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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Jan 28. 2024

다이어터가 부서를 옮길 때


새 부서로 발령이 나니 다시 설명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다이어터들의 영원한 숙제인 식단 때문이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안 먹는지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도 있고, 궁금해서 물어보는 분들도 있다. 말이 길어지는 걸 느끼면 마음에 부담이 생긴다. 특히 이번에 근무하게 된 곳이 구내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사업소인지라 직원들끼리 급여에서 일정액을 떼어 인근 식당 사장님께 점심 식사를 맡긴다는데, 나는 그것도 안 하겠다고 말씀드려야 했다. 초면에 어깃장... 별로 좋지 않은 인상을 줄 게 분명하다.


“죄송해요. 제가 밥을 먹지 않아서요.”

“네? 밥을 안 먹어요?”

“아... 식사를 안 한다는 뜻은 아니고 쌀을 안 먹는다는... 그, 그래서 전 도시락을...”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으며 얼버무렸다.     


며칠 동안 눈치를 보다가 회계 담당 주사님에게 부탁해서 야근 저녁 식사를 주문하는 장부 식당 목록에 샐러드 가게를 추가했다. 기존 식당들은 중국집, 칼국수집, 분식집 등이라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어서 부서 사람들 의견을 물으러 다녔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인사이동이 있으면 동기들, 동료들로부터 화분이나 간식거리를 받게 된다. 어김없이 떡이나 구움과자 같은 고탄수 디저트 들이다. 보기만 해도 이쁘고 먹음직해서 얼마나 유혹이 심한지 모른다. 이번에 내 친구들도 떡을 보냈다. 마음만 받겠다고 에둘러 거절했는데도 부서 직원들과 나눠 먹으라며 기어이 단호박설기 배달이 왔다. 고, 고마워...


가급적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나의 처세원칙 1번인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해서 식당을 바꾸고, 남들 다 하는 점심값 갹출에서 빠지는 별종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게다가 직원들이 다들 친하게 지내서인지 점심 후엔 매일 함께 카페에 가는 듯하다. 아참, 나 커피도 끊었는데... 자꾸 뭔가 핑계를 대고 그 자리를 빠지게 된다. 일단 가면 결국 크레마의 짙은 향에 굴복하고 말 것이 분명하다.


내 앞자리에 앉으신 주사님은 아침에 이것저것 드시면서 계속 나를 챙기신다. “이거 같이 먹을래?” 하시며 파티션 너머로 찐 고구마, 사과, 땅콩, 과자 등등을 건네시려고 한다. 번번이 거절하기가 너무 죄송스러워서 결국은 “주사님, 제가 점심 전에는 아무것도 안 먹어요...”라고 말씀을 드려야 했다. 그후로도 변함없이 웃으며 권하시긴 하지만 나도 웃으며 도리도리하는 루틴을 반복 중이다.


그 모든 음식들은 다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던 것들이다. 짜장 짬뽕 탕수육, 칼국수 수제비 만두, 김떡순에 라면 튀김, 꼬소한 바닐라라테랑 디저트, 각종 구황작물…. 딱순이 빵순이 면순이였던 내가 그 모두를 완전히 딱 끊어낸 것은 아니다. 가끔은 딸이 짬뽕이나 떡볶이 시켜 먹을 때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야채나 어묵을 같이 먹는다. 옆에 두고 안 먹는 건 고문에 가깝다. 차라리 안 보고, 근처에 안 가는 것이 낫다. 새 부서에서 초면에 아예 안 먹는다고 선언하는 건, 그런 유혹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그래도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년이 되고 보니 장 볼 때마다 빠지지 않던 라면, 만두를 사 먹은 지가 2년이 넘었다. 하루 네댓 잔씩 마시던 라테와 믹스커피도 그즈음 끊었고 최근에는 드디어 커피 자체를 아예 마시지 않게 되었다.     


“커피를 끊었다고? 독하네.”

“그러게요. 저 너어어어무 힘들었어요, 팀장님.”

“고기랑 생선은 먹는데 과일은 안 먹어? 희한하네.”

“그렇….죠?”


사실 최근 들어 나는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음식들에 대한 자책이 컸었다. 조바심도 났다. 그런데 이참에 이런 식으로 중간결산을 해보니 그동안 바꾼 식습관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싶다. 3년 동안 천천히 하나씩 테스트하면서 줄여나가다 보니 몰랐던 것이다. 사람들과 만나서 식사라도 한 끼 하려면 메뉴 정하는 것부터 불편하다. 그렇다고 내 식단을 그만 포기하고 무던하게 지낼 수도 없다. 아마 일주일 안에 5kg 우습게 찔 것이다. 결국은 앞으로도 새로 부서 이동할 때마다 이런 일을 겪어야 하겠지.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감사하기도 하다. 커피 없이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딸은 엄마를 도와주려고 예쁜 티포트를 사주었고, 아들도 맛있는 차를 선물해 주었다. 요즘은 도시락을 가지고 직원들과 같이 식당에 가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다르지만 말이다. 우리 부서 야근자들은 거의 매일 내가 새로 추가한 가게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배달해 먹는다. 다행이다. 어쩌면 저녁을 가볍게 먹고 싶은 사람이 나뿐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서 직원들과 더 친해지면 점심 후에 카페 대신 산책은 어떠냐고 말해볼 생각이다.

    

누군가는 ‘내가 먹는 것이 나 자신이다(What I eat is who I am).’라고 말했다 한다. 내겐 아직 음식이 그런 정체성이나 신념의 영역까지는 아니다. 단지 노후에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몸과 정신을 잘 다독이고 관리하는 방편일 뿐. 아마 식습관은 계속 바꾸고 또 바꿀 것이다. 사랑하는 뇨끼 가게와 그 옆집 맛도리 치즈케이크도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2년 후에 다시 부서를 옮길 때는 친구들에게 아예 말할까 보다. “발령 떡 대신 방울토마토 보내주라.” 새 동료들과 나눠먹기 딱 좋은 간식,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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