과(부서)는 없다. 아무래도 공무원의 실제 생활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직무이다 보니 각 조직 단위의 만능 살림꾼, 서무의 업무를 소개해보기로 한다. 다른 지자체는 다를 수도 있으며, 여러 조직 단위 중 과(부서) 서무를 중심으로 적어보았다. '이런 지자체도 있나 보다' 정도로 보면 좋을 듯하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일반 기업체와 비교한 지자체의 조직도를 그려보았다. 그림 맨 위의 괄호가 사기업 위계다. 처음 입직했을 때 이게 잘 와 닿지 않았는데, 대충 요 정도의 위계라고 보면 된다. 특히 관공서의 과장은 기업체 과장과 비교가 안 되는 짬이다. 같은 급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관공서는 대개 과장으로 정년을 맞는 경우가 많고, 고참 과장들은 임원 후보이니 혹시나 대관업무 담당하게 되면 감안하는 것이 좋겠다.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무의 업무(a.k.a. 공무원의 일상)를 파보도록 하자. 우선 읍면동을 제외하면 서무는 부서 본연의 업무, 예를 들면 차량등록과의 차량등록업무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 비중 있는 업무는 맡을 수가 없다. 물론 부서의 특성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서무 본연의 업무는 서무다.


1. 근태관리


사기업의 근태관리는 전산 시스템이 하지만, 지자체는 서무가 부서원들의 근태 기안을 오전 중에 취합해서 한꺼번에 결재를 올린다. 초과근무, 출장, 각종 휴가, 그리고 그것들의 취소나 수정 등을 서무가 대부분 관할한다. 꼭 시간 안 지키고 늦게사 서무에게 달려가서 '지금 결재 올려도 되느냐'라고 묻는 직원들이 있다. 늘 같은 사람이라는 게 함정. 내가 본 서무들은 항상 “네, 그러셔요.” 한다. 여태 거기에 짜증 내는 서무는 한 번도 못 봤다. 옆에서 보는 나는 짜증이 나더구먼. 매일 초과근무 시간, 출장시간이 맞는지 확인한 것도 결재를 올리고, 월별로 합산해서 급여로 연계해줘야 하는데, 다들 급여에 민감한지라 신경이 많이 쓰일 것이다. 이것이 일상적인 근태관리이고, 어려운 것은 비상근무의 근태관리다.


주말이나 휴일의 비상근무 차출 요청이 전달되면 서무는 각 부서의 할당 인원에 맞게 누가 갈 것인지를 정한 후 요청한 부서에 결과를 제출해야 한다. 대부분 인사부서가 요청하지만, 때로는 체육 담당 부서가 차출(체육 행사)할 때도 있고, 요즘 같은 때는 안전 담당 부서가 차출할 때도 있다. 때로 아무도 안 하고 싶어 하는 근무들이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순번표대로 지정하고 "도저히 못 가겠으면 직접 대체자를 구해주세요." 해야 한다. 협조가 잘 안 되는 부서들의 경우 서무가 울며 겨자 먹기로 스스로를 차출하는 경우가 꽤 있다.


전에 일했던 부서에서 민방위 소집 새벽 출장이 있었다. 한 아파트 단지에 배치받은 직원 한 명이 "내가 초딩 애가 셋인데 이렇게 대상자 수가 많은 단지에 배정해주면 어떡하냐"며 서무를 붙잡고 얘기가 길어지는 것을 보았다. 서무가 어쩔 줄을 몰라하길래 대상자가 적은 내 담당 구역이랑 바꿔주고 끝냈다. 통장님이 원체 일을 잘해주시는 단지였으니 그 직원이 조금 늦게 가도 괜찮을 것이었다. 서무가 뭔 죄냐.


직원들의 식사 문제를 서무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과장님 혼자 식사하시지 않도록 챙기기' 미션. 어떤 부서는 부서 소속 팀별로 돌아가면서 '과장님과 식사하는 날'을 정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 주무팀이 과장님을 전담 마크하는 경우도 있다. 식당을 정하고, 참석자를 파악하고, 메뉴를 주문하고, 이동 차편을 확인하는 일들을 서무가 (물론 다른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한다.


'야근자 저녁식사 주문해주기' 미션도 있다. 퇴근 무렵이 되면 서무가 부서를 돌면서 "저녁 드실 분~ 주문받습니다~" 한다. 야근하는 직원에 대해서 일정액의 저녁 식비가 나오는데 개인에게 돈으로 주는 것은 아니고 부서 예산이 추가되는 형태다. 그러면 야근자는 부서마다 장부 거래를 하는 식당이 정해져 있어서 예산 범위에 맞게 식사 주문을 하고 월 1회 정도 한꺼번에 정산을 한다. 그래서 서무는 하루 날을 잡아서 식당을 돌며 정산을 하고, 미리 선결제를 해놓는다. 후불 외상 거래는 거의 없는 편이다. 공무원이 그러면 안 된다.


2. 환경, 물품 관리


많은 경우 서무가 회계를 함께 담당한다. 이 경우 각종 장비 관리나 비품 수급도 서무의 역할. 뭐가 고장 나거나 없기만 하면 여기저기서 서무를 찾는다.


"주사님, 빨간색 볼펜 없어요."

"제 마우스 고장 났어요."

"프린터 토너 어디 있어?"

"스캔파일이 제 컴퓨터로 안 들어와요."

