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일(20251217)

by 장완주

내년, 그러니까 며칠 후에는 부서 이동이 있거나 직무 변경이 있을 것이다. 숫자 바보가 1 년이나 더듬더듬 하던 회계업무도 2주 후엔 끝난다. 월급 받고 일하는데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돈이 오가는 문제이니 압박감이 컸다. 막바지 업무인 내년 연간계약도 거의 마무리되었다. 가장 큰 계약이 센터 시설관리와 청소 용역이다. 연간 단위로 나라장터에 공고하여 입찰 절차를 거친다. 사실 근로자들은 이곳 센터가 개소한 이래로 계속 근무 중이다. 용역업체만 변경되고, 그 분들은 용역업체와 연간 단위의 근로계약을 매번 새로 하고, 연말에 퇴직금을 정산해서 받는다. 계속 근로를 위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하라는 조건이 과업지시서에 명시되어 있다. 법적으로 권고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일이 좀 있었다. 입찰 결과 적격심사 1순위 업체가 2024년에도 이 용역을 수주했었다. 그때 퇴직금과 관련된 문제가 조금 석연치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가는 말로 근로자 한 분(과장님)이 그 얘기를 꺼냈고, 누군가가 그걸 업체 측에 말했단다. 업체가 적격심사 서류를 제출한 후 나에게 전화를 했다. 해당 근로자는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 고용승계하지 않고 1월 1일부터 당장 다른 인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일단 전화를 끊었다. 끝까지... 쉬운 일이 없네.


센터장님은 교통사고로 병가 중이시고, 상의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팀 주사님 두 분이 얘기를 듣더니 한 분은 계약업무를 잘 아시는 팀장님 한 분과 전화를 연결해주었고, 다른 주사님은 비슷한 사안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빠르게 찾아주었다. 통화가 된 팀장님은 “업체와 잘 얘기해보시죠” 라고 말씀하셨다. 정해진 답이 있진 않으니 판단도 책임도 담당자가 져야 한다는 뜻이다. 판례를 읽어보았다. 쟁점은 고용승계 거절 사유가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느냐의 여부인데 이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랜 시간과 행정력이 소요될 것이었다. 판례는 용역업체의 근로자 고용승계 거절이 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센터장님께 전화를 드릴까 말까... 수십 번 생각하다가 업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민한 문제이니 녹음을 할 확률이 높았다. 내가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나는 선동자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해고에 기여할 수도 있고, 갑질 공무원이 될 수도 있었다. 쉽지 않다. 한숨을 쉬고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어쨌든 부딪혀봐야지.’


담당자에게 대법원 판례를 간단히 설명해주고, 이 사안에 대한 법적 리스크를 검토해보았는지 물었다. 일단 고용승계를 하시고 과장님에게 기회를 줘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러면 고용승계는 하더라도 올해 급여보다 낮은 월급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유는, 그 과장님이 문제삼은 퇴직금의 기준액에는 자신들의 회사가 선의로 지급했던 수당(입찰 시 제시한 임금기준액을 상회하는 금액)이 포함돼 있었는데, 자신들이 베푼 호의를 트집잡아 퇴직금이 적다고 한다면 굳이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해고는 안 하겠으나 급여를 삭감하겠다는 얘기다. 그것도 과장님뿐 아니라 모든 인원에 대해서.


긴 설득 끝에 결국 해고와 급여 삭감 모두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보았다. 조건이 있었다. 업체 담당자는 그 과장님이 직접 회사에 찾아와서 대표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대표가 화가 난 상태라서 본인이 대표에게 고용승계 및 전년 수준 급여 보장에 대한 설득을 해야 하니 명분이 필요하다는 거다. 다시 부탁을 했다. 근로자 혼자서 거길 간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축될 것 아닌가. 기왕 여기 방문하시는 김에 같이 티타임 한 번 하시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담당자는 마지못해 그것도 수긍했다. 전화로라도 먼저 사과를 받고 싶다길래 그건 내가 해결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장님에게 전화를 드려서 잠시 뵙자고 했다. 긴장한 기색으로 사무실에 들어오시길래 회의실로 모시고 가서 천천히 상황 설명을 했다. 어려우시겠지만 업체 담당자가 사과를 받고 싶어한다고 말씀드렸다. 과장님은 나에게 “주무관님이 보기에도 제가 잘못한 거 같으세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대답했다. “지금 중요한 건 과장님이 내년에 여기서, 삭감되지 않은 급여를 받으며 일하시게 되느냐의 문제예요.” 듣기에 따라서는 정당한 권리를 찾겠다는 노동자의 시도를 무마하려는 회유나 협박으로 들릴 수 있다. 또 오랜 얘기가 필요했다. “아니, 난 몰랐죠. 그렇게 마음을 써줬다고 해도 우리한테 말을 안 하니까 알 수가 있나요. 말이라도 해줬으면 오해가 없죠.” 그 분은 지금 당장 전화해서 사과하겠다며 사무실을 나가셨다.


오전 두 시간 정도를 폭풍 속에 있었던 것 같다.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 같은 찜찜함도 있었다. 머리가 아팠다. 과장님과 얘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두 주사님이 결과를 물었다. 사과하고 오해 풀기로 했다, 과장님은 내년에 동일한 수준으로 급여받고 계속 일하게 될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걱정하고 도와주는 주사님들 덕분이다... 판례를 찾아주었던 주사님이 말했다. “이번 일로 그 과장님, 근태 좀 나아지셨으면 좋겠네요. 주사님 개인사까지 얘기하면서 그 담당자 설득한 건데... 애쓰셨어요.”


그래... 아버지를 팔았다. 그 담당자의 감정에 호소하고 부탁했다. 과장님의 역량이나 성실성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단지 발주처, 용역업체, 근로자의 관계에서 가장 힘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는 누군가의 생계, 아니 그 가족 모두의 삶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퇴직금에 대한 담당자의 설명을 믿지 않는다. 그 과장님의 근태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안다. 배신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장님에게 그것이 ‘업체의 배려’라는 담당자의 주장을 그대로 전달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화해를 하려면 둘 중 한 편이라도 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아버지를 팔았던 이유도 그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저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자신의 인생과 상황을 수용하게 된다. 비극의 깊이만큼 안도감도 크다.


그래서 나는 오늘 무슨 일을 했나. 해고를 막고, 임금 삭감을 막고, 소송 리스크를 막았나? 아니다. 내가 한 일은 누군가의 아버지를 위해 잠시 내 비극을, 무릎을 빌려준 거다. 언젠가 했어야 했던 일, 아버지를 잃을 때까지도 몰랐던 일... 그 ‘쉬운 일’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일하는 방식