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Nov 09. 2022

전향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운동 때문이라고 느낄 뿐이다.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의 혼잣말에 예전과는 다른, 낯선 생각들이 대답을 한다. 그리고 그 대답에 내가 말한다. '어... 그러네. 맞네.'


매년 나에게 시험이었던 7말 8초. 남들에겐 휴가철이지만 나에겐 실종된 아버지의 소식을 기다리는 끔찍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던 13일은 외딴 산속에 엎드러진 아버지의 발견으로 막을 내렸었다. 그런데 올여름 낯선 생각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빠가 나의 품으로 돌아오신 날이야.'


그동안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보거나 표현해본 적이 없었다. 지난 20 년 간 그날은 '아버지가 변사체로 발견된 날' 일뿐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영원한 추락을 시작한 날이었다. 그 악몽 같은 날에 새로운 이름이 붙은 것이다.


낯선 생각에게 내가 말했다. '그러네... 맞네. 만약 아버지가 영영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어쩔 뻔했어.' 산 자에게 가장 잔혹한 이별은 폭력적 죽음도, 갑작스러운 죽음도 아니다. 생사가 불분명한 미결의 상태, 죽음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상태이다. 그 무더운 13일의 미결 기간 동안 내가 기다린 건 가망 없는 아버지의 생환이 아닌 '완결'이었다. 차라리 그것이 잔혹한 비극이라 해도 내 마음속에서 멈추지 않는 비명과 전율의 환각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스무 번의 '변사체로 발견된 '에서 스물한 번째에 '아버지가 돌아오신 '이라는 갑작스러운 전향은 웅장한 오케스트라 효과음과 함께 두둥! 하고 등장하진 않았다. 눈물이 북받치지도 않았다. 마치 길을 걷다가 골목을 돌듯, 강물이 굽이를 돌듯저절로 왔다. 이제 아버지가 어떤 모습으로 내게 돌아왔는지는 중요치 않다. 아버지의 귀환은 나를 미완의 암흑으로 고문하지 않고 핏빛 환각의 문을 닫아주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게 베풀어준 마지막 친절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전향했다.

아버지가 내게 돌아와 줘서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