"정수기 고장 났네."

"어, 에어컨 물 샌다."

"커피! 커피 떨어졌어요오오오."


물건을 주문하고, 뭐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체크하고, 예산이 남았는지 확인하고, 수리상태를 점검하고 월별 점검자(코디) 사인해주고, 냉장고를 한 번씩 뒤집어 정리하고, 청소당번을 짜서 제대로 당번이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등등의 수많은 살림살이들을 하는 서무는 때로 엄청난 폭탄을 맞기도 한다. 이사나 사무공간 재배치 같은 거 걸리면 진짜... 와우!


지난 부서가 새로 사무공간을 마련해서 시설을 갖추고 이사하는 전체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 살, 네 살 애기들 엄마가 매일 밤 자정까지 야근하고 집에 일을 싸들고 가는 것을 보면서, 아... 절대 서무를 하면 안 되겠다... 저건 타고나야 된다... 분노조절 잘 못하는 사람은 몇 번 까무러쳤겠다... 하는 생각과 다짐을 했었다. 연말 근평에서 서무 혼자 S 받고 진급했으나 완전 인정! 깔 수가 없다. 난 그냥 힘쓰는 일만 하는 걸로.


3. 성과 관리


공공조직도 성과관리를 한다. 연초에 성과지표를 제출하고 중간중간 시스템에 진척사항을 올리고, 달성 가능한지 확인해서 직원들을 닦달하고, 가산점을 받을 만한 일들(청렴교육 같은 지자체 전체 시책에의 동참)을 챙겨서 일정을 짜고 "0월 0일 청렴교육 있습니다. 아침에 30분 일찍 출근해주세요!!" 등의 쪽지를 보낸다. 당일 아침 잊지 않게 예약 문자 발송해주는 센스 있는 서무들도 있다.


직원 각자에게 "언니, 이번 달에 보도자료 내셔야 돼요." 하며 해당 지표들을 챙겨주기도 한다. 서무가 그렇게 성과관리를 잘해주면 그 부서는 평가가 잘 나온다. 그나마 지난 부서는 민원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과제에서 포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민원부서는 아무리 잘해도 사업부서에 밀린다. 부서평가에 따라 직원들의 근무평정 상위등급 비율이 상향, 하향 조정되기 때문에 서무를 잘 만나면 참 고마운 일인 거다. (좀 다른 얘기지만, 공무원의 근평은 거의 승진연한 순이며, 근평 때 부서원들의 승진연한을 정리해서 과장님께 참고자료를 드리는 것도 서무다.)


4. 각종 정보 취합의 최전방


그들은 정보 소통의 핵심 노드(node)를 담당한다. 중앙부처나 지자체 장의 지시사항이 있을 경우 취합 부서가 서식을 만들어 뿌리면 국 서무 - 과 서무를 거쳐 각 직원에게 전달되며, 그것은 다시 과 서무 - 국 서무의 순으로 취합되어 보고 담당 부서에게 흘러간다. 말이 좋아 정보의 핵심이지, 사실상 엄청난 일이다. 부서나 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서서 내용을 채워주지 않는다. 심약한 서무들은 몇 날 며칠을 끙끙 앓다가 자기가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을 줍줍 해서 위로 위로 전달해야 하는 때도 많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젊은 직원들이 서무를 담당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서무는 서무끼리 친하고, 무수히 많은 연결고리를 갖게 된다.

실선은 공식적인 정보 유통 경로, 점선은 서무들의 인적 네트워크다.


취합을 주 업무로 하는 부서에 있어보니 우리 부서에서만도 내가 A 업무 취합을 요청한 직후에 또 다른 담당자가 B 업무 취합을 요구하고, 또 다른 담당자가 금세 C 서식을 내려 보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말 취합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취합을 요구해놓고도 진짜 미안하다. 특히 중앙에서 취합하라고 내려오는 공문은 정말 당황스럽게도 '금일 중에 제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어서 오후에 접수되는 경우도 있다. 어쩌라고!!!!!!!!


그러면 수십 개의 부서를 중구난방 받기보다는 국을 거쳐서 받는 것이 효율적인데, 국 서무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가 절로 나오지 않겠나. 너무한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정말 백배사죄하고 양해를 구한다.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닌데.




위의 네 가지 업무 외에도 직원의 생일을 챙기거나, 새로 부서에 들어온 전입자를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챙겨주는 사람도, 우리 부서에서 다른 곳으로 발령 난 사람에게 소소한 선물을 챙겨 보내는 사람도 서무다. 과장님의 수다를 들어주고, 분위기를 맞춰주는 것도 서무의 몫이다. 세 부서의 서무를 겪어 보았는데,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참을성 있고, 포용력이 강하고, 진중한 사람들이 서무 일을 잘 해낸다. 그리고 그렇게 서무를 하던 사람은 다른 부서로 옮겨가도 서무 업무를 맡게 될 확률이 높다.


어쩌면 공무원 조직에서 가장 공무원스러운 직무가 서무일 것이다. 하긴, 사기업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직무라서 더 그렇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그러나 절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 존재. 어떤 사람들은 승진을 위해서 서무 직무를 노리는 이들도 있다던데, 그런 만큼 강도가 높은 업무이고, 부서 전반의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아마 그들 자신은 직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꽤 높을 것이다. 전국의 서무 주사님들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보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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