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완주 Feb 03. 2024

어른이 처음인 아이에게

최근에 오리가 과외를 시작하고 두 번째 달이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갑자기 심란한 얼굴로 과외비를 못 받았다는 얘기를 했다. 3주가 지나가는데 무슨 소리? "어머니가 잊으신 거 같애. 근데 말을 못 하겠어." 갑을관계에서 을이 돈 얘기를 한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내 또래 중에서도 돈 달라는 말을 못 해서 같이 먹은 점심값을 대표로 내고 끝까지 정산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 지금 배워두면 좋지 않을까. 나는 아이를 앉혀놓고 카톡 메시지를 불러주었다.


"딸, 간단하게 '어머니, 이번 달 과외비 입금 부탁드려요.'라고 쓰면 돼."

"뭐야, 너무 예의 없지 않아?"

"이건 예의 문제가 아니라 비즈니스 문제니까 비즈니스적 어법이 필요해."

"그거 말구 '어머니, 이번 달 과외비가 아직 입금이 안 돼서 연락드려요...'라고 쓰면 어때?"

"듣기에 따라서는 잘못을 지적하는 걸로 들릴 수 있어. 간결하게 to-do만 말하는 게 좋아."

"끝에다가 ^^을 붙일까? 아니면 물결표 쓸까?"

"ㅋㅋㅋㅋㅋ 써라 써."


각종 불편한 얘기는 엄마가 대신해 주던 아이 시절의 해맑음을 한참 벗어나서 이 낯선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아이는 땀이 나도록 오랫동안 폰을 쥐고 바들바들 떨었다. 간혹 나를 원망 어린 눈으로 쳐다보면서 말이다. 그 눈은 나에게 "왜 이런 걸 시켜? 나 좀 살려줘."라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어차피 처음 한 번이 어려운 거다. 앞으로 이런 세상을 살아야 되니까. 자, 안광 레이저 발사! 딸은 눈을 딱 감고 톡을 보낸 후 "꺄아악! 난 몰라!!!!"를 외쳤다.


일은 싱겁게 끝났다. 어머니는 "이번 달 4주 맞죠?"라고 답장이 왔고, 딸이 맞다고 확인해 드리자 다시 곧바로 입금했다는 톡이 왔다. 딸은 예의 바르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냈다.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어머니도 "죄송합니다, 깜빡했네요." 등등의 인사치레는 없었다. 이건 비즈니스 문제이니까 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첫 직장에 입사했을 때, 나는 몇몇 치명적인 실수들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실수들은 내 안으로는 스키마로 굳어지고 밖으로는 평판으로 자리 잡았다. '본 데 없이 자랐다'는 말이 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예의범절이나 사회적 문법에 미숙한 사람들이 듣는 말이다. 아마 나도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내 부모님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부모님과 완벽하게 다른 세계에서 어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지덕지다.


과외비 사건 외에도 딸은 학교에서, 친구관계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첫 학기 기말 과제를 완성하지 못하고 제출기한을 넘겼을 때, 재수시절부터 단짝이던 절친과 사이가 틀어졌을 때, 나는 매번 어른의 세계에서 넘어진 딸을 붙잡아 일으키느라 온 정신을 집중했다. 정서적인 지지가 아니라 도구적인 조력이 필요했다.


딸이 기말 리포트를 쓰지 못했던 이유는 인용에 대하여 "타인의 글을 베낀다"라는 도덕적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문학적 글쓰기로 내가 훈련시켰던 부분이다. 학술적 글쓰기는 다른 문제이다. 선행연구를 풍부하게 인용하는 것이 연구자의 진지함과 겸손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조약돌 하나를 얹어놓아야 한다. 그걸 모른 채 낯선 리포트 주제에 대해 온전히 자기 머리로 다섯 페이지를 채우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다. 오리는 엄청 울었고 나는 전복된 규칙을 이해시키려 진땀을 뺐다. 걸음마시키듯이 과제를 봐주고, 교수님께 미리 메일 드리도록 궁디를 도닥였다.




20 년이 넘도록 자식을 키워왔지만, 진짜 가르침이 이제야 시작된 건 아닌가 싶은 요즘이다. 섣불리 홈스쿨 셀프 졸업장을 휘갈겨 쓰고 엄마의 자리를 떠나려고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른의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아이들이 첫 발을 떼고, 말과 글을 배우고, 이 세계의 규범들을 하나씩 익힐 수 있도록 곁을 지켜야 했다. 내 서툰 청춘기에 경탄하며 질투했던 만랩 친구들은 다들 그런 조력자가 있었던 걸까? 모를 일이지만 너무나 다행스럽다. 아이들이 어른으로 태어난 그 세계에 그나마 내가 있어서 가파른 길에선 손을 잡아끌어올려줄 수 있어서 말이다.


어쩌면 나는 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나를 다독이고, 어린 시절의 나를 타이르고, 어린 시절의 내 손을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들은 온통 주변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흑역사로 도배된 스무 살을 갖지 않아도 된다. 나는, 어른이 처음인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의 스무 살을 치유하고 있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이어터가 부서를 옮길